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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기 시인의 우리고장 문화유적 답사기⑪
제202호

가래여울은 조선의 재상 추탄선생의 고향 옛날처럼 가래여울에서 줄낚이나 던져볼까 왕숙천(王宿川)의 맞은편 강언덕에 개래울(楸灘)이라는 말이 있다. 팔당댐이 생기기 이전에는 옥수 같은 맑은 물과 금빛 백사장과 검은 오석과 갖가지 형상의 자갈이 끝없이 널려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삭막하기만 한 가래여울에서 영의정까지 올라간 추탄선생이 태어나고 자랐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셋째, 추탄 오윤겸(楸灘 吳允謙) 선생은 1559(명종 14)~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재상이다.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 또는 토당(土塘), 본관은 해주(海州)다. 선공감역 희문(希文)의 아들이고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호체찰사(兩湖體察使) 정철(鄭澈)의 종사관이 되었다. 과거의 대과에 오르지 못하고 대신의 막료가 된 것은 오윤겸이 처음이었다. 후에 평강현감으로 있으면서 대과에 급제하였다. 예론에 일가견을 가졌으며 외직에 있으면서 민폐를 다스려 선치 수령으로 명성을 얻었고, 중앙관으로는 온아단수(溫雅端粹)하고 공정한 자세에 견지 주위에 촉망을 받았다. 만년에 재상의 자리에 10여년간 있을 때 백성의 편의를 위하여 연해공물(沿海貢物)의 작미(作米)와 대동법의 시행을 추진하고 명분론의 반대를 물리치면서 서얼의 등용을 주장하였다. 또한 사람을 아끼고 보호함으로써 어진 재상이라 불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경제의 재주가 부족하고 시폐와 왕의 잘못을 직언하는 기개가 모자라 평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덕업의 수양에만 힘 쓸뿐 사장(詞章)에는 뜻을 두지 않았으나 그 문장은 평이 하면서도 조리가 있고 시는 맑으면서도 운율에 어긋남이 없었다고 하며, 성혼 문화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죽기 직전 유언으로 조성의 시호를 청하지 말 것과 신도비를 세우지 못하게 하였으나 1663년(현종4) 충간(忠簡)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광주의 구암서원에 배향되고, 평강의 산앙재영당(山仰齋影堂)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시문과 소차를 모은 「추탄문집」을 비롯하여 「해사조천일록(海사朝天日錄)」등이 전하고 있다. 「추탄집(楸灘集)」은 오윤겸의 시문집으로 3권 2책 목판본이다. 1692년(숙종18)에 손자 도일(道一)이 대제학으로 있으면서 간행하였다. 권말에 박세체(朴世체)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연보와 시로 오언절구 15수, 칠언절구 99수, 오언율시 43수, 오언배율 2수, 칠언율시 37시, 오언고시 3수. 권2는 소 31편, 차 60편. 권3은 계사(啓辭) 9편, 의(議) 35편, 정문(呈文) 2편, 제문 10편, 책(策) 1편, 서(書) 5편이며 부록으로 묘갈명 1편으로 김상헌(金尙憲)이 찬하였고, 묘지명 1편은 남구만(南九萬)이 찬하했다. 그의 글은 대체로 문사(文辭)가 평이하고 시사와 감정의 표현이 명백한 것이 특징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장본(奎章閣藏本) 도서번호 奎4031로 있다. 「동사상일록」은 광해군때 오윤겸이 통신정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쓴 사행일록이다. 1617년(광해군9)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간의 기록으로 일기와 시로 되어있다. 일기는 빠진날이 없이 기록되었으나 정사로서 중요시되는 문제, 즉 양국 사이의 예의, 피로인(被虜人) 쇄환 등을 위주로 기록하였다. 조선 시행이 관백과 문답한 내용중 전일의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는 신의를 지키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퍽 우호적인 태도였음을 엿볼 수 있다. 시는 모두 23수 인데 사행간의 문답한 시, 지나는 동안에 적은 영물시(詠物詩), 대마도의 학자들과 화답하였거나 내려준 시가 수록되어 있다. 가래여울에 앉아서 추탄의 오언율시(五言律詩) 한 수를 골라 국역을 하면서 광나루의 아름다운 옛 모습에 흠뻑 젖어 보았다. 광진정사우음(廣津亭舍偶吟) 광진정사에서 우연히 읊다. 수파연명집(手把淵明集) 손에 도연명의 문집을 들고서 호아소수음(呼兒掃樹陰) 자식을 불러 나무 그늘밑을 쓸게 하였다. 강류청불진(江流靑不盡) 강의 흐름은 푸르러 한이 없고 운출백무심(雲出白無心) 구름은 솟는데 하얗고 무심하다. 한강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다는 참게와 자라가 우리 고장을 감돌아 흐르는 가래여울에 까지 많이 서식하고 있다니 예날처럼 해질녘에 강에 나가 수수깡 묶음과 줄낚을 던져 보아야 하겠다. 우선 게가 많아 해천(蟹川:게내)라 이름지은 게내로 가 보았다. 아무리 강을 살펴보아야 참게 한 마리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게내는 썩어 있었고 강물은 죽어 있었다. 주변의 생활하수와 외곽에 있는 공장과 농장의 폐수와 독수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걱정이 앞선다. 이런 물을 먹고 물고기가 죽어가고 있는 것도 큰 일이지만 사람까지 죽어가고 있다면 더욱 큰 일이 아닌가. 게내를 거닐면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생각하였다. 인간이라고 하는 생물의 한 종류가 그 자신의 서식처인 자연을 무자비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자신의 과욕을 자제할 줄 모르고 닥치는대로 환경을 오염, 파괴하면서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다. 상일동에 있는 유형문화재 제96호인 옥천군 유창(玉川君 劉敞)의 묘소를 다시 찾았다. 우리고장에 현존하는 유일한 제각(祭閣) 해천재(蟹川齋)에 앉아 쉬면서 볼품없는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1959년 이전에는 초가집이었는데 중고 목재를 구입하여 지금의 건물을 지어 놓았다. 강릉유씨대종회(江陵劉氏大宗會)에서는 문화재 장소임을 감안해서라도 전통 양식의 크고 멋진 제각을 지어 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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