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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⑯[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3. 기본소득

5)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②

○ 좌파•우파와 기본소득

‘좌파와 우파(left-right spectrum)’라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 의회에서 혁명파는 좌측, 왕당파는 우측으로 나뉘어 앉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복잡하고도 광범위한 사회 현상과 역사, 다양한 기준점이 제시될 수 있다는 측면 등에서 좌파와 우파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직관적으로는 ‘사회적 평등’에 방점을 두는 정치세력을 좌파,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옹호하려는 입장이 우파입니다. 제가 보기에 경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를 개선•극복•해체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면 좌파, 유지•옹호•강화하려는 입장은 우파입니다.

일반적으로 우파는 ‘경제적 자유’와 정부 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하고, 좌파는 보통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정부의 개입을 옹호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실제 내용을 뜯어보면, 이에 대한 구분도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그때 상황마다 다를 때가 있으니까요.

또 우리는 흔히 자유를 강조하면 우파라는 생각을 하지만, ‘자유’에 대한 관점에서도 좌파와 우파가 나뉩니다. 자유주의라는 것도 우파 자유지상주의가 있는가 하면, 좌파 자유지상주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자’라는 것이나 좌파와 우파를 구분 짓는 일은 복잡•미묘하고,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려면 어느 정도의 오류를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고 고려해야만 구분선을 긋는 일에 그나마 근접할 수 있으니까요.

기본소득은 이러한 애매함과 함께 ‘지지’와 ‘반대’가 매우 다양한 관점에서 제기되고, 특정 이념을 대변하는 소득분배체계라 하기 힘들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BIEN(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의 인적 구성을 보더라도 좌파에서 중간, 우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습니다.

한 사례를 살펴보면, 현재 전세계에서 실현되고 있는 공적부조나 각종 사회수당과 배당들 가운데 BIEN의 다섯 가지 원칙에 가장 근접한 것은 알래스카의 ‘알래스카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 배당’입니다. 금액이 우리 돈으로 대략 월 30만원 정도의 낮은 수준이지만, BIEN이 제시하는 다섯 가지 원칙과 부합할뿐더러, 심지어 ‘공유자산’을 1/n로 나누는 것까지 닮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조성하고, 배당을 실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우파이자 공화당 소속의 주지사 제이 하몬드(Jay Sterner Hammond, 1922-2005)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알래스카 영구기금’은 BIEN의 주장과 맞아떨어집니다.

또한 도입 방안이나 경로에 있어서 BIEN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다양한 경로가 채택될 수 있다는 가능성, 기본소득제가 도입된다면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알 수 없다는 점도 좌우를 떠나 고려해야 할 점이라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보다 자유로우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요모조모 살펴보고 따져보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 세 가지의 기본소득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이끌고 있는 BIEN은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⑮’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① 주기성, ② 현금성, ③ 개별성, ④ 보편성, ⑤ 무조건성’이라는 다섯 가지 원칙을 고수하며, 이 원칙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엔 기본소득이 아니라는 단호한 입장을 취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원칙의 준엄함과 명확한 기준점의 제시는 매우 유효하다는 판단을 하게 합니다만, 가이 스탠딩이 기본소득의 ‘제3의 물결’이라 칭하며 ‘기본소득으로 향하는 진전’이라 평했던 역사성을 담보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남깁니다.

‘현실주의’라는 것이 ‘이상(理想)’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이상의 실현을 기다리는 태도라고 한다면, ‘고담준론(高談峻論, 뜻이 높고 바르며 매우 엄숙하고 날카로운 말)’보다는 사회복지학에서 얘기하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Now and Here)’라는 마음 자세가 더 적절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다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 정의는 BIEN 내부적으로만 합의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대한 역사적 기원도 다르게 서술됩니다. 그러함에도 이 다섯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기본소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이 다섯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해볼 수 있을뿐더러, 우파적 입장, 중간적 입장, 좌파적 입장에서의 기본소득을 비교•고찰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편의상, 기본소득을 ‘BIEN(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이 제시하는 다섯 가지 원칙을 모두 갖는 경우를 중간적 입장, 한 가지 이상 빠진 경우를 우파적 입장, 한 가지 이상 더 충족시키려 하는 경우를 좌파적 입장이라 놓겠습니다.

