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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가능한가 ㉙[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1) 기본소득이 넘어야 할 벽들 ③ : 기본소득 실험과 장애물들

“19세기가 노예 해방, 20세기가 보편적 선거권 도입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기본소득의 세기가 될 것이다.” - 필리프 판 파레이스

파레이스의 예언은 현실이 될 것 같습니다. 2021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선 후보들이 아직 공약까지는 아니지만, 일제히 기본소득 또는 변형 기본소득, 우파적 기본소득 등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본소득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합니다.

단연 21세기가 기본소득의 세기가 될 수 있는 확률을 높인 이유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과 그에 따른 대처 과정 때문으로 보입니다. 제2의 기계시대, 즉 인공지능으로 대규모 실직이 예상되고 생산력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궁핍이 늘어나며 불평등이 더욱 깊어질 것이 예상되는 이 시대에, 재난 기본소득으로 이름 붙여지기도 했던 재난 지원금에 대한 경험은 천 마디의 말보다 더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국가에서 실시하는 사회정책은 늘 ‘실험’이라는 단계를 거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역사도 오래되었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의 역사도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는 1968년부터 1974년 사이, 미국에서 실시한 기본소득 실험이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미국의 실험은 주로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NIT)’라 불리는 우파적 관점의 기본소득 실험이었습니다. 2021년 현재 대선 주자 유승민이 얘기하는 것인데, 실험이 진행된 곳은 뉴저지, 펜실베니아, 아이오와, 노스캐롤라이나, 시애틀, 덴버, 게리, 인디애나 등이었습니다.

실제로 실험이 아니라 현금 지급을 시행하고 있거나, 기본소득과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미국 알래스카 영구기금배당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이란에서도 석유와 관련된 재원을 활용하여 2011년부터 현금 지급을 시행하고 있는데, 연간 총지급액은 국민소득의 15%에 이릅니다. 대략의 지급금액은 1인당 월 455,000리알로 미화로 환산하면 40달러에서 45달러 정도가 됩니다. 물론 시행 초기에 이란 인구의 96%인 7,530만 명에 이르렀던 수혜대상이 지금은 5,130만 명 정도로 축소되기는 하였습니다.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Programma Bolsa Familia)’도 있습니다. 브라질은 ‘시민 기본소득(The Citizen’s Basic Income)’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을 법률로 제정하였으나 아직 전면적으로 시행되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그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만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보츠와나 등지의 제도화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책들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기본소득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볼사 파밀리아처럼 일정한 조건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고, 사회부조의 성격을 갖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기본소득 실험은 2021년 현재, 세계 곳곳에서 완료되었거나 진행 중입니다. 대표적인 실험들을 살펴보자면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실험, 네덜란드 지자체들의 ‘신뢰’ 실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B-민컴’ 실험, 중국 마카오의 카지노 수익 배당 확대, 미국 캘리포니아 스톡턴 시의 기본소득 실험, 미국 Y콤비네이터 연구소의 실험, 독일의 하르츠플러스 실험, 스코틀랜드의 실험, 우크라이나 파블로흐라드 실험, 인도 시킴(Sikkim) 주의 실험 등이 있습니다.

○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과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의 진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결과와 최종보고서가 채 나오기도 전에 “실패 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후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가짜뉴스였습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도 ‘부결되었다’라는 데만 거의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부결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진실일까요?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2017년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전국 단위로 무작위 통제 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을 한 세계 최초의 기본소득 실험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은 핀란드 사회보험청으로부터 실업급여를 받는 장기 실업자들, 즉 기초실업보장(basic unemployment security) 대상자들로 제한되었습니다. 임의로 선정된 장기 실업자 2000명에게 2년 동안 매달 560유로, 우리 돈으로 약 75만 원을 지급했지요.

아주 거칠게 요약해서 사실을 말하자면, 이 실험은 “실업급여를 주면서 구직 노력을 계속 강요하는 것과 강요하지 않을 때, 어느 쪽이 더 구직 노력을 더 열심히 할 것인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실업급여를 받을 때 1개월에 1번씩 구직활동(취업 노력)을 증명해야 하는데, 실업급여 수급자들이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하는 형식적인 심사를 2000명에게는 2년간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 셈입니다.

또 우파 집권당에 의해 진행된 이 실험은 장기 실업자들이 ‘실업급여만 받고서 일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데 취업률이 높아질 수가 있을까요? 저로서는 참 이해되지 않는 발상이었습니다만, 이것이 핀란드 우파 집권당의 고정 관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게 더 안타까운 지점입니다.

어쨌거나 이 실험은 결론적으로 실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용(노동의욕 증진) 효과를 보면 실험집단(2000명)이 비교대상이 되는 통제집단에 비해 1년간 평균 고용일이 높았습니다. 노동의욕 증진 효과에 있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 거지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결과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강요가 사라지자 스트레스와 우울감, 외로움이 줄어들어 정신건강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에 대한 신뢰감과 생활의 활력, 자원봉사 활동 등의 측면에서도 훨씬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핀란드에서 기본소득을 받았던 전직 기자 투오마스 무라야라는 사람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입니다. 이 사람은 신문사의 구조조정으로 해고되어 실업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When you are secure and free, you feel better. (안전하고 자유롭다고 느낄 때, 기분이 더 좋아집니다.)”

이후 무라야씨는 정규직 직장을 갖지는 못했지만,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강제적 구직 코스에서 받던 스트레스에서 탈출했고, 이후 책을 2권이나 쓸 정도로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는 2016년 6월 5일에 행해졌고, 기본소득 도입은 찬성 23.1%로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23:77 압도적 차이로 부결’이라거나 ‘우리 돈 300만 원에 달하는 기본소득 현실성 없어’ 따위의 제목을 단 기사로 도배를 했지요.

