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호

나는 수학을 잘 못한다. 가끔 엄마한테 잡혀서 수학을 배우는 날은 집안이 발칵 뒤집어 진다. 엄마는 처음에 상냥하게 가르쳐 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점점 파이트 모드로 바뀐다. 결국 엄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속이 터진다고 하며 나를 마치 노예 팔듯이 아빠에게 넘겨 버린다. 아빠도 마찬가지로 처음엔 친절하지만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땀을 뻘뻘 흘리다가 웃통까지 벗어버린다. 그 때가 되면 나는 겁이 나고 긴장이 돼서 내가 알았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 빨리 그 시간이 지나 가기만을 기도한다. 그러나 아빠는 내가 문제를 다 풀 수 있을 때까지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내가 낑낑대고 겨우 문제를 다 풀면 아빠는 한숨을 푹 쉬며 ”그래도 건강하니까 다행이다. 건강이 최고지 뭐" 그러면 엄마가 옆에서 “그럼요” 그러신다. 나는 인터넷에서 만화를 보고 게임을 할 때가 제일 즐겁다. 글짓기를 하고 피아노 칠 때도 마음이 평화롭다. 그러나 수학은 딱 질색이다. 수학 시간만 되면 지옥에 끌려 온 것 같다. 모든 엄마들은 자기 아들 딸들이 예쁘고 공부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컴퓨터도 잘하고 무엇이든 잘하기를 바라신다. 그런 엄마들에게 우리들은 김밥이다. 엄마들은 세상에서 제일 맛이 좋은 최고의 김밥을 만드는 김밥마녀가 되고 싶어한다. 최고의 김밥을 만들기 위해서 단무지, 당근, 오이, 계란, 맛살, 햄, 모든 재료를 넣은 다음, 이것들이 밥알과 잘 어우러지도록 김밥에서 즙이 나올 때까지 양손으로 꽉꽉 눌러서 김밥을 만드신다. 나는 훌륭한 김밥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요새 피아노와 수영을 배우러 다니는데 시간이 모자란다.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학원 갔다와서 영어 공부를 하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책을 읽으면 TV를 볼 시간이 없다. TV를 보면 밤늦게 까지 눈 비비며 일기를 써야 한다. 밀린 수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이리저리 미루다가 한번에 몰아서 구박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다른 아이들은 보통 학원을 네 군데나 다니는데 언제 밥을 먹고 언제 잠을 자는지 궁금하다. 친구들은 여름 방학에도 여전히 바쁘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학원에 늦을까봐 인사만 겨우 한다. 엄마들은 김밥 마녀가 되고 싶어하시고 우리가 최고의 김밥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김밥이 아니다. 김밥에 재료를 너무 많이 넣으면 잘 다물어지지 않거나 김밥이 터져서 불량 김밥이 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너무 많을 것을 집어넣으면 오히려 이상한 김밥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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