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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기 시인의 우리고장 문화유적 답사기(4)
제0호

일자산을 내려와 풍납토성(風納土城)을 찾았다. 풍납토성은 아차산성(峨嵯山城)과 마주하는 우리 고장에서 역사상 가장 큰 토목공사로서 사적(史蹟)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이곳은 수풀이 무성하고 큰 강이 흘러 뱀이 많이 서식하여 '뱀들'이라 하고 성 이름도 뱀성이라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음이 변하여 뱀들이 바람들이(風納)로 바뀐 것이다. 풍납토성은 남쪽의 몽촌토성(夢村土城)과 송파로 길이 트여 있고 서북으로 아차산성이, 동쪽으로는 고골(古邑)의 이성산성(二城山城)이, 동남으로는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사각형으로 이어주는 군사 지리적 요소로 보아 백제 초기의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추정되는데 아차산성과 더불어 한강의 중요한 나루인 광진(廣津)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要塞)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 고장은 원래 광나루(廣津)로 인해 형성되기 시작한 도진촌락(渡津村落)이었다. 광나루는 신라시대에는 북독(北瀆)이라하여 중사(中祀)를 행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양진이라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하사(下祀)로 제사를 받들었고 이때부터 광진(廣津)이라 하였다. 끊어진 광진교 동쪽편(천호2동사무소)에 강동예찬시비(江東禮讚詩碑)가 세워져 있다. 먼진 돛단배 모형에다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의 시를 새겨 놓았다. 1995년에 강동구청에서 남송 김영묵(南松 金永默)선생의 글씨를 받아 오석(烏石)이 아닌 하얀 화강암에다 새겨 놓았기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작은 글씨는 알아 볼 수가 없다. 더구나 누가 국역(國譯)을 하였는지 모르나 엉뚱한 말로 풀이를 하여 놓았다. 잘못된 것은 지워버리고 다시 오석에다가 따로 세워 놓았으면 한다. 여기에 비석의 글과 내가 번역한 글을 함께 기록해 놓는다. 어떤 것이 시인의 표현이 맞는가를 비교해 볼 일이다. (1) 비석 광진촌서만조(廣津村墅晩조) 건곤납납일강호(乾坤納納一江湖) 천지간의 좋은 경치 강호상에 들어오는데 천리혼성수묵도(千里渾成水墨圖) 천리나 넓은 안계(眼界)가 수묵화를 펼쳐 놓았구나 백조거변수명멸(白鳥巨邊收明滅) 갈매기 날아 가는데 수면이 밝았다 어두었다 청천진처산유무(靑天盡處山有無) 푸른 하늘 저끝엔 산이 보인다 말다 하네 고원송국여삼경(古垣松菊餘三徑) 고원의 소나무 국화는 옛날 선비 서성대던 길이요 몽리상마노일구(夢里桑麻老一區) 몽리의 뽕나무 삼밭은 오랜 옛날의 한 마을이라네 보이간간장낙일(步履看看將落日) 한걸음 두걸음 보고 또 보노라니 벌써 해 서산에 지려는데 우여화기윤여수(雨旅花氣潤如수) 비 지난 뒤의 꽃기운이 젖처럼 흐르누나. (2) 본인의 국역(國譯) 광진 마을 별장에서 저녁때 바라보며 하늘 땅 모두 담은 하나의 강호 천리가 완전히 수묵 그림 되었다. 하얀 새 가는데 물이 반짝이고 푸른 하늘 다한 곳에 산이 으슴프레하다. 옛 담장 밑 솔 국화 세갈래길 나아 있고 몽리(몽촌)의 뽕나무 한 지구에서 늙는다. 거닐면서 보고 보는데 해가 지려하고 비온 뒤 꽃기운 촉촉하여 우유와 같다. (註, 삼경(三徑):도연명 등 옛 선현들이 담장밑에 길을 세갈레로 만들었음). 박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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