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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라, 그래도 우리는 견딜 만하다

금년에는 열대야가 다른 어느 해보다도 심했다. 본래 기계 바람에 너그럽지 못한 내 몸은 이 여름에도 골바람만을 고집했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산줄기를 타고 내린 바람이 내 거실에 와서 덜커덕 주저앉기를 기대했지만, 그도 여의치 않았다. 대야에 찬물을 떠서 발도 담가 보았다. 역시 내 의식은 덥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질 못했다. 옛 사람들은 독서삼매로 모든 것을 잊고 살았다는데, 궁둥이가 가볍기 그지없는 나는 그 경지의 문턱에서 엄살만 부리고 살았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묘책이 없다. 흐르는 땀을 닦으러 수건을 찾아 거실에 나오니, 텔레비전의 화면 속에서 이상한 것이 굴러간다. 똑 무 토막 같은 것이 한편에는 얼굴 모양을 하고 데굴데굴 굴러간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 사람이었다. 팔 하나 없이 굴러가고 있는 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숨이 멎으며 굳어 버렸다. 무덥던 열대야는 어디론가 밀려나갔다. 아니, 더위에 엄살을 부리던 나라는 존재까지도 어디론가 날려 보낸 것이다.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화면에 비치는 한 인간의 모습에 나는 그냥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유태호. 나이는 여섯 살. 양팔이 없는 아이.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매만져 빚은 듯이 생긴 아이. 겨우 있는 발도 발가락이 여덟 개뿐인 아이. 이동하려면 몸통으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아이. 밥도 제 발가락으로 숟가락질을 하여 먹는 아이. 어지간하면 남의 도움으로 살 법도 한데, 결코 의존하지 않고, 제 스스로 해결하려는 아이. 모든 것을 제 스스로 타개해 나가려고 몸부림치는 아이.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전혀 얼굴에는 그늘이 없는 아이. 그 아이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고 있을 때, 나는 점점 화면 앞으로 다가서서 코를 바짝 들이밀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 아이는 천사가 되어 더욱 큰 모습으로 나를 질타했다.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입양기관인 「상락원」에 올 때에는 2.2킬로의 핏덩이였다고 한다. 손수건 한 장으로 온몸을 가릴 수 있는 작은 아이라 살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질게 태어난 아이는 지금 우리 앞에 작은 거인처럼 천사가 되어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어느 유명한 철인의 달변보다도 훨씬 우리의 가슴을 울려주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토록 어려운 삶을 살면서도 이 아이의 얼굴에는 그늘 한점이 없었다. 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사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몸이 불편해도 남에 의지하려 하질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 하는 삶의 자세는 보는 이의 가슴을 써늘하게 쓸어내리기에 충분했다. 저런 의지가 어떻게 여섯 살 난 장애 아이에게서 솟아날 수 있을까. 옆에서 보기에 불편해 보여 도와주려 하면, 『아니, 제가 할 수 있어요』하며 도움을 마다하는 모습은 의젓하다 못해 대견했다.

너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의 팔이 없음을 티 없이 스스로 인정하고, 『괜찮아요.』 하며 자립의 의지를 내세우는 아이. 앞으로 커서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고, 넥타이 매고 운전하고 싶다는 아이. 무슨 질문이든 거리낌 없이 시원하게 대답하는 적극적인 아이. 그 모습은 너무도 해맑아서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비록 몸집은 왜소하고 불편해도 세상을 다 이해한 달인처럼 어른스럽게 대답하는 그 모습은 보면 볼수록 천사임에 틀림없었다.

누가 장애가 있으면 불행하다 했는가. 그럼 우리는 장애가 없어서 행복한가. 세상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저 아이의 환한 미소는 진정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천사를 바라보며 나태하기 이를 데 없는 나를 만난다.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좌절했던 과거가 부끄럽다. 금년 여름이 열대야라며 못 견뎌한 자신이 한없이 밉다. 제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와도 저 아이의 십분의 일이나 될 법 한가. 지금 내가 팔이 없고, 발이 부실하여 몸통으로 굴러가야 한다고 가정만 해도 무섭지 않은가. 나도 저 아이처럼 환하게 누구에게나 웃음을 선사할 수 있을까. 이 멀쩡한 몸으로 무엇은 못하겠는가. 내 앞에 놓인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정말 우리는 신에게서 과분한 대접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 고마움을 알면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베풀어야 한다.

추석이다. 경제 탓으로 썰렁한 명절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견딜 만하다. 건강한 육신을 부여 받은 우리는 신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일어서라.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우리의 의지력을 움켜잡고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요즈음 복지시설을 찾는 마음도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우리는 저와 같은 아이들로 인하여 힘을 얻었으니,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 함께 하는 명절, 추석 명절을 보내야 한다.

강 돈묵/거제대학 교수

새거제신문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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