제0호

.... 어린 계집아이는 꼬까옷 사달라 조르고 어머님은 백정집 외상도 갚으라시는데....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라던 어릴적 선친 당부 지금도 생생해 이제 며칠뒤면 중추가절(仲秋佳節)의 추석이다. 음력 8월을 중추지절(仲秋之節)이라고 한다. 이달 보름은 가을은 반으로 크게 나는 것이라고 하여 "한가위"라고 부른다. 가을 석달의 계절을 반으로 나눈 가위이니 오죽이나 큰 가위일까! 이번 회에는 야담과 야사가 아니라 추석을 눈앞에 둔 대목장을 맞은 어느 가난한 농촌 가장이 겪는 고통을 묘사한 시 한 수를 감상해 보고자 한다. 죽항거연시일금(竹項居然是日今) 백방난화일가심(百方難化一家心) 아언긴탁홍당목(兒言緊託紅唐木) 친명당수백한금(親命當수白漢金) 염수대정처무어(염雖大政妻無語) 채료허행객유심(債了虛行客有尋) 행뢰주고지면구(幸賴酒姑知面舊) 초장삼작압이침(初場三酌押而침) 이 시의 제목은 竹項市(대목장)이다. 그러니까 한자의 훈(訓)을 따서 대 죽, 묵 항, 저자 시에서 ＇대목장＇이라고 붙였으며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대목장이 과연 오늘이구나. 백방으로 흩어진 한 가족의 마음은 화합시키기 어렵네. 어린 계집아이는 꼬까옷을 해달라고 조르고 있고 어머님은 백정집 외상돈 갚으라고 당부하시네. 소금은 비록 가정에서는 가장 소중한 물건이나 아내는 말도 못하는데 빚쟁이는 헛걸음인줄 알면서도 찾아온 손님은 많아라. 주모(酒母)가 내 얼굴 알아보지 못한 것이 다행스러워 한 잔 두 잔 석 잔 속에 술독에 빠졌다네. 어떤 가난한 가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추석을 앞둔 대목장에 주머니에는 일전 한 푼 없는 거지신세이다. 그런데도 온 가족의 마음은 한결같지 않으니 어린 딸은 꼬까옷 해달라고 조르는데 형편을 모르는 어머님은 명절앞에는 남의 집에서 빌린 돈이 있으면 갚으라고 당부하신다. 남편 옆에서 늘 함께 지내는 아내는 형편을 아는지라 소금이 떨어져도 말은 못하는데 빚쟁이는 받지못할 채권이지만 자기형편도 답답하니 빚받으러 찾아온다. 맥빠진 이집 가장은 빈주머니 툴툴 털고 장거리에 나가보니 외상술값이 걸린 주모가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것을 다행으로 여긴 가장은 허탈한 심정을 빈속에 술로 채우고 있다. 이 모습은 비단 어느 가장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 어느시대에도 있을 수 있으며 지금처럼 IMF와 수재의 고통을 겪는 많은 가정에도 있을 것이니 나의 형편이 좀 낫다고 하여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시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인 12세 어린 나이일때 내 선친(先親)께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라는 당부와 함께 일러주신 시인데 4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기억하고 명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박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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