“어떤 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더 적절한 대안인가?”라는 물음을 갖고서 말입니다.

○ ‘음의 소득세’라 불리는 우파적 관점의 기본소득

우파의 기본소득은 1960년대 주로 미국에서 등장하였고 논의되었습니다. 이때는 구조적이고도 기술적인 실업이 증가할 때였습니다. 1964년에 존슨 대통령이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빈곤과 복지에 관련된 문제는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또한 1935년의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에 따라 만들어진 ‘부양 자녀가 있는 가족 지원(AFDC, Aid to Families with Dependent Children)’에 투입되는 복지 비용이 증가하고 있었던 것도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보장된 최소소득’의 초기 계획은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습니다. 1968년에는 전국 150개 대학에서 1,200명의 경제학자가 이를 지지하는 청원에 서명할 정도였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인 군나르 뮈르달, 폴 새뮤얼슨,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제임스 토빈, 얀 틴베르헌, 제임스 미드 등과 존 K. 갤브레이스, 그리고 사회학자들도 지지하였습니다.

‘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⑮’의 마지막에 언급했던 것처럼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역시 이것을 지지했습니다. 1967년에 썼던 글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나는 가장 단순한 접근법이 가장 효과적임이 입증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빈곤의 해결책은 현재 널리 논의된 수단을 써서 직접 그것을 없애는 것이다. 바로 기본소득이다.”

우파적 관점의 기본소득인 이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는 ‘마이너스 소득세’ 또는 ‘부(負)의 소득세’ 또는 ‘역소득세’라고도 불립니다.

신고전학파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은 1968년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음의 소득세’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현재의 법률 하에서 우리는 누구나 알다시피 양의(positive) 소득세를 냅니다. ‧‧‧‧‧‧ 역소득세라는 개념은 여러분의 소득이 손익분기점보다 낮을 때, 그중 일부를 정부로부터 지급받는다는 겁니다. 세금을 내는 대신 돈을 받는 거지요.”

프리드먼이 얘기한 내용을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렇습니다. 법률상 양의 소득세와 음의 소득세가 동시에 존재하고, 편의상 소득세율이 50%이며 그 기준이 3,000만원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4인 가족의 가장인 A씨가 연소득 3,000만원을 벌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A씨는 양의 소득세든 음의 소득세든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기준소득액이 실제 소득과 같기 때문이지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지만, 정부로부터 보조받는 돈도 없습니다. 일종의 손익분기점입니다.

그런데 B씨는 연소득 4,000만을 벌었습니다. 그러면 기준값 3,000만원과의 차액 1,000만원에 대한 50%의 세금 500만원을 납부합니다. 양의 소득세를 납부한 것이지요.

C씨는 연간 2,000만원을 벌었습니다. 기준값인 3,000만원에 1,000만원이 모자랍니다. 그러면 C씨는 모자라는 1,000만원의 50%인 500만원을 정부로부터 현금으로 지원받습니다. 이것이 음의 소득세입니다.

