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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무엇인가 ㉕[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13)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역사 ⑦ : 제3의 물결

가이 스탠딩의 분류법에 따르면 ‘제3의 물결’은 1960년대와 1970년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 기술의 진보로 노동 인력을 기계가 대체해 감에 따라 노동수요가 감소하면서 발생하는 구조적 실업)’과 빈곤의 증대라는 이중적인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복지권운동과 민권운동, 이탈리아에서는 ‘가사노동에 임금을!’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여성들의 투쟁과 아우또노미아(Autonomia, 자율주의)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였고, 영국에서는 ‘청구인 조합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열망의 분출’이 담고 있는, 주장되었던 내용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보장 소득’ 또는 ‘보장 최저소득’으로 불렸던 오늘날의 기본소득 주장이었습니다. 제러미 리프킨의 용어로는 ‘사회적 소득’이었지요.

○ 제3의 물결 ① : 로버트 테오발드(Robert Theobald, 1929–1999)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로버트 테오발드의 주제는 ‘자동화와 보장소득’입니다. 테오발드는 자동화로 인해 재화는 풍족해지지만, 노동자의 노동력은 남아돌게 될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후 특히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용이 축소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 ‘업무재구축’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이 말은 인원 삭감, 권한이양, 노동자의 재교육, 조직의 재편 등을 함축)’이라는 말로 포장된 고용 축소는 1980년대 미국의 기업들로 하여금 물가 상승을 고려하더라도 92%의 세전 이익 증가를 낳게 하였고, 주주들의 배당금은 10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3배로 증가하게 만들었지요.

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약자 쥐어짜기’라 이름 붙인 이러한 흐름은 신기술과 생산성 향상으로 주주들에게는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 주었지만, 제조업 부문의 시간당 임금액은 오히려 감소시켰으며, 풀타임 일자리를 축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반실업 상태나 마찬가지인 시간제 노동의 비율을 늘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이미 예측되었던 바 있었습니다. 테오발드는 여러 과학 분야, 경제학, 미래학 관련 인사들과 함께 ‘삼중혁명 임시 대책 위원회’를 결성했고, 1964년 3월에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컴퓨터 자동제어 혁명(Cybernation Revolution)’에 대비해 정부가 모든 이에게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는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촉구했던 것이지요. 또한 테오발드는 이 서한의 주요 저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테오발드의 견해에서 ‘보장 소득(Guaranteed Income)’이란 모든 개인이 확고하게 두 발로 설 수 있는 ‘경제적 발판(Economic Floor)’입니다. 또 그는 “보장소득이 주어지게 되면 개인들은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행할 능력”을 갖게 되며, “보장소득의 계획은 모든 개인이 스스로 무엇을 하고자 하고 또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결정할 권리와 능력”을 갖는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고 『자유로운 사람들과 자유로운 시장(Free Men and Free Markets)』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또 결과적으로 제4차산업혁명에 돌입한 현재 상황으로 판단해보건대, 56년 전에 테오발드와 그의 동료들이 했던 예측은 더욱 현재성을 갖습니다. 테오발드가 1960년대에 한 다음의 서술을 21세기의 누군가가 했다고 우기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자동화가 계속해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노동력 대체를 가져오기 때문에 소득과 노동간의 전통적인 관계를 파괴할 필요가 있다. 기계가 더욱 더 많은 노동력을 대체함에 따라서 사람들은 공식 경제에서의 취업과는 별도로 소득을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의 생존이 보장되고 경제는 생산된 서비스의 소비에 필요한 구매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테오발드는 자신의 보장 소득을 「기본 경제 보장 계획(Basic Economic Security Plan)」이라 명명하였고, 소득과 노동의 연계를 끊는 새로운 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계획에서 성인에게는 연간 1,000달러, 아동에게는 600달러의 정액 보조금을 지급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예컨대, 두 명의 자녀를 둔 4인 가족에게는 연간 합계 3,200달러가 보장 소득으로 제공되는 것이지요.

그가 보장 소득에 관한 기본 문제의식을 최초로 정리했던 『풍요의 도전(The Challenge of Abundance)』은 1961년에 출간되었는데, 넘치는 풍요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그는 “풍요의 경제학에서 가장 높은 사회적 목표는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이었고,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의 박탈이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며 따라서 생산방식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도적 발전이 요구된다고 보았지요.

