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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기 시인의 우리고장 문화유적 답사기 18
제225호

광진교 개통식서 한학자 최씨 노인의 예언에서 ‘천호동’명 유래 상일공립보통학교→상일초등학교, 구서국민학교→천호초등학교로 변경 옛날 우리 고장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벼 보리 밀 조 수수와 수박 참외 호박 가지 오이 무가 풍성하고, 콩 팥 깨 목화가 잘 되는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농한기에는 인근 산으로 가서 땔감을 마련하였다. 우마차 달구지 길마(소 등에 안장을 얹은)에 통나무 장작 솔가지 가리나무를 가득 싣고 광나루와 살구지다리를 건너 시그문 안으로 가서 나무를 팔았다. 천호동의 유래는 1957년도에 구천면장을 지낸 이현섭(李賢燮 78세)씨에게서 자세히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어른들중 우리 고장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분이었다. 1936년 한강에서 두번째로 광진교가 착공한지 5년만에 준공을 하게 되었다. 개통식을 거행할 때 제일 먼저 건너야 할 사람은 다복한 장수 노인이어야 했는데 대표로 뽑힌 사람은 곡교리에 거주하는 수염이 긴 한학자 최씨 노인이었다. 최노인은 행사를 마치고 북망지(北望址 : 임금에게 북향재배 하던 지금의 천호동 뒷산)에 올라 갔다. 광진교 구경을 나온 인파들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이곳에 집이 천호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다. 그 말대로 곡교리는 천호가 들어섰고 지금은 만호가 훨씬 넘게 집이 들어 서 있다. 6·25와 1·4후퇴 이후 한수 이북으로부터 피난민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어느날 밤에는 군트럭 160대에 피난민을 가득 싣고 오기도 하였다. 철원 금화 양구 연천 등지의 주민들이 계속 들어왔다. 쌀 배급통계에 의하면 무려 30만명이나 되었으니 그 때의 모습을 짐작할 것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잠을 자는 숙소였다. 노상이나 처마밑 창고나 학교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었다. 피난민들은 야산을 점거하여 움집과 판자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천호동과 성내동은 그때부터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한·일합방이후 조선총독부시절 지금의 강동구에는 명일리 개물에 구천면사무소(현재 죽림선원)가, 상일리에 순사주재소가, 교육기관으로는 유일하게 상일공립보통학교가 있었다. 상일공립보통학교는 상일심상소학교(上一尋常小學校)로, 구천국민학교로, 상일국민학교로 지금은 상일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어 왔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1946년에 구서국민학교가 생겼는데 이것이 지금의 천호초등학교인 것이다. 우리 고장의 토박이 칠십대 이상은 모두 상일초등학교 졸업생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어진 인물은 3·15부정선거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최인규(崔仁圭) 내무부장관이다. 그가 사형 당한 것을 후배들은 몹시 안타까워 하고 있다. 개물에 있던 구천면사무소는 6·25때 불타 없어졌다. 이현섭 면장은 임시로 이연상의 집(현재 구사거리 고려인삼상회)에서 업무를 보다가 지금의 강동종합복지관 자리에 신축을 하여 구천면사무소를 이전하였다. 성내리에는 안말이라고 하는 집단부락이 있었다. 성내동지역 대부분은 논과 밭이었고 지금의 강동구청 일대는 기름진 논이었다. 이곳을 오동지벌이라고 하는데 몽촌으로 건너 다니는 오동지다리가 있었다. 광복되기 전까지 구천면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곳은 암사리였고 다음이 성내리였다. 그래서 국민학교 운동회때 마을대항 줄다리기나 모래가마니 메고 뛰기를 할 때면 언제나 서로 맞수가 되었다. 암사리에 가서는 노래 부르는 척도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암사리 사람들은 움 깊은 사랑에 모여 장구를 치고 공명가나 적벽가를 부르고 시조나 여러 가지 창을 잘 하였다. 명일리에 가서는 키 큰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명일리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큰 편인데 승상산(丞相山 : 일명 聖三峰)에서 장차 큰 장수가 태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일본놈들이 쇠말둑을 박고 산 이름을 수상산(水相山)이라 바꿔버렸다. 명일리에서 서부면으로 넘어가는 곳에 옴메기구덩이가 있다. 이곳에서 용마가 나온다는 설이 있었다. 옴메기구덩이에서는 언제나 찬물이 솟아서 나무꾼들이 옷을 오르면 이 물로 깨끗이 낫게 하였다고 한다. 이 역시 일본놈들이 산 허리를 끊어버리고 옴메기구덩이를 메꾸어 버렸다. 우리 고장 강동구에서 제일 높은 산 丞相山에 다시 올랐다. 「水相山」이라는 표석을 보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일제의 잔재를 언제 청산 할 것인가? 강동구지 편찬위원

토요저널  hhr@toyo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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