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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날의 오후' 그리고 '개 같은 내인생’

여느 해도 마찬가지지만, 연초라서인지 개띠 해를 맞아 개에 관한 이러저러한 행사도 이어지고, 개의 순종적인 장점이 부각되는 여러 미담사례도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지곤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사용되는 언어(특히, 욕이나 속어등)에서는 개가 좋은 뜻에서 사용되지 않는 듯 하다. 어떤 사람의 품행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벗어났을 때 우리는 「개 같은....」이란 수식어를 붙여 평하기에 익숙해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개의 어떤 면이 그리도 사람들의 조롱거리인지, 다른 짐승이나 가축들보다 개가 그리도 욕의 대명사가 되어야하는 이유가 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다소 오래 전에 상영된 영화들이지만 독자들의 「개 같다」는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두편의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에 같은 「개 같은...」을 사용했지만 전혀 다른 느낌과 교훈을 주는 영화들이다.

우선 우리나라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를 보자. 이 영화는 백상예술대상과 대종상, 청룔영화제에서 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하와이 국제영화제에서는 대상을 수상했다. 상영된 지 10년도 지난 영화라 독자들의 기억에 머물러 있을지 걱정이라 대략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40도를 육박하는 찜통 더위가 괴롭히던 한여름 오후, 변두리 서민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사회의 모순과 그 해결책을 고민하고자 하는 감독의 시선이 느껴진다. 의처증이 있는 남편으로부터 매맞는 아내가 폭행을 견디다 못해 집밖으로 도망쳐 나오자, 이웃여자들이 그 남편을 집단 구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고, 살인혐의를 받고는 아파트 옥상에서 자연스레(?) 농성을 벌이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녀들은 매맞는 아내, 몸을 파는 여성, 자신의 노동력을 남편으로부터 착취(!) 당하는 주부, 소위 게이, 독신녀와 이혼녀, 그리고 착한 여자 신드롬에 빠진 여자등 우리사회의 여성문제를 보여주기 위한 설정은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영화는 (필자의 주관적인 평가지만) 밋밋한 여성학강의를 듣는 것 보다 훨씬 더 우리사회의 여성문제를 가슴에 와 닿게 스크린에 담았다. 서로의 처지를 떠나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해 있는 현실 앞에 느끼는 동지애(!)는 감동과 함께 우리사회가 여성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도 생각하게 해준다. 물론 화해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다른 한편의 영화는 「개같은 내인생(My Life As As Dog)」이다. 스웨덴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어린 주인공의 시선으로 본 정감 넘치는 성장영화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학창시절에 봤으니 꽤 오래된 영화다. 1985년에 만들어져 국내에는 1987년경에 개봉된 영화로 기억된다. 마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유년시절의 아련함을 느낄 수 있다. 엄마의 병치료 관계로 시골 친척집으로 보내진 소년이 그 생활에 적응하면서 남자 같은 여자친구와의 풋사랑이 동화처럼 그려졌다. 거기에다 북유럽의 아름다운 풍경까지 더해져 정겨움과 아늑함을 준다.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거나 불우한 인생여정을 그린 영화는 아니다. 유럽에서는 개 같다는 말이 반드시 욕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영화의 제목을 너무 직역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는 스웨덴의 사회문제나 모순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영화가 항상 사회의 모순을 꼬집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헐리우드영화에서 다반사로 보여주는 전쟁, 마약, 갱, 술수, 삐뚤어진 인간군상, 미국중심의 세계관 및 극단적 애국주의와는 분명히 대조를 이룬다. 한마디로 전혀 「개 같지 않은」인생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 시대의 자화상이자 가치관의 단면을 보여준다. 때로는 우리사회가 가야할 지향점을 제시한다. 어느 사회나 모순은 있기 마련이고, 대립과 갈등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그러한 모순들을 어떻게 해결해 가는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의-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민주적 소양과 그 민주적 소양의 자양분이라 할 수 있는 올바른 가치관이 그 사회에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쪼록 개띠해인 올 한 해 욕으로서의 「개」가 아니라 위 두 영화에서처럼 차별과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으로서, 또는 동화 같은 아름다운 유년의 모습과도 어울릴 수 있는 의미의 「개 같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 한주/변호사

새거제신문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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