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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이순신 그리고...

좀 지난 영화지만 삼국시대의 마지막을 배경으로 한 영화 「황산벌」을 최근에 다시 본 적이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그 당시 위치를 기준으로 지금의 각 지역 사투리를 사용하여 웃음을 주는 코메디이면서도 비장감과 함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특히 요즈음 「삼순이」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 김선아가 계백장군의 부인으로 출연하여 남긴 대사는 처연하고도 가슴을 후빈다.

계백장군이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며 적의 손에 비참하게 죽느니 차라리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거두라고 종용하자, 『호랑이는 그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그 이름 때문에 죽는 걸 왜 모르냐』며 평생을 전쟁터만 돌아다닌 남편에 대한 원망과 고단한 세월을 남편 대신 가장으로서 묵묵히 걸어 온 자신의 한을 토해 내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남여의 사랑을 다룬 것 만큼이나 흔한 고전일 것이다.

최근에 즐겨 보게 된 드라마가 있다. 「불멸의 이순신」이 그것이다.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는 문외한인 나로서는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우나 영웅적인 주인공보다는 그 전쟁으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민초들에게 눈길이 간다.

이름 없이 전사하는 병사들과 약탈과 보복의 대상일 뿐인 백성들-특히 여성과 어린이-을 보면 전쟁에서의 승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회의스럽다. 이들에게 있어 전쟁은 어떻게 와 닿을까? 전쟁 주도자들이 부르짖는 적에 대한 증오와 자국에 대한 애국심, 그리고 추상적인 이념 따위가 머리나 가슴에 와 닿는 게 아닐 것이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일 뿐이지 이들에게 애국심은 어떻게 보면 부차적이고 사치일 것이다.

전쟁에 대한 기록이나 평가에 있어서도 승자와 영웅이 중심이 된다. 전쟁과 역사를 평가함에 있어 승자의 위치에서 기술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나, 그 「당연」이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또한 전쟁에 대한 기록은 그 시대의 지배계급과 지배계층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왔다. 그러나 승자의 평가와 기록이 반드시 진실이 아니듯 지배계급의 입장이 곧 「객관」은 아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는 또 다른 평가가 따르기도 한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하여도 여러 평가가 있으나, 외세를 끌어들인 부분에 대하여는 대체로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임진왜란과 이순신장군에 대한 평가도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이견이 많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당시 전쟁의 도구가 되고, 약탈의 대상이 된 민초들에 대한 기록은 대체로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주체이고 시대의 아픔을 여과 없이 몸으로 부딪혀 온 사람들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간혹 숫자적인 의미로만 표현되어 온 것이 다반사였다.

최고의 문명과 합리적 이성이 지배한다는 현재에도 이러 저러한 구실로 전쟁을 일으키는 야만적인 사람들이 있다. 종교적 반대파에 대한 테러를 일삼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사실은 자국의 군수업체들의 이익과 나아가 자국의 경제적 이익 추구를 위하여)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도 있다. 힘 있는 우방(?)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참전하는 나라도 있다. 늘 그렇듯이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 정당한 전쟁인냥 포장한다. 방어적 전쟁이 아닌 침략적 전쟁은 그 명분을 무엇으로 포장하더라도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지구상에 생물이 탄생한 그 순간부터 전쟁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생물들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단면이라고 주장한다면 굳이 반론할 생각은 없지만, 그 내용은 아마도 죽이고 또 죽이고 파괴하고 또 파괴하는 것이라는 데는 별 이론이 없을 듯 하다.

세상의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 더 전쟁에 대하여 몸서리칠 수밖에 없는 이 땅은 아직도 휴전상태다. 아마도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 질 때 까지는 계속하여 이러한 상태가 이어질 것 같아 안타깝다.

그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는 전쟁의 폐해, 참혹함, 야만과 비열함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고, 나아가 전쟁에 대한 시각에 있어서도 민초를 중심에 두고 사고할 수 있는 역사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번쯤 계백장군의 입장보다는 그 부인과 가족의 입장, 이순신의 입장보다는 임진왜란 당시의 민초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그야말로 「서민적인」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다.

김 한주/변호사(거제시의회 고문 변호사)

새거제신문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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