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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을 생각하다 ⑤[기획 연재] 고영주 /전 거제지역자활센터 실장

2. 인간사회의 불평등

3) 불평등체제의 전개 ① : ‘우리에 갇혀 있는 노예’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사회유형을 편의상 무리, 부족, 추장사회, 국가라는 네 개의 범주로 분류하였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평등주의 체제가 유지된 것은 ‘무리(수십 명)’와 ‘부족(수백 명)’이고, 중앙집권적이고 세습적인 지도자(샤이델의 용어로는 ‘최초의 1%’)와 ‘도둑정치의 정당화’가 등장한 것은 ‘추장사회(수천 명)’부터입니다. 또 그는 『총, 균, 쇠』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7500년 전 추장사회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과 자주 만나면서도 서로 죽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은 어느 한 사람, 즉 추장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독점하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또 『문명과 전쟁』의 저자 아자 가트(Azar Gat)의 시선에서는 집단과 집단의 갈등, 즉 전쟁을 수행해내기 위한 최적의 조직 형태가 중앙집권화된 권력 체계인데, 이 역시 설명력이 큰 한 가지 요소로 보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어쩔 수 없었다’라는 결과론적 서술이라는 한계를 보임과 동시에 신분제 사회의 성립 이후 늘 최소 90% 이상이었던 피지배계급의 고통과 그것에 올라탄 무임승차자들의 호의호식을 은폐시킬 위험을 내포합니다. 어쨌거나 ‘무력 사용의 독점권’을 장악한 자들이 ‘강자들만의 네트워크’가 작동하도록 했고, 이와 함께 그들은 새로운 사회적 논리, 즉 기존의 통념(평등주의)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강제’라는 도전을 성공시키고 그것을 수용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정치체제든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당화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또한 세련된 종교나 이데올로기 시스템(애국심, 보상과 처벌제도, 선전 선동, 충성심 등의 추상적 도구) 없이, 언제든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들어야 하는 전쟁의 무모함과 강제노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측면도 그 이유입니다. 폭력의 우위를 기반으로 한 ‘동물들의 서열 질서’가 종교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더욱 고도화된 ‘신분제 사회’라는 불평등체제의 성립과 유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평등체제의 전개 과정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발터 샤이델의 냉정한 관점을 기준으로 함무라비 법전, 플라톤과 소피스트의 대결, 마키아벨리의 생각 등을 비교하며 살펴보는 일은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또한 2000년 전 로마의 최대 개인 자산(라티푼디움과 그에 속한 노예들)이 로마제국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의 150만 배에 달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면서 말입니다.

먼저 발터 샤이델은 『불평등의 역사』 말미에서 “더 커다란 경제적 평등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 모두는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그것(강렬한 평준화)이 항상 ‘비명과 울음 속에서 탄생했음’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추장사회 이후)에 대해서는 “경쟁자의 조직과 영토에 대한 폭력적 장악은 더욱 공공연한 약탈, 그리고 관습적인 지역적 규제에 제약받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길을 열어줬다. 기존 정치 조직이 더 큰 구조로 결집되면서 새로운 계급의 위계를 탄생시켰고, 최상층에게는 더욱 광범위한 자원을 기반으로 나오는 잉여에 대한 접근 권한이 주어졌다. ‧‧‧ 물질 자원에 대한 접근 기회는 전 국가 계급에 걸쳐 뚜렷한 등급이 매겨졌다. 기존의 소유 패턴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산의 재배당 능력과 결부된 제국의 생산 자원 합병은 소수의 권력 엘리트에게 불공정한 혜택을 주는 ‘승자 독식’의 환경을 창출했다”고 서술합니다.

두 번째는 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에 바빌론을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이 법전은 함무라비 이전의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인근에 존재했던 집단들의 규칙과 규범들을 집대성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

㈀ 서문 : 숭고한 아누(Anu), 아누나키의 왕, 하늘과 땅의 신 벨(Bel) ‧‧‧, 에아(Ea)의 아들 마르둑(Marduk)이 땅을 다스리도록 ‧‧‧, 벨(Bel)에 의해 부름받은 함무라비(군주)인 나는 ‧‧‧ (자랑 또는 치적 홍보, 1인칭 용비어천가) ‧‧‧.

㈁ 282개의 조문 요약 : 죄를 지으면 죽이거나 보상하게 하지만, 귀족, 평민, 노예는 죄를 지었을 때, 처벌 수준이 다르다.

