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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거부하는 시대서대경 /거제호산나교회 담임목사

한 선교사님이 어느 날 올라온 나의 페북 세줄 글에 댓글을 남겼습니다. 좋다고! 이유는 짧아서 좋다고, 자기는 긴 글은 아예 보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진지함을 싫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짧은 진지함은 그래도 봐 줄만 하지만 긴 진지함은 보기도 싫은 것이 이 시대입니다. 가장 은혜 받는 설교는 가장 짧은 설교를 할 때라고 성도들은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한국은 <진지함>을 거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살아와서 그렇습니다. 이제는 그 진지함이 싫어진 것입니다. 비교 당하고 거부당하고 외면당한 세상 속에서 진지하게 산다는 것이 진부하고 재미없고 늘 진지한 삶이 싫은 것입니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조금의 진지함은 절대적 거부감으로 나타납니다. 성도들에게 진지한 설교는 가장 힘든 설교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왜요? 삶이 치열하고 비교라는 체제 속에 경쟁의 진지함이 삶을 무겁게 누르기 때문입니다.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세상에서 진지함의 무거운 인생으로 교회를 갔는데 다시 진지함 속에 성도들을 몰아넣으니 그 진지한 분위기 자체가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방송의 대세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기는 것입니다. 뉴스도 싫고, 정치도 싫고, 교육도 싫고 어른들의 심각한 걱정도 싫은 것입니다. 그냥 진지함이 싫은 시대입니다. 그냥 영혼 없는 웃음으로 진지한 인생을 거부하려는 것입니다.

둘째, 무거운 그 진지함을 <음식>으로 푸는 시대입니다.

인생의 진지함이 싫어 그냥 생각 없이 웃고 즐기는 방송을 좋아합니다.

더 좋아 하는 것은 웃고 즐기면서 먹는 것을 보는 <먹방> 즉 먹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을 좋아하는 시대입니다. 한국 사람은 점심에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식사를 합니다. 그것이 한국 사람입니다. 외국에 오랫동안 지내면서 바라본 한국의 가장 중요한 문화는 <음식>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 하면 떠오르고 생각나는 것은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처럼 다양한 음식과 먹거리가 있는 나라가 세상 어딜 가더라도 몇 나라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삶의 진지함과 삶의 고단함을 풀 방법으로서 사람들은 음식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따라 여행을 하고, 음식에 따른 방송이 대세가 되고, 음식이 있어야 이야기가 되고 음식이 삶의 한 가운데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경치가 아니라 음식이 중심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과 삶의 진지함들을 풀어낼 방법으로서 음식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만이 음식을 통해 자신의 인생의 시름을 잊어가는 것입니다.

셋째, 나름 인생의 문제를 풀 방편으로 해결책은 찾은 사람들은 <진지함>속의 <진리>를 <거부>합니다.

한국 사람은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살아온 인생의 시름을 풀 방편으로 음식을 택했고, 원두 커피를 택했고, 등산복을 택했습니다. 수년 전만해도 그것을 풀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겨우 바람은 해외여행 이었습니다. 그것이 인생 일대의 바람이어서 결혼을 하면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름 인생의 스트레스를 풀 방법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편하게 집안에서 진지함의 인생을 풀 방편으로 가만히 앉아 영혼 없는 웃음으로 진지함을 잊게 해줄 코미디 프로나 인생의 대리 만족으로서의 드라마를 선택합니다.

좀더 나아가면 커피와 등산복 그리고 등산용품과 자전거입니다. 급기야 음식의 보편성까지 다양하게 진리를 찾는 진지함을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외치고 복음을 외치고 인생의 치열한 문제와 영혼의 문제를 나눌 진지함으로 나아가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얼굴을 돌리고 주보를 보기 시작하고 주머니 속의 핸드폰으로 진지함을 거부합니다. 이것이 보통 이 시대의 흐름입니다.

진리는 진지한 것입니다. 인생의 처절한 몸부림 속에 얻는 진주가 복음이고 진리입니다. 높음을 향한 추구와 비교와 경쟁의 가장 선두에서 교회가 오직 잘 되야 함을 외치다 이제는 진리를 담은 진지함 자체가 <거부> 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어떻게 그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들으려고 하지 않으려는 그들에게 어떻게 이 진지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이 시대의 흐름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처한 이 시대의 현실입니다. 진지함을 입은 진리를 거부당하는 시대!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진리는 철저한 고민과 아픔과 눈물 속에서 진지함의 옷을 입고 찾아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목회자로서의 깊은 고민과 숙제를 오늘 올려봅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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