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호

얼마 전 눈이 온 다음부터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게다가 땅이 온통 얼어붙어서 밖에 나가 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매일 집에서만 빈둥빈둥 거리다 보니 심심해서 죽겠다. 오늘 엄마한테 새로나온 게임CD를 사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안된다고 딱 잘라서 거절하셨다. 나는 시간을 정해놓고 날마다 조금씩만 게임을 하겠다고 졸랐는데, 엄마는 내가 약속을 안지킬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컴퓨터 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데, 더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눈이 나빠져서 안된다고 하셨다. 내가 약속을 안지킨 건 인정한다. 하루에 한시간씩 두번만 인터넷을 하기로 엄마랑 약속했었다. 그런데 사이버 고양이 키우기를 시작하면서 약속을 지키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엄마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말에 화가 치밀었다. 나는 게임CD만 사주면 정말 약속을 꼭 지키려고 했었다. 화가 나서 나도 엄마에게 공격을 시작했다. 지난번에 엄마가 젓가락을 짝짝이로 싸주셔서 점심시간에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창피당했던 일, 그리고 엄마가 전화 수화기를 들기만하면 한시간씩 수다를 떠시는 것 등등. 나는 엄마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큰 목소리로 엄마의 약점을 공격했다. 결국 내가 이겼다. 나중에 엄마는 꼴도 보기싫다고 하시며 다른 방으로 가버리셨다. 엄마한테 이겨서 좋긴 좋은데 마음이 답답했다. 컴퓨터를 켰다. 부팅하는 동안 멍하니 앉아있는데 책상 위의 분홍색 작은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쓰신 육아일기다. 외할머니가 이민 가시기 때문에 지난주에 엄마랑 외가집에서 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나는 육아 일기를 펼쳤다. 첫장은 내가 태어난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내 왼쪽귀가 눌려서 엄마가 매일 만지면서 펴주었더니 예쁜 귀가 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그 다음주 일기에서는 내 배꼽 위에 말라붙어 있던 탯줄이 떨어졌다. 엄마는 엄마와 나를 연결해주었던 탯줄이 없어지니까 왠지 조금 서운하다고 하셨다. 앞으로는 스스로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란다고 쓰여 있었다. 내 숨소리가 조금만 거칠어도, 땀을 흘려도, 우유를 적게 마셔도 엄마는 조마조마 걱정을 하셨다. 내가 웃고 움직이면 엄마는 기뻐하셨다. 엄마는 나랑 눈이 마주친 것도 좋아서 일기에다 쓰셨다. 심지어 내가 누런 똥을 어른만큼 많이 쌌다고 좋아하셨다. 나는 엄마가 쓴 내 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나를 애기라고 부르신다. “우리애기… 우리애기…”하시면서 엉덩이를 두드려 주시거나 볼에 뽀뽀를 해주신다. 우리 엄마는 마음씨가 너무 착하고 약하시다. 아빠한테도 지고 나한테도 진다. 쑥스러웠지만 내가 잘못했다고 엄마한테 사과했다. 착한 우리 엄마는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웃으셨다. 나도 웃었다. 이제부터는 엄마한테 심통을 부리지 않을 거다. 아빠랑 싸울 때도 엄마 편만 들거다 홈페이지http://wonjae.pe.ly <방이초등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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