그런데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광장에 모여 결과에 환호하며 즐거워했습니다. 무슨 까닭이었을까요?

‘기본소득 시민운동’이라는 시민 단체를 2006년에 설립하고 이끌었던 다니엘 헤니(Daniel Hani), 엔노 슈미트(Enno Schmidt), 필립 코브체(Philip Kovce) 등이 기본소득 국민투표 운동을 시작했을 때, 기본소득에 그나마 우호적인 사람은 전 국민의 9~10%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표에 표를 던진 사람 가운데 63%가 기본소득을 앞으로 계속 논의하는 데 동의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지요. 그러니까 반대 투표자 가운데 2/3에 가까운 국민이 기본소득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당장 도입하는 데는 부담스러워 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이 이러하니 기본소득 활동가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고, 찬반 투표 결과와 액수만 바라보았던 사람들은 맥락을 잘못 짚었거나, 무지했거나, 처음부터 반대 의견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스위스가 전통적인 복지국가에 해당하고 노동을 신성시하는 분위기의 국가라 국민 투표 이전에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국민투표를 계기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 데에만 목표가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국민투표와 그 논쟁 과정을 기본소득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이지요.

덧붙여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 자유와 정의가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다니엘 헤니와 필립 코브제의 책은 2015년에 독일어로 먼저 발간되었는데 책 제목은 『모두 다 있는데, 왜 부족할까?(Was fehlt, wenn alles da ist?)』입니다. 질문을 던진 것이고 질문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경제학자 레온티예프의 경고를 상기시킵니다. 레온티예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화한 기술조건에 걸맞은 소득정책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우리의 낙원은 재화가 넘쳐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굶주리는 사람들로 넘치는 곳이 될 것이다.”

○ 가장 중요한 기본소득 실험 : 캐나다 ‘민컴(Mincome) 프로젝트’

아무래도 가장 의미 있는 기본소득 실험은 캐나다 중부 마니토바주 위니펙의 도핀(Dauphin)에서 실시한 ‘민컴(Mincome, Minimum Income) 프로젝트’와 ‘나미비아 기본소득 보조금(Basic Income Grant, BIG)’이었습니다. 이번 회에는 민컴 프로그램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컴 프로그램은 1974년부터 5년 동안 실시하기로 계획되었습니다. 마니토바주 정부는 도핀시 주민의 30%에 해당하는 1,000 가구에 1년 단위로 아무 조건 없이 일정한 금액을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지금 가치로 환산했을 때, 4인 가족 기준으로 대략 1만 9,000달러, 우리 돈으로는 2,000만원이 조금 넘는 액수입니다.

이와 함께 연구자들은 도핀으로 내려갔고, 경제학자는 수혜자들이 노동량을 줄이는지 관찰했으며, 사회학자들은 가정생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지켜보았습니다. 인류학자들까지 도핀으로 가서 주민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실험은 4년 동안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선거가 실시되었고, 주 정부의 내각을 보수주의자들이 장악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곧 중앙 정부가 총비용의 3/4을 지원하는 값비싼(?) 실험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고 실험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이 실험의 자료들은 2009년까지 창고에 처박혀 잠드는 운명을 맞이하였지요. 2,000상자에 들어있던 1,000건의 인터뷰 자료가 말입니다. 2004년에 마니토바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인 에블린 포르제(Evelyn Forget)가 이 상자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고, 2009년에 발견하기 직전까지 잊혀진 자료였다고 합니다.

그 자료들은 폐기 직전에 에블린 포르제 교수에 의해 비로소 세상에 나왔습니다. 포르제 교수가 분석한 내용의 최종 결과는 “민컴 프로젝트는 완벽하게 성공했다”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결과였을까요?

놀랍게도 도핀의 청소년들의 학업 성적이 향상되었고, 입원률이 8.5%나 줄어들 정도로 주민들이 건강해졌으며, 가정폭력이 현저히 줄었고, 정신병원을 찾는 횟수는 압도적으로 줄었습니다. 민컴 프로젝트가 주민들을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흔히 “일을 안 하는데 돈을 주면 누가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겠느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사람들이 게을러진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민컴이 제공되는 기간 동안 노동 시간은 고작 남성 1%, 기혼여성 3%, 미혼여성 5%밖에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노동 시간을 줄인 다음 무엇을 했느냐? 어떤 사람은 가족을 돌보는데 시간을 더 썼고, 젊은이들은 결혼을 미뤘으며 대학에 진학하거나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민컴 프로그램은 완전히 성공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할 말이 없었고, 옹호론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포르제 교수는 분석을 시작할 당시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실험들이 국가 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포르제 교수의 말이 정곡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우파는 국민이 더 이상 일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 좌파는 국민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참으로 답답함이 느껴지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캐나다 민컴 프로젝트가 보여준 결과와 시행되었던 모든 기본소득 실험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놀랍게도 일치합니다.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거지요.

<덧붙임>

○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기본소득과 유사한 과거 사례는 그리스의 시민소득이나 영국의 스피넘랜드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스피넘랜드 시스템은 그것의 결과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의도하지 않게 오용한 사례들이 많습니다만 관련 내용이 워낙 많아 기본소득 연재가 끝난 후 기회가 닿는다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바르셀로나의 ‘B-민컴’, 즉 최저소득 보장(Guarantee Minimum Income) 실험은 캐나다의 민컴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본소득 실험은 다음 회에 한 번 더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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