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지역 초등학교 앞 병아리·메추리 장수들

매년 4~5월이면 초등학교 앞에서 벌어지는 낯익은 풍경이 있다.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노란 병아리들이 박스에 담긴 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봄의 전령사인 듯 『삐악 삐악』소리를 내는 이 녀석들을 호기심 어린 초등학생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조그만 병아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아이들은 「집에 가서 잘 키우면 닭이 된다」는 병아리 장수의 유혹(?)에 금새 현혹돼 코묻은 돈을 주고 병아리를 산다.
더러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대부분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아이들이 상심하는 건 당연지사. 애지중지 하던 병아리가 죽어버렸으니 말이다. 그것도 밤새 소리없이 죽어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갓 부화된 메추리 십중팔구 ‘밤새 안녕(?)’
부모들 ‘사지 말라’ 시켜도 호기심 못말려

누구의 기억 속에나 있을 법한 어릴적 병아리에 대한 추억은 이처럼 아픈 기억으로 남은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서는 여름철 성수기를 맞아 산지 닭 가격이 오르면서 병아리 값도 덩달아 뛰는 바람에 병아리 대신 메추리를 갖고와 동심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병아리와 달리 메추리는 온도변화에 상당히 민감해 장사꾼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아이들이 사간 메추리가 열에 열마리 모두 「밤새 안녕」해 버리면서 동심만 멍들게 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K초등학교 앞.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교문 앞 길목에 자리잡은 메추리 장수는 집으로 학원으로 향하는 초등학생들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박스에 담긴 갓 부화된 메추리를 구경하려고 순식간에 몰려든 아이들. 노란 병아리와 달리 줄무늬가 있는 메추리가 신기한지 유심히 쳐다보던 이 학교 신모(9)양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뒤로 하고 메추리 두 마리를 샀다. 행여나 다칠까 품안에 넣고 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신양의 표정엔 얼마후 찾아올 아픔을 모르는 듯 웃음만 가득했다.

그러나 이미 예견된 불행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다음날 아침 싸늘하게 식어버린 메추리를 발견한 신양이 이내 울음을 터뜨린 것. 생명을 담보로한 얄팍한(?) 상술에 동심이 멍드는 순간이다.
죽은 메추리를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었다는 신양은 『「집에 가서 잘 키우면 건강하게 큰다」는 메추리 장수의 말을 믿었는데 이렇게 됐어요. 죽은 메추리가 떠올라 마음이 아파요』라며 울먹였다.

메추리가 밤새 죽어버려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비단 신양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날 메추리를 사간 아이들 대부분이 같은 경험을 했을 터.
물론 메추리를 판매하는 것 자체가 문제시 되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는 오래도록 남는 법이다.

초등학생 딸아이를 둔 학부모 김모(34)씨는 『얼마 못가서 죽을게 뻔해 사오지 말라고 타일러도 봄이면 꼭 병아리(메추리)를 사온다』며 『그때마다 며칠씩 시름에 잠기는 딸아이를 보면 병아리 장수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며 빗나간 상혼을 나무랐다.

이동열  skj6336@kornet.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