㈂ 맺음말 : 정의의 법령인 이것은 현명한 왕인 함무라비가 확립한 것이다.‧‧‧ (나, 함무라비는 백성들을 위해 엄청 열심히 일했다) ‧‧‧, 위대한 신들이 나를 불렀다. ‧‧‧ (나의 말을 듣지 않으면, 벨을 비롯한 모든 신들이 온갖 저주를 내릴 것이다)

㈃ 전체 요약 : 고귀한 왕인 함무라비는 위대한 신들의 부름을 받아 인간 세상을 지배(통치)하며, 282개의 원칙은 신들이 읊어준 것이고, 인간은 고귀한 왕(함무라비), 귀족, 평민, 노예로 나뉘는데 계급에 따라 처벌도 차별한다. 후세가 함무라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함무라비 법전은 흔히 ‘이에는 이, 눈에는 눈’에 해당하는 개별 법조문들 위주로 알려져 있지만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문과 맺음말의 앞부분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권력의 정당성이 신으로부터 주어졌음을 강력하게 얘기하고 있고, 함무라비는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번영을 가져왔고, 정의를 실현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도둑 정치’를 일삼는 지역 권력자들(생산성이 높은 농지를 보유한 사원의 사제들과 귀족계급)을 제압하고 그 자리를 자신의 측근과 친인척으로 대체하였으며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재분배정책을 실시하였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지역 맹주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고, 그것이 정의의 실현이었다는 얘기입니다.

함무라비의 투쟁의 본질은 귀족계급의 특권과 부의 전용에 직면하여 “왕이란 부(富)를 옆에 두고 걸어가는 자이다(메소포타미아 평민들의 속담)”를 현실화한 것과 같습니다. 맺음말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함무라비가 세워놓은 규범인 불평등체제는 강고하게 지켜져야 함을 거듭 강조하는데, 그것은 ‘신의 저주’를 통해 완성됩니다.

세 번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에 저항한 소피스트들입니다. 흔히 소피스트는 ‘궤변론자’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그들은 기존의 신분제 질서를 보편적인 진리로 인식한 지배계급에 맞섰던 진보적 기질의 사람들이었음이 드러납니다. 플라톤은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 듯, 각자 주어진 본분에 맞게 ‘자신에게 속하는 예속물’로 살아가게 되면 정의는 저절로 실천된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생각은 긴 세월을 거쳐 ‘경제학을 만든 사나이’로 불리면서 신고전학파의 기초를 닦았던 알프레드 마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치에 꼭 맞는 것만큼 벌게 되어 있다’는 말까지 이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계급간의 평등을 처음부터 무시하였지요.

하지만 소피스트들은 그리스인들의 위기가 자유와 평등의 부재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박설호는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1』에서 소피스트들이 “황금시대에는 사람들이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평등을 만끽하며 살았는데, 인간의 정치적인 제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다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국가 이기주의를 대신해 ‘범세계적인 노동의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고 하였고, 그리스인과 아닌 사람들 간의 계급 차이는 용인할 수 없는 것이라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반면, 마키아벨리에게 있어서 불평등체제의 성립과 지속은 대중들을 ‘얼빠진 짐승’이나 ‘우리에 갇혀 있는 노예’의 상태에 이르게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대중의 습성은 얼이 빠진 짐승처럼, 사나운 본성을 지니고 숲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우리 속에 갇혀 노예처럼 사육되고 있다가, 뜻밖에 자유로워져서 들판에 방목되면 먹잇감이 어디 있는지, 보금자리인 동굴이 어디 있는지 그저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누군가가 잡으려고 오면 즉시 먹잇감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다. 타인의 명령 아래 사는 데 익숙해진 대중이 바로 그와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로마사 논고』 제1권 16절)

마키아벨리의 눈에 비친 피지배계급이란 늘 강자의 논리에 휘둘리고, 힘을 가진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나약한 존재였고, 자신도 그곳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비천하게 태어난 자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출세한 예를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말로써 신분제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유적지와 함무라비 법전,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진(秦)나라의 만리장성, 로마의 원형극장과 관개시설 등을 보고 배우며 호모사피엔스가 이룩한 놀라운 문명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만, 그 속에 감추어진 폭력과 강제노동, 조작된 신화를 동원한 불평등체제,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사람들(평민, 소작농, 노예 등)의 고통 등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데는 매우 인색합니다. 아마도 어느 정도까지는 승자 중심의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상황과 관계되어 있겠지요.

평등과 평등에 기반한 자유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함무라비의 오만함,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한계, 소피스트의 억울한 평가, 마키아벨리의 악마적인 조롱과 익살 등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샤이델이 서술한 무미건조한 문장들은 역사적 사실이며, 그 내용에 버금가는 폭력과 제도적‧이데올로기적 정당화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샤이델의 다음 문장은 대체 어느 시기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상류층은 생활 방식과 세계관을 통해 자신들을 일반인과 분리시켰는데, 흔히 그 세계관이란 본질적으로 전쟁과 연관되었으며 통치자를 열등한 농민 생산자의 착취자로 규정했다. 과시적 소비는 권력 관계를 드러내고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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