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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을 생각하다 ⑩[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2. 인간사회의 불평등

4) 불평등의 이유 ③ :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방식

○ ‘자본주의는 좋은 체제일까?’라는 물음

아주 오래전에 접했던 것이라서 누구의 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대략 이런 내용의 글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 가운데 ‘칼’이 있다. 이 칼은 음식을 장만할 때나 필요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자르고 다듬을 때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이 칼은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될 수도 있다.”

제가 보기에 이 칼은 ‘시장경제’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칼’에 비유하자면 ‘자본주의’라는 것은 사람을 죽일 때의 칼에 해당합니다. 또 행위 주체가 희석된 ‘자본주의’라는 말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만큼은 마르크스가 사용한 ‘자본가들의 체제’가 더 정확해 보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피터 플레밍(Peter Fleming)은 ‘파괴의 경제학’이라는 틀로 해석해내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ugene Stiglitz)는 ‘마피아 자본주의’로, 런던대학 SOAS 교수인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불로소득 자본주의’로 규정합니다. 또 독일에서는 ‘야수 자본주의’라는 말을 즐겨 쓴다고 합니다.

이 세 사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양심적이고 정직한 경제학자들의 의견은 매우 비슷합니다. 어쨌거나 자본주의를 지칭하는 긍정적 언어는 찾기 힘듭니다. 이는 그 본질이 신분제를 기반으로 한 폭력적 불평등체제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에 기반합니다.

다음은 가이 스탠딩의 『불로소득 자본주의』에 나온 내용입니다. 경제학자들의 서술들을 보다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로소득은 토지, 건물, 광물 채취, 금융투자로 생기는 불로소득과 특허권•저작권•상표권 같은 지식재산권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소득, 투자를 통해 얻는 자본소득,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기업 이익, 정부보조금을 받아 올리는 소득, 그리고 제3자의 거래에서 파생된 금융소득과 중개소득 같은 것들이다”

“불로소득자들은 소유권을 통해, 다시 말해서 희소한 자산 또는 인공적으로 희소하게 만든 자산을 소유하거나 통제함으로써 소득을 창출한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들이 ‘공정한 승부’라는 가치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앞서 인류가 생산을 조직하는 방식이 전통, 명령, 시장의 세 가지밖에 없었고, 이 가운데 시장을 통한 생산의 조직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견해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또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성질이 전혀 다르며, 신고전학파가 주장하는 ‘자유시장경제’는 ‘개꿈’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예컨대,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서브프라임 사태는 시장경제의 공정성이라는 가치가 훼손되고, 자본주의적 약탈이 진행된 사건이라 봅니다. 폴 메이슨(Paul Mason)이 쓴 『탐욕의 종말』은 이 사건의 과정 전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탐욕 뒤에 나타난 그들의 ‘무능’과 ‘기생적 태도’, ‘무책임’의 극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서브프라임 사태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금융업자들은 빈곤층에게 약탈적인 대출을 시행하거나,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주택 담보 대출을 제공하거나 초과 인출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국민들로부터 수십억달러의 거액을 뽑아냈다. ‧‧‧‧‧‧ 서브프라임 사태는 가난하고 못 배운 미국인들을 약탈 대상으로 이용하여 벌어진 결과였다.”

○ ‘지대추구(地代追求, rent-seeking)’와 ‘강도 귀족’

지대(地代)의 본래적인 의미는 ‘남의 토지를 이용하는 사람이 토지 소유자에게 치르는 돈이나 그 밖의 물건’을 뜻합니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는 더 넓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즉 ‘공급이 제한되어있는 상황에서 공급자가 얻는 이익’으로 의미가 확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대 추구 행위(rent seeking behavior)’라는 것은 특정인들이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공급을 제한하거나 비탄력적으로 만드는 행위’를 말합니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경제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뼈아파하는 지점이지요.

과거의 예를 보면, 중세 영주(특히 독일)와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기사들이 자신의 땅을 가로지르는 강 주변에 철망을 설치하고 지나가는 배에 철망을 걷어주는 대가로 통행료를 받았던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이 아주 투명(!)하고도 전형적인 지대 추구 행위에 속합니다.

이들을 ‘강도 귀족(robber baron, 강도 남작)’이라 불렀는데, 이들의 역사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철강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금융왕 모건, 자동차왕 포드 등으로 이어집니다. 현대에는 독과점 기업이 이에 해당하지요. 다만, 이들은 그들의 선조와는 다르게 불투명성을 지향합니다.

신약 개발이나 새로운 상품 개발 등에서 특허권•저작권•상표권 같은 지식재산권을 활용하여 울타리를 두르는 행위도 경제적 지대를 얻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지식재산권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물음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보호되어야 할 특별한 경우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사업자의 수를 제한하거나 어떤 직업의 자격자의 수를 제한하는 것도 지대 추구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강도 귀족’들의 행위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새로운 부를 창출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늘리는 데만 치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익을 확보하는 과정은 석학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불평등의 이유』에 잘 요약•정리되어 있습니다.

