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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 너였구나!이승열 /전 거제교육장

최근의 일이다.

마당이나 텃밭에 나가면 치과에서 임플란트와 크라운 시술을 받던 1년 반 전의 기억이 불쑥불쑥 나곤 했다. 입안이나 코에서 나는 냄새가 지난했던 그 기억을 불러내는 듯 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그 냄새는 치과에서 크라운 시설 전, 신경 처리 시술 때 사용하던 의약품 냄새였다.

냄새는 개별적이겠지만 나는 병원의 냄새는 주로 소독약 냄새로 기억하고 치과의 냄새는 이를 갈 때 나는 타는 냄새와 그 화공약품 냄새로 기억한다.

특정한 맛과 냄새는 특정한 장소와 때의 기억을 불러내어 기진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리움에 몸서리치게도 만든다. 휘발성 화합물인 향기와 달고 짜고 시고 쓴 복합적인 혀의 감각에 불과한 맛이 어쩌자고 막무가내로 사람에게 다가와 경험과 감성을 지배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혹시 그때의 약품이 치아 사이에 남아서 조금씩 녹아 나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무지한 추측을 하며 서성대다가 기억을 불러내는 원인을 발견했다. 그것은 닭장 옆의 작은 꽃밭에 심겨 있는 백합꽃의 향기였다.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맡다보니 치과의 그 기억이 점차 또렷해졌다.

꽃대가 불안하게 길어서 아침저녁으로 살펴보던 그 백합꽃의 향기였다니….

향기와 맛이 특정한 기억을 불러내는 과정은 상통하는지, 아니면 전혀 별개의 계통인지를 찾아보았으나 어디에서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단지 이미 진 백합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 걸 보니 냄새라는 휘발성 분자도 생사라는 운명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듯 했다.

여러 색이 합쳐지면 명도가 떨어져서 탁한 색이 되고 여러 식재료가 섞이면 계통 없는 음식이 되듯, 여러 향기가 섞여서 봄비 온 뒤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면 여러 추억이 한꺼번에 소환되어 혼미해질 것인가.

평소 추상적이라서 근거 없다고 여긴 ‘아로마 테라피’나 ‘원예치료’의 의학적, 심리학적 근거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듯 했다.

나이가 주제넘게도, 성취의 경험을 가질 때마다 장미 향기를 맡고 사랑을 느낄 때마다 천리향을 맡는다면 좌절의 실의의 개인별 맞춤 치료제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식의 유치한 생각까지 드는 판이다.

지난주에 아내와 들렀던 동부의 어느 어촌마을에 피어있던 주황빛 능소화를 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생전에 당신은 그 꽃을 무척 좋아하셨다. 그러고보니 냄새와 맛, 색깔은 같은 신경과 정서를 자극하여 우리를 회귀시키는 계통발생학적 진화의 순기능적 과정인지 모르겠다.

천리향꽃이 지니 봄이 갔듯이 백합꽃이 지면 여름이 지날 것이니, 그때쯤이 되어야 나의 팍팍했던 치과 치료의 기억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을 것이지만 꽃향기 하나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고 늙은 나는 참 딱하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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