제가 보기에 테오발드의 문제의식은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의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Utopia for Realists)』에서 더욱 확장•발전됩니다. 브레흐만은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풍요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은 확실하지만 자본주의만으로는 풍요의 땅을 유지할 수 없다.”고 얘기하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것일까요?

○ 제3의 물결 ② : 제임스 토빈(James Tobin, 1918-2002)과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 1908-2006)

음의 소득세(또는 마이너스 소득세, 부의 소득세 등으로 칭해짐)는 밀턴 프리드먼이 최초로 주장한 것도 아니었고, 그만의 전유물도 아니었습니다. BIEN에 따르면 프랑스 경제학자 앙투안 오귀스탱 쿠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가 1838년에 최초로 사용했고, 현대적 의미로는 러시아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인 아바 P. 러너(Abba P. Lerner, 1903-1982)가 『제어의 경제학: 복지 경제학의 원리(The Economics of Control: Principles of Welfare Economics)』에서 먼저 사용했다고 합니다.

음의 소득세는 우파의 기본소득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때의 음의 소득세는 주로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한 것을 말합니다. 철저한 시장 만능주의자였던 프리드먼은 낮은 수준의 음의 소득세라고 해도 사적 자선보다 못한 차선책에 불과하다고 여겼고, 그의 관점에서 어떤 종류의 보장소득이든 그저 ‘피해대책의 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다르게 진보적 입장에서 ‘음의 소득세’를 연구하고 주장했던 사람이 토빈과 갤브레이스였습니다. 물론 토빈의 음의 소득세는 전체 구조상 프리드먼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⑯ 참고)

예일대학의 경제학 교수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빈이 자신의 논문들을 통해 주장했던 것은 ‘공제 소득세(Credit Income Tax)’였습니다. 프리드먼과 결정적 차이가 나는 점 가운데 하나는 ‘공제 소득세’를 통해 공공부조와 사회보험 제도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측면에선 BIEN의 방향성과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흑인들을 비롯한 가난한 이들의 경제적 지위를 개선하고 이들의 소득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회제도를 좀 더 노동 친화적이면서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또 ‘공제 소득세’는 모든 가구에 기본수당 전액을 자동으로 지급하며, 비록 개인 수준은 아니나 가구 수준에서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 즉 보편성을 띤 ‘데모그란트(demogrant)’에 가까웠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였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좀 극적인 경우입니다. 갤브레이스는 자신의 베스트셀러인 『풍요한 사회(The Affluent Society)』의 제1판(1958년 발간)에서는 보장된 최소소득의 가능성에 의구심을 표시했습니다. “직접적인 빈곤해결책이 채택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간접적인 해결책, 예컨대 교육이나 빈민가 환경 개선 등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빈곤에 대한 전통적(?)이면서 완고한 접근법을 거부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1966년에는 이렇게 주장했지요.

“노동의 동기부여를 파괴하는 최상의 환경은 바로 우리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현행 복지 시스템 자체다. ‧‧‧ 그리고 빈곤에 대한 해독제로서 그 효과가 확실한 것은 소득의 제공만한 것이 없다.”

이어서 1969년에 발간한 『풍요한 사회』 제2판에서는 ‘생산과 사회보장의 분리(The Divorce of Production from Security)’라는 장을 추가하여 “고용이 불가능한 이들, 고용하기가 대단히 어렵거나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은 생산과 무관한 소득 원천을 제공하는 것이다. ‧‧‧ 만약 어떤 개인이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면(혹은 아예 구할 생각이 없다면), 그러한 사람은 이러한 소득으로 생존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습니다.

제가 보기에 경제학자로서의 갤브레이스는 우리 사회가 빈곤을 다루는 데는 전통적이고 완고한 사고의 틀 안에 갇혀 있는 반면에, 풍요를 어떻게 처리하고 최대한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낯설어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는 ‘사회적 평화의 주요 원천’으로서 풍요와 보장 소득을 생각했으니까요.

이러한 점이 갤브레이스를 ‘단선적 인과율’에 빠진 줄도 모른 채 빠져 있었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과의 차이였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러한 입장을 고수했는데, 1999년 6월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20세기 미완의 과제’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모든 이가 괜찮은 양의 기본소득을 보장받아야만 합니다. ‧‧‧ 이제 부자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도 여가 시간을 좀 즐겨도 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노학자의 이런 노력은, 즉 버트런드 러셀이 20세기 초에 했던 주장을 20세기 끝자락에서 더욱 완곡한 표현으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눈물겹고, 그만큼 고정관념이 무섭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다만,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상황은 성큼 다가왔지요. AI가 우리 속으로 걸어들어와 자리 잡기 시작했으니까요.