정리하면 A씨는 0원을 납부하였고, B씨는 500만원의 소득세를 납부하였으며, C씨는 오히려 500만원을 지원받은 셈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세후 소득은 A씨는 3,000만원, B씨는 3,500만원, C씨는 2,500만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 우파적 관점의 기본소득은 낯익습니다. 우리에게도 ‘근로자 세액공제’라는 제도가 있고, 연말 정산을 할라치면 각종 공제 항목을 두루 살핍니다.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 EITC(Earned Income Tax Credit)라고 불리는 ‘근로장려세제’가 있습니다. 근로장려세제는 세금환급의 형태를 띠는데, 근로장려금이라는 명목으로 지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근로연계형 소득지원제도이며, 납부할 세금을 공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장려금(정부 보조금)을 더 얹어주는 사회복지적 성격의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BIEN에선 기본소득이 아니라고 하지만, ‘음의 소득세’를 우파적 관점의 기본소득이라 한다면 이 역시 부분적으로는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이 ‘음의 소득세’를 왜 BIEN은 기본소득이 아니라고 할까요? 그 이유는 BIEN이 제시하고 있는 다섯 가지 원칙 가운데 두 가지만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 가지는 ‘주기성(1년 단위)’과 ‘현금성’입니다. 개별성, 보편성, 무조건성은 만족시키지 못하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 우파적 기본소득이 시행될 뻔 했던 나라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고, 이는 여론 조사로 이어졌습니다. 1964년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참가자의 68%는 연방 정부가 시민들에게 기본 인권과 최저 생활 임금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 결과가 나왔고, 1969년 이후의 여론 조사에서도 참가자의 73%가 이를 지지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미국 제37대 대통령 닉슨(Richard Milhous Nixon, 1913-1994) 행정부가 제안한 ‘가족지원계획(Family Assistance Plan, FAP)은 초기 계획보다 축소•수정되었을 뿐더러 초당적인 계획으로 자평하였으나, 하원을 통과한 이후 상원에서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민주당의 반대 이유는 ‘NWRO(National Welfare Rights Organization)’와 같이 제안된 금액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고, NWRO는 정부가 근로에 대한 요구사항 없이 급여 수준을 더 높일 수 있는 대체 계획을 요구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끝내 ‘보장된 연간 소득’이라는 용어를 거부했던 것 하나만으로도, 철학적인 관점에서조차 BIEN의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치권에서 국민의 열망을 담아내기에는 인식의 기반이 오른쪽으로 지나치게 쏠려 있었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초기 계획의 자격요건 중 일부를 보면, ‘18세 미만의 미혼 자녀가 있거나, 21세 미만의 자녀가 아직 학교에 재학 중인 경우’에만 가족이 FAP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소득이 없는 4인 가족은 최대 1,600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격조건이 더 제한되고 근로조건이 더욱 강화된 수정안마저도 하원과 상원을 거치며 대폭 재수정되었고, FAP는 끝내 좌초되었습니다. 그 대신 세금공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여기에서 되짚어보고 넘어갈 내용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보수적인 분위기의 미국에서는 개인이 아닌 가족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워 개별성의 원칙에 어긋났으며, 일정한 소득 기준 이하의 가족에게만 적용시키려 함으로써 보편성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임금 노동을 조건으로 내세워 무조건성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하이에크와 프리드만조차 기본소득을 지지한 이유는 기존의 복지제도를 이것 하나만으로 대체하고, 복지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축소시키며, 자유시장주의체제로 가는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는 점입니다. 전형적인 우파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이었던 것이며,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지요.

셋째는 기본소득 또는 ‘보장된 연간 소득’에 대한 높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거나 미미하기 짝이 없는 부정적 요소를 과대포장하여 축소•폐기시키려는 움직임이 거셌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기본소득뿐만 아니라 공공부조•사회수당•사회서비스의 확대 과정에 있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음의 소득세’라 하더라도 세부 사항이 비교적 폭넓었던 초기 계획이나 NWRO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더라면 미국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을 실시한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기본소득은 무엇인가 ⑭’에서 소개했던, 무지의 베일을 쓰고 원초적 입장에서 선택했던, ‘소득 기저 원칙’을 최초로 도입할 뻔한 나라 ‧‧‧‧‧‧. 그러나 현실은 빈곤과 불평등이 만연하며, 의료보험조차 최저 수준인 나라 ‧‧‧‧‧‧.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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