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호

내가 할아버지께 한자를 배운지 거의 2년이 되어간다. 일주일에 두번씩 배우는데, 처음 시작할때는 그 시간이 지루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공부하다 물 마시러 가고 화장실에도 가고 시간만 때우면서 게으름을 피웠다. 특히 한자를 예쁘게 그리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복잡한 가로 세로 획을 빠트리지 않으려고 신경쓰다 보면 글자 모양은 넓적하고 길쭉하고 제멋대로였다. 나는 내게 필요하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한자를 배우는 것이 불만이었다. 한글로 뭐든지 쓰고 읽을 수 있는데 왜 어려운 한자를 배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한자를 많이 알면 책 읽는데 도움이 되고 글짓기도 잘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도 나는 한자 공부가 하기 싫어서 “다른 애들은 컴퓨터하고 영어공부만 한단말이야!”하고 불평해도 내 말은 통하지 않았다. 투덜대면서 몇달동안 한자를 배우고 나니 어른신문에 아는 한자가 가끔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는 그럴때마다 엄마 앞에 신문을 들이대고 그 글자를 읽으면서 뽐냈다. 그러면 엄마는 “맞어! 맞어! 우리딸 한문 박사됐네”하고 칭찬해 주시면서 “그럼 그 옆에 있는 글자는 뭐지?”하고 물어보신다. 내가 “그 글자는 아직 안배웠어” 그러면, 엄마가 한자를 내게 또 가르쳐 주신다. 이렇게 한자를 한 글자 한 글자 배우다 보니 지금은 내가 왜 한자를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요즈음은 역사책과 수필집을 많이 읽는데, 처음 보는 어려운 낱말을 만나도 한자의 훈과 음을 이것저것 생각해보면 그 뜻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알고보니 예전에 내가 책을 읽을때 뜻을 모르고 그냥 지나쳤던 단어들은 거의 다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들이었다. 한자는 한 글자에 긴 뜻을 담을 수 있어서 쓰기에 편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글을 쓸때도 한자로 된 적절한 말을 골라쓰면 내 생각을 더 간단하고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내가 처음 할아버지께 한자를 배울때는 수업을 빼먹을 궁리만 했는데 이제는 한자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지겹지는 않다. 오히려 할아버지랑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울 때가 더 많다. 얼마전에 할아버지께서 컴퓨터 공부를 시작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가르치시는 것을 흉내내며 내 컴퓨터 실력을 자랑했더니 할아버지께서 놀라셨다. 할아버지의 컴퓨터 실력은 빨리 늘지 않는다. 내가 처음 한자공부를 시작했을 때랑 비슷하다. 할아버지는 내게 한자를 가르치시고 나는 할아버지께 컴퓨터를 가르쳐 드릴 수 있다. 나는 할아버지와 문문교환(文文交換)을 하는 셈이다. 요즘 나이드신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하는 짓을 못마땅해 하시고 젊은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처럼 할아버지와 문문교환을 하면 지식을 쌓을 수 있고 글짓기도 잘하게 되고 세대차이도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서로 서로 생각이 통하게 된다. 앞으로도 할아버지와 나는 갖고있는 지식과 생각을 열심히 맞바꿀 것이다. <방이초등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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