○ 제3의 물결 ③ : 조지 맥거번(George Stanley McGovern, 1922-2012)

1969년 미국 1월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닉슨은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을 “더 많은 복지가 아니라 더 많은 ‘노동연계복지’”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바탕하여 의회에 제출되었던 ‘가족지원계획(Family Assistance Plan, FAP)’조차 거부당했습니다. (‘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⑯’ 참고)

197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맥거번 상원의원은 선거 캠프에 토빈과 갤브레이스를 합류시켰고, 기본소득 제안을 공약에 포함시켰습니다. 이 기본소득은 ‘데모그란트’, ‘국민 소득 교부금’, 또는 ‘최저 소득 교부금’이라 불렸습니다.

맥거번의 제안은 경제학자 바실리 리온티예프(Wassily Leontief, 1905-1999)가 정리하여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모든 남녀 및 아동이 연방 정부로부터 1년에 한 번씩 돈을 지급받을 것을 제안합니다. 지급 액수는 수급자의 재산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또 토빈은 맥거번에게 1인당 1,000달러의 지급 액수를 제안하였습니다. 4인 가족의 경우 연간 4,000달러를 받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그 당시의 빈곤선의 기준과 대략 일치하는 금액이었습니다.

하지만 닉슨 측에서 펼친 악의적인 공격, 즉 ‘일하는 소수가 너무나 게을러 일하지 않고 복지나 타 먹는 다수를 부양하는 제도’라는 프레임의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맥거번은 애초의 주장에서 후퇴했고, 실망한 지지자들은 지지를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대중의 불안감을 자극한 닉슨의 프레임이 주효했던 것인지, 애초의 주장을 철회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던 것인지, 전체 선거 과정에 있었던 몇 차례의 실수가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인지, 복합적인 작용의 결과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으나 1972년 11월의 선거에서 맥거번은 닉슨에게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기본소득 논쟁이 반대파의 승리로 끝나갈 즈음인 1976년, 미국의 49번째 주인 알래스카에서 지금의 기본소득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는 ‘알래스카 영구 기금(Alaska Permanent Fund)’이 설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닉슨과 같은 공화당 소속의 주지사 제이 해먼드(Jay Hammond, 1922-2005)에 의해서 말이지요.

<덧붙임>

○ 제3의 물결 시기의 모든 내용을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밀턴 프리드먼의 음의 소득세,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Where Do We Go From Here?)』와 ‘알래스카의 배당금’, 복지권운동, 아우또노미아 등은 생략하였습니다. (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⑮, ⑯ 참고)

○ ‘삼중혁명 임시 대책 위원회(The Ad Hoc Committee of the Triple Revolution)’가 정의한 삼중혁명이란 ‘증대하는 자동화의 자동제어 혁명’, ‘상호 파괴의 무기 혁명’, ‘인권혁명’을 일컫습니다. 위원회는 린든 존슨 대통령의 ‘빈곤과의 전쟁’을 높게 평가했지만, 당면한 3중 혁명의 상황에서는 충분하지 못하므로 새로운 환경의 급진적인 변화에는 급진적인 새로운 전략이 요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 데모그란트(demogrant)는 ‘민주주의(democracy)’와 ‘급여(grant)’가 연결된 용어입니다. 범주형 기본소득이라 볼 수 있는 사회 수당(예컨대, 아동수당이나 기초 노령 연금 등)의 다른 이름이 데모그란트이나, 저는 이 이름을 어원에 맞춰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물질적 기반’으로서의 ‘사회적 급여’ 또는 ‘사회 배당’으로 풀이합니다.

○ 이 시기에 캐나다에서는 ‘민컴(Mincome, Guaranteed Minimum Income)’이라 불리는 ‘최저소득 실험’이 캐나다 연방 정부의 요청으로 위니펙(Winnipeg) 시와 도핀(Dauphin) 시에서 진행되었으나 보수적인 색채의 정권이 등장하면서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관련한 얘기를 비롯한 기본소득 실험들은 ‘기본소득은 가능한가’ 편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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