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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청령정(蜻蛉亭)에 오르다거제의 재발견 -둔덕면 산책하기 좋은 길 청령정

‘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이라더니 봄은 왔지만 지난겨울부터 말썽인 불청객(코로나) 탓에 정말 봄 같지 않은 계절이다. 지천에 핀 꽃길을 찾던 상춘객(賞春客)은 온데간데없고 지난해 겨울부터 없어서 못 판다는 KF-94 마스크 패션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매년 봄이면 화사한 꽃 소식과 함께 진행된 다양한 문화행사와 축제가 실종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는 요즘이지만 ‘장기간 방콕’을 이어가기엔 봄빛의 유혹은 너무 강렬했다.

잠시 봄을 느끼기 위해 둔덕면을 찾았다. 그곳에서 매년 고향을 방문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백어(병아리)를 인터뷰할 생각이었다.

그릇에 담겨 사백어보다는 둔덕천을 누비는 투명한 사백어를 만나고 싶어 서둘러 둔덕천을 찾았다. 그러다 둔덕천 둑길 너머에 매주산(埋珠山) 꼭대기에서 붉은빛을 발견했다.

매주산은 고려 의종이 거제 땅에 왔을 때 신하와 하녀들이 추격군을 피해 금은보화를 묻었다는 전설이 서린 곳으로 현재 청령정(蜻蛉亭)이 있는 곳이다.

사백어는 다음 기회에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매주산의 붉은빛을 쫓아갔다.

청령정은 지난 2012년부터 거제시가 청마묘소 공원화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 이듬해 9월 제6회 청마문학제 때 현판식을 진행했다.

청령정의 현판명은 시인의 셋째 딸인 유자연 여사가 지었고 느티나무로 제작된 청령정 글씨는 서예가 박영진 씨(경기대학교 예술대학장)가 진한의 예서체로 써 내렸으며 서각은 둔덕면 출신 서각가 옥성종 씨가 맡았다.

청령(蜻蛉)은 고추잠자리를 뜻하며 동의보감에는 청령을 정력제의 재료로 소개하고 있다. 청마는 생애 청령이란 말을 애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청마의 네 번째 시집인 ‘청령일기(1949)’를 비롯해 한국전쟁 당시 부산 영주동 집을 ‘청령장’이라 불렀고, 통영 문화동에 거주할 당시 부인 권재순 여사가 운영하던 문화유치원 2층 서재를 만들고 붙인 이름도 ‘청령장’이었다.

춘풍화기(春風和氣) 청령정(蜻蛉亭)

청령정이 있는 매주산 꼭대기에 가기 위해선 방하리고분군 인근에서 시작하는 임도를 따라 청마묘소가 있는 지전당골 소공원으로 가야 한다.

둔덕천에서 출발해 둑길을 따라가다 보니 지난해 가을 코스모스로 일렁이던 곳에서 이제 막 파릇하게 새잎을 틔우는 보리밭을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보리밭을 지나 만난 청령정 가는 길은 봄날 그 자체였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오솔길 사이로 배꽃, 복숭아꽃, 개나리, 벚꽃이 나란히 앉았고, 길이 심심해질 사이도 없이 유치환 시인의 시비가 눈을 즐겁게 한다.

청마기념사업회(회장 옥순선)에 따르면 현재 거제지역에 만들어진 유치환 시인의 시비는 청마묘소와 청령정 가는 길 30개, 둔덕면 소재지인 하둔 마을 7개, 둔덕詩골 2개, 장승포연안여객터미널과 옥포1동 해안도로에 각 1개 등 모두 41개가 세워져 있다.

그중 청령정으로 가다 만난 시는 출생기, 치자꽃, 낙화, 파벽, 밤바람, 모란꽃이 우는 날, 오동꽃, 경이는 이렇게 나의 신변에 있었도다, 별, 병처, 그리움 1, 생명의 서 1장, 깃발, 마지막 항구, 세월, 심산, 오두막살이 두 채, 황혼,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등 20 작품이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한 지전당골 시인의 묘소 앞에는 청마선생의 삶과 문학에 대해 소개한 연보 벽과 시인의 또 다른 시비 10개가 있는 소공원 광장 건너엔 수선화가 만발한 시인의 묘소가 있다.

묘소 건너편, 시인의 연보 벽을 지나면 청령정으로 가는 270m 구간 산책길엔 울창한 소나무 그늘에 탓에 아직 꽃망울을 틔우지 못한 수선화가 길안내를 돕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는 제법 너른 공터에서 둔덕천에서부터 궁금했던 매주산 붉은 기운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붉은 빛 흐드러지게 얼굴을 내민 진달래 군락이었다. 얼마 전 코로나로 취소된 둔덕면의 산방산 참꽃축제(삼월삼짇날)의 설움을 달래듯 공터에서 청령정까지 나무 데크길 주변은 연분홍빛 진달래가 봄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연분홍 빛 사이로 누군가 올망졸망 쌓아 올린 돌탑 4기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빨리 KF-94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봄날이 오길 기도하고 다시 청령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인 청령정에 올라 너른 들에서 부는 바람에 땀방울을 털어내고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은 석산개발로 인해 옛 모습이 사라졌지만 청령정이 있는 매주봉은 큰 바위산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그 바위산 아래로 흐르는 둔덕천에서 멱도 감고 봄이면 사백어를, 여름에는 은어랑 참게를 참고 놀았다고 했다.

옛 추억은 함께 할 수 없지만 매주산 정상에서 보는 풍경이 참 고즈넉하고 편안했다.

한참을 앉아 있다 해가 지기 전에 청마기념관과 생가를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청령정으로 가는 길은 외길이라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는데 문득 청령정에서 둔덕천 둑길로 돌아가는 길을 만들면 좋은 걷기 코스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도착한 청마기념관은 문이 닫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한 달 전부터 임시 휴관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념관에 도착해서야 생각이 났을까. 역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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