촘스키는 “1890년대의 도금시대(금칠갑을 한 시대, Gilded Age)나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보다 더 현시기는 극단적이다”라며, “‘인간 지배자들’이 부와 권력을 10가지 원리를 통해 집중시키며, 이것의 결과로 정부 정책이 전체 국민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부유층에게 막대한 이익을 주는 쪽으로 수정되었다.”고 분석합니다. 그가 말하는 ‘부와 권력 집중의 10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리1: 민주주의를 축소하라. 원리2: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라.

원리3: 경제를 개조하라. 원리4: 부담을 전가하라.

원리5: 연대를 공격하라. 원리6: 규제자를 관리하라.

원리7: 선거를 주물러라. 원리8: 하층민을 통제하라.

원리9: 동의를 조작하라. 원리10: 국민을 주변화하라.

이 ‘원리1~원리10’은 이 책의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한데, 눈치 빠른 분들은 위 10가지만 보아도 고개를 끄덕이지 싶습니다. (저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마지막 <참고>에 이유를 얘기하겠습니다.)

이 책은 흔히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투자 분위기 조성해야 한다’ 따위의 말들이 왜 헛소리인지를 간결하게 보여줍니다.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인가?’라는 질문이 왜 타당한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노학자에 대한 예의로 이 책에서 두 번이나 언급한 말을 소개합니다.

아담 스미스가 ‘인간 지배자들’이라고 지칭한 이들은 “모든 것은 우리가 챙기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라는 ‘비열한 좌우명’을 따르고 있다.

○ ‘조물주 위에 건물주’: (연평균 자본수익률)>(경제성장률)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저서 『21세기 자본』의 핵심은 ‘r>g’ (r은 연평균 자본수익률, g는 경제성장률)입니다. (r은 연평균 자본수익률을 뜻하며, 자본에서 얻는 이윤, 배당금, 이자, 임대료, 기타소득을 자본총액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g는 경제성장률, 즉 소득이나 생산의 연간 증가율을 의미합니다.)

‘연평균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다는 것을 약간의 오류를 무릅쓰고 단순한 말로 바꾸면 ‘불로소득’이 ‘노동을 통한 정상적인 소득’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세간의 말이 두꺼운 책 『21세기 자본』의 핵심이라는 거지요.

또한 정상적인 방법으로 열심히 일하고, 절약해도 상위 계층으로 진입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부자들은 훨씬 빨리 더 큰 부자가 되어버리므로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다음의 서술은 『21세기 자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핵심적인 글인데, 특히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라는 말은 섬찟하기까지 합니다.

‘r>g’라는 부등식은 과거에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등식은 근본적인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기업가는 필연적으로 자본소득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진 게 없는 이들에 대해 갈수록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자본은 한 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주류경제학자들의 견해가 맞다면, ‘r=g’인 상태나 ‘r<g’인 상태가 적어도 한 번쯤은 나왔어야 합니다. 저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카를 군나르 뮈르달(Karl Gunnar Myrdal, 1898-1987)의 ‘누적적 인과관계’를 따르는 현상을 ‘부익부 빈익빈’으로 해석하는데,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피케티가 생각하는 불평등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귀족, 사제, 제3신분으로 이루어진 ‘삼원사회(三元社會)’라는 신분제 사회가 중세가 끝나면서 함께 종말을 고한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 이르러 사제계급은 브라만 좌파로, 귀족계급은 상인 우파로 바뀌었을 뿐, 우리가 여전히 불평등한 삼원사회에 산다고 하였습니다.

또 이 두 계급이 지식 자본과 금융 자본을 고스란히 자녀세대에게 물려주기 때문에 불평등이 지속된다고 봅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마태복음 25장 29절

<참고>

○ 이 책, 『불평등의 이유』의 원제는 ‘노엄 촘스키: 아메리칸드림을 위한 진혼곡(NOAM CHOMSKY: Requiem for the American Dream)’입니다. 부제는 ‘부와 권력 집중의 10가지 원리(The 10 Principles of Concentration of Wealth & Power)’입니다.

○ 책이 얇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자본과 이데올로기』,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이유』, 스탠딩의 『불로소득 자본주의』, 플레밍의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죽음』 등은 책이 두꺼워서 장식용에 적합합니다. 특히 피케티의 책은 너무 두꺼워서 시쳇말로 ‘베개 책’입니다. 하지만 노엄 촘스키의 『불평등의 이유』는 얇고, 한 페이지당 글자 수도 적습니다. 본문은 200쪽이 채 되지 않습니다.

○ 저는 이 책을 ‘요약집’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제가 이제껏 소개해왔던 책들 가운데 여러 가지를 읽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판단됩니다. 이와 더불어 각 장의 ‘참고 자료’들이 가치가 높습니다. 특히 미국의 독립이 ‘노예제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는 촘스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 노엄 촘스키의 생년이 1928년이라 90살이 넘었습니다. 어쩌면 일반 대중들을 위해 쓴 책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 좌절 금지! 장기적인 ‘r>g’인 현상이 한편으론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21세기 자본』의 불평등 그래프의 추세선은 희망의 실마리도 함께 보여줍니다. 그 희망의 실마리란 무엇일까요?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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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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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oool 2021-02-05 22:05:04

    21세기 자본의 핵심이 조물주보다 건물주라는 것이 씁쓸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삭제

    • 거제상주군 2021-02-05 14:06:32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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