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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의 각호사 위치는 하청거제역사문화연구소 거제역사 바로알기

‘夕移舟 角呼寺 前洋一泊(석이주 각호사 전양일박)’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중 이순신 장군은 견내량에서 1박 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견내량에서 각호사 앞바다로 옮겨 쉬었다고 한다.

현재 각호사에 대한 해석은 대부분 사등면 오량리로 기록하고 있는 곳이 많다. 대표적으로 거제문화원에서 만든 거제의 사찰을 찾아서 p144에는 각호사를 사등면 견내량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외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해석한 내용 대부분이 각호사가 견내량 인근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각호사를 사등면 일대로 해석한 것은 거제지역의 지명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부터 거제지역에서 ‘각호(角呼)’라는 지명을 사용한 곳은 하청면 유계리다. 유계리는 1769년 방리개편 때 까지 외가이방(속칭 각고리)으로 불렀으며 유게라는 지명은 1914년에야 생긴 지명이다. 따라서 난중일기에 나오는 각호사는 유계리에 있는 절로 해석된다. 하청 유계리는 고려시대의 절인 북사가 있었고 이후 정수사가 창건(1623년)되기도 했다.

또 난중일기에는 견내량에서 각호사로 이동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당시 함선은 놋군 16명이 6노트 정도의 속도로 항진 할 수 있었고 견내량에서 하청면 유계리까지는 약 2시간 30분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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