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년(年). 굿바이!윤지영 /칼럼니스트

강풍에 펀치를 당한 뺨이 얼얼하다. 한파 속 걷기 효과는 평상시 배나 된다는 정보에 힘입어 속보를 재촉한다. 출입금지라고 적힌 노란띠 영역 안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노후한 도로포장제가 환부처럼 벗겨져 있었는데, 다 걷어내고 새 포장제로 교체하는 중이었다.

작업자들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척척 일을 잘도 한다. 낡은 모자, 땟국물 찌든 목수건, 헝클어진 머리카락, 콧물 젖은 손등, 가쁘게 내뿜는 입김... 시(詩) 속의「라면 한 그릇」(이광석) 주인공 같다. 여기에 자본주의 시스템, 경제적 양극화 같은 거창한 단어를 끌어와 에두르지 않아도 된다. ‘절망에 익숙한 잡초’로 은유된 노동자의 삶은 빈속에 들이 부은 깡소주처럼 직관으로 와 닿아야 제격이다.

그것은 ‘한 끼의 실낱같은 암울한 쉼표’다. 그러나 손수 일해서 번 정직한 품삯의 가치를 안다. 사모펀드 같은 음습한 곳에 무엇을 숨기려고 머리 안 굴려도 되는 당당한 돈, 보이는 게 전부인 돈, 소유나 욕망에 기대지 않고 육체를 움직여 번 이 순한 노임은 ‘진하디 진한 노동의 혼불 속에서 막 건져낸 맑고 고운 사리(舍利)’다. ‘허기진 위 속에서, 죽은 기 펴게 하’는 끈끈한 질경이다.

말 없는 일꾼이 말 많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올해의 뜨거운 감자였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그의 무기는 말(言)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그는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정치 이념화의 도구로 활용하는 재주가 탁월했다. 말끝을 힘껏 치켜 올리는 데 건장함을 연출하는 의도로 보였다.

문제는 그 말이 앞과 뒤가 다르다는 데 있었다. 양의 머리를 그린 간판을 내걸고 개고기를 팔았다(양두구육). 개천의 개구리들에게 용이 안 되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격려해 놓고 제 자식은 일급 청정수에서만 노는 곳의 용을 만들겠다고 용을 썼다(언행불일치) 도대체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며 수사를 받는냐고 상대편을 향해 날선 비판을 했지만 2년 후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이니까 장관직을 내려놓지 않고 버티기를 고수했다.

과유불급이다. 의혹들이 사실화 되면서 권위를 포획했던 말들이 순식간에 빛을 잃어갔다. 업무의 골밀도는 성기고 정직과 원칙의 골격은 취약했다고 제 말들이 증인대에서 낱낱이 증명했다. 말갈망도 못할 팩트 앞에서 야심과 욕망은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녹아내렸다. 허무한 도전이었다.

산책로 곳곳에 안내판이 있다. 사람살이에 꼭 필요한 명언이 적혀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은 승려 법정의 문장 앞에 다시 선다.

입속에 말이 적고, 마음에 생각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으면 성인이라도 될 수 있다.

말이 많고, 잡념이 많고, 욕심이 많으면 탈이 난다는 뜻인 성싶다. 자격지심으로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언젠가 사기꾼을 경계하는 지침서를 읽은 적이 있다. 대략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사기꾼에게 큰 무기는 거짓말이다. 자신의 거짓말로 손해를 본 타인의 처지를 고려할 줄 몰라 거짓말을 밥 먹듯 하게 된다. 이를 정신과에서는 공감능력 또는 정서적 유대감의 결핍 증상으로 해석하고, 심리학에서는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이런 자는 부정이 들통 나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저항하는 특성이 있다.

모리배로 호칭되는 이들은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해 세상의 모든 걸 자기식대로 해석한다. 실체가 없고 콘텐츠도 없다. 자신만의 콘텐츠가 없으니 허세가 심하다. 이익에 따라 인맥을 만들고 그 인맥을 발판으로 삼아 완장을 차게 된다. 그때부터는 목소리가 커지고 말수가 더 많아진다. 자기편 입맛에 맞는 말만 골라하니 앞뒤가 안 맞는 실언을 반복한다. 그 빈 곳을 외양 다듬기로 보충한다. 거짓을 이미지 메이킹으로 감추기 위한 꼼수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없는가 살펴볼 일이다. 새삼 법정스님의 충고와 사기꾼 감별법도 환기하며 걷는다. 만보를 완주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장소를 이동해 간 일꾼들은 여전히 작업에 열중이다. 진갈색으로 말끔하게 포장된 길을 바라본다.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그래, 서민의 삶에 검찰개혁, 공수처 이 따위가 무에 그리 필요한가. 단장된 산책로에서 느끼는 피부에 와 닿는 행복감, 이게 초선일 걸. 나는 앞으로도 이 길을 걸으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것이고, 글쓰기 주제를 생각할 것이고, 스트레스를 씻을 것이다. 과거 ‘나만 믿어라’는 사람을 믿었다가 크게 잃고 나서 후회한 적이 있다.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길을 걸으면서 깨달았다. 잃은 것만큼 얻은 큰 공부였다고.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된 인사들의 거짓말 진위가 속속 드러나는 연말이다. 변절과 비겁이 얽히고 설켜 살벌하다. 보기에 민망한 장면이다. 일터에서 돌아와 밥상 앞에 앉은 일꾼들이 저녁 뉴스를 보며 나처럼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사기꾼이 판치는 나라, 이게 나라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친, 그쪽 귀에 꼭 이 말이 꼭 들렸으면 좋겠다. 이건 ‘어떤 수입양주보다도 더 강도 높은 뜨거운 분노’(라면 한 그릇 중)이기 때문이다.

진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2019년이여, 굿바이!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거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정기 후원은 새거제신문의 신속 정확한 뉴스 및 정보 제공에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