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호

엄마와 함께 전철을 탔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께서 내 무릎 위에 종이 한장을 올려놓고 지나가셨다. 그 할머니는 나뿐만 아니라 전철에 앉아 잇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례대로 같은종이를 한장씩 나누어 주셨다. 그 종이에 적혀있는 내용은 할아버지가 병에 걸렸는데, 수술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껌을 한 통에 500원씩 팔아서 그 돈을 모아 수술비를 마련한다고 했다. 나는 엄마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 호주머니에는 딱 500원이 있다. 나는 새로나온 콜라 냄새나는 지우개를 갖고 싶어서 떼를 썼다. 그러나 엄마께서는 지금도 지우개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새로 나올때마다 사줄 수 없다고 하셨다. 겨우 조르고 졸라서 500원을 타낸 것이다. 집에 가는길에 문방구에 들려서 그 돈으로 콜라지우개를 사려고 하던중이었다. 그 할머니는 저쪽 끝까지 종이를 한장씩 나누어 주고, 이제 내가 앉아있는 쪽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몇가지 껌을 내민체 고개를 숙이고, 기다리고 서있지만 껌을 사주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종이만 다시 건네받는 할머니는 정말 힘이 없어보였다. 쌀쌀한 날씨에 얇은 옷을 입고 있어 더 초라하게 보였다. 내 마음은 걱정으로 휘감겼다. 할머니가 다가올수록 나는 조마조마 했다. 할머니께서 내 앞에 오실때까지 짧은 시간에 선택을 해야 했다. 껌을 사면 콜라지우개를 살 수 없다. 엄마한테 구박받으면서 겨우 타낸 돈인데, 헛수고로 돌아가긴 싫은데…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수술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 슬프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500원을 꺼냈다. 내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착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깝긴 하지만 마음이 뿌듯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건강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봤다.<방이초등 3년> ※ 본지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정원재 어린이의 글을 매호 연재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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