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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포(器門浦)해전지 황포 앞바다 추정김의부 거제역사문화연구소 소장, 기존설 반박

김의부 거제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기문포 해전의 현장이 장목면 구영리 동진포(황포) 앞바다 일대로 추정된다고 최근 주장했다.

기문포 해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인 1597년 3월 9일 통제사 원균이 거제에서 일본 군선 3척을 격파한 해전으로 전투가 일어난 정확한 지명과 장소가 판명되지 않은 전투 중 하나다.

기존 주장으로는 부산시 강서구 대죽도 인근이 이라는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의 주장으로 이 소장은 지난 2018년 ‘천문과 지리 전략가 이순신(출판사 시루)’에서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은 3월 8일한산도를 출발해 밤새 노를 저어 9일 이른 아침 옥포 지경인 기문포에서 전투를 벌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김 소장은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수군은 기문포 해전 당시 한산도 출발이 아닌 가배량 출발이며, 옥포 지경 기문포는 대죽도가 아닌 장목면 황포 앞바다 일대라는 주장이다.

원균의 통제사 임명은 1597년 2월 7일로 사료에 따르면 원균은 부임 초기 이순신이 정해 놓은 모든 것을 바꾼 것으로 알려진데다 원균이 통제영으로 운영 했던 곳은 한산도가 아닌 가배량이었기 때문에 출전지는 가배량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또 기문포가 구영리 동진포(황포) 앞바다인 이유는 당시 왜군은 견내량과 가배량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거제지역을 점령하고 있었고 장문포왜성과 송진포왜성 그리고 영등포왜성 등 왜군 집결지역 중간에 위치한 장목면 구영리 동진포(황포)의 경우 왜군이 인근 병력의 지원 및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지역이어서 비교적 땔감을 구하러 가기 편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또 장목면 구영리 동진포(황포)는 임진왜란이 있기 전부터 지역민들로부터 일본과 중국의 도자기 등 수출품을 싣고 왕래하던 중간 항구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 기문(器門)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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