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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속으로] 남부우체국에선 무슨 일 벌어졌나…남부우체국장 지낸 60대 여성, 지인‧주민 꼬드겨 12억대 가로채
거제남부우체국

9일 ‘사기죄’로 징역 7년‧법정 구속…피해자들 “피해자 더 있다”

9월 9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206호 법정 앞. 이런저런 사건 피고인들과 관계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법정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법원 직원이 법정 바깥에서 피고인을 일일이 호명하고 방역 수칙을 지키며 한명씩 법정으로 들여보냈다. 방청객은 입장이 제한됐다. 피고인들 중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있었다. 남부우체국장을 지냈던 A 씨. 10시부터 선고가 시작됐고, A 씨에 대한 판결은 신속했다고 한다. ‘사기죄’‘징역 7년’이 선고됐고 ‘법정 구속’됐다.

‘별정 우체국’에서 빚어진 사기극 전모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A 씨는 거제남부우체국에서 18년쯤 근무했다. 1999년 4월부터 2012년 6월까지 남부우체국 사무장이었고, 2012년 7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남부우체국장’이었다.

남부우체국은 ‘별정 우체국’이다. 별정 우체국은 과거 우체국이 없는 시골 지역에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60년대 도입됐다. 별정 우체국을 지정받아 운영하는 별정 우체국장은 지정권을 자녀나 배우자에게 승계할 수 있고, 지인을 추천해 국장으로 임명할 수 있다. 공공업무를 맡은 민간회사인 셈이다.

A 씨는 이렇듯 우체국의 ‘공신력’을 발판 삼아 마음껏 사기극을 벌인 걸로 드러났다.

기자가 확보한 두 건의 검찰 공소장(2019년 11월 및 2020년 5월 공소)에는 피해자가 9명으로 나타나 있는데 피해액만 모두 12억여 원이다. A 씨는 친구, 지인, 이웃들을 상대로 비교적 높은 이자를 약속하며 우체국 보통예금이나 정기예금을 유치했다. 사기극의 첫 단추였다.

A 씨의 감언이설은 이렇다. “내가 국장으로 근무하는 거제남부우체국은 별정 우체국인데 일반 우체국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예금가입 실적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금실적이 높아지면 나도 수당을 받을 수 있으니 나에게 돈을 맡기면 고객 명의로 예금상품에 가입할 것이며 보통예금으로 예치 시 연 7%, 정기예금으로 예치 시 연 5%의 이자를 지급하고, 보통예금 통장과 도장은 내가 관리하면서 맡긴 원금은 예금으로 보관하고 있을테니 원하는 시기에 원금을 바로 돌려주겠다.”

이런 식으로 가입자를 유치한 후 전형적인 ‘폰지 사기(Ponzi scheme)’ 수법을 구사한 듯 보인다. 피해자 명의 통장과 도장을 보관하고 있으면서 피해자들 예금을 자신의 생활비, 기존 채무 변제, 약속한 이자 지급 등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A 씨의 사기범죄 일람표 일부

검찰은 A 씨가 피해자에게 ‘예치 원금을 바로 돌려주거나 약속한 연 5~7% 이자를 제대로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봤다.

A 씨의 사기극에는 ‘수기통장’도 등장한다. 남편의 퇴직금 5000만 원을 예탁하기 위해 방문한 또 다른 피해자에게 “챔피언 정기예금 계좌를 개설해서 이 계좌에 5000만 원을 입금하겠다. 통장에 기계로 입금내역이 찍히게 되면 노인연금 타는데 좋지 않으니 볼펜으로 거래내역을 직접 작성해주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수기로 기재한 통장도 건넸다.

그러나 이 피해자의 우체국 정기예금 계좌는 개설되지 않았다. 수기통장은 통장이 아닌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검찰은 글자를 모르는 노인인 피해자로부터 5000만 원을 받더라도 남부우체국에 저금을 하지 않고 A 씨가 ‘임의로 사용할 생각이었다’고 판단했다.

이 노인 피해자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9회에 걸쳐 1억3000만 원을 예탁했으나 우체국 예금은커녕 A 씨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넘어간 것이다. ※상기 범죄일람표(2)

높은 이자는커녕 원금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하나 둘 나타면서 A 씨는 사기 혐의로 피소됐고, 지난해 11월 4일 구속되기에 이른다. 이후 검찰은 공소 사실을 근거로 지난 8월 12일 결심 공판에서 징역 12년을 구형, 1심 법원은 지난 9일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피해자들의 눈물 “A 씨는 흡혈귀나 마찬가지”

9일 1심 판결 이후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A 씨에 대한 원망과 함께 별정우체국의 제도적 문제점을 성토했다. 특히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들도 더 있을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 B 씨는 “A 씨는 2016년 12월까지만 남부우체국장이었고 임기가 끝났는데도 국장인 것처럼 행동했다”며 “저희들 예금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가로챘다. 대출금까지 제가 갚아야 한다. 남부면 주민들 중에도 피해사실을 드러내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는 분들이 꽤 되는걸로 안다. A 씨는 흡혈귀나 마찬가지”라고 개탄했다.

금융‧개인정보가 너무 허술하게 다뤄진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A 씨의 사기극은 당시 남부우체국 직원들의 ‘직무유기’ 없이는 쉽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국장 임기 종료 후에도 피해자 예금이 본인 확인 절차도 없이 A 씨에 의해 인출됐다는 정황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당시 직원들에 대한 법적대응도 진행중이라고 했다. 거제시 전역을 관할하는 거제우체국의 관리감독 기능도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편, 친인척 채용 등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별정우체국 제도는 개편될 전망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7월 30일 별정우체국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별정국중앙회와 5명씩 총 10명으로 구성된 ‘별정우체국 혁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제도 개선에 나선 상태다.

현재 우체국장에게는 1회에 한해 승계를 허용하고, 가족이 아닌 제3자를 우체국장에 임명하는 ‘추천국장’ 제도는 폐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전의승 기자  zes2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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