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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계획표
제222호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다. 구석구석 남아있는 눈들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린다. 며칠만 더 있으면 쌓였던 눈 밑에서 새 봄이 얼굴을 내밀 것 같다. 그러면 나는 4학년이 된다. 작년 봄, 3학년이 될 때 나는 정말 일년을 알차고 보람있게 보내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생활 계획표를 만들었다. 처음 계획표를 짤때 나는 하고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하루 스물네시간이 모자랐다. 시간을 쪼개고 나누어서 빽빽하게 계획표를 채웠다. 일 년 후에는 내가 최고가 될 것 같았다. 뭐든지 잘 할 수 있고, 자랑거리가 많아진다고 상상하니까 마음이 뿌듯했었다. 그리고 일 년이 흘러서 이젠 4학년이 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바라던 일과 계획을 한 가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 같아서 창피하다. 엄마는 내가 너무 거창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오늘 4학년 새 계획표를 만들었다. 커다란 국 대접을 엎어놓고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그 동그라미 속에 시계 눈금을 그린 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것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자는 시간을 조금만 줄여야지! 12시부터 8시까지 꿈나라. 학교 다녀와서 한시간 동안 복습, 피아노 학원 갔다와서 영어 공부. 그리고 저녁을 먹은 다음에 끔찍한 수학 공부를 한다. 그 다음에 책을 읽거나 일기 쓰기. TV 보는 시간은 아예 없앴다. 바이올린도 배우고 싶은데 어디에 집어넣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엄마가 “너 이거 정말 다 지킬 수 있니?” 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계획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솔직히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다른 애들도 쉬는 시간이 없는데… 엄마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고 하시며 10시부터 자고 7시에 일어나는 걸로 고치라고 하셨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예습을 한 다음에 학교에 가기로 했다. 바이올린 학원에는 피아노를 더 배운 다음에 보내준다고 하셨다. 그 대신 수영장에 다니라고 하셨다. 나는 뚱뚱해서 수영장에 가기 싫은데 엄마는 그러니까 가야 된다고 우기셨다. 수영장 가는 문제는 나중에 아빠랑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그리고 학교 끝나고, 저녁 먹고, 한 시간씩 노는 시간도 끼워 넣었다. 내 계획표가 왠지 헐렁해 보인다. 다른 애들은 학교 끝나면 컴퓨터, 발레, 영어 회화, 미술, 글짓기 교실 그리고 저녁 먹고 또 학원 가고 하루 종일 쉴 틈이 없는데 나만 게으른 것 같다. 그래서 걱정이다. 엄마는 실천할 수 없는 계획표는 있으나 마나 한 거라고 그러신다. 그리고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하면 한가지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고 하셨다. 엄마 말씀이 맞긴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걱정이다. 엄마가 뭐 더 집어넣고 싶은 거 있으면 수학을 한 시간 더 넣자고 하셨다. “엄마, 그러면 정말 실천할 수 없는 계획표가 되는데? 지금이 딱 좋아요. 이 정도면 내가 틀림없이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수학만은 제발…” 홈페이지http://wonjae.pe.ly <방이초등 3년>

토요저널  hhr@toyo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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