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I ♡ GEOJE
거제대교, 견내량 바다장터거제스토리텔링 7집 수록 작품 - 김복희

견내량으로 부는 바람은 자유롭다. 대낮인데도 별이 쏟아진 듯 윤슬로 반짝인다. 그 바다 위로 물새 떼 합창에 흥이 난 어부들이 촘촘한 그물망을 던진다. 순간, 하얀 돛으로 눈길을 모았던 나리선이 “어이!" 소리 나는 곳으로 재빨리 노를 젓는다.

거제대교 이전에 교통수단 이었던 차도선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개통된 '거제대교(구)'로 간다. 섬(거제)과 육지(통영)를 연결한 연륙교로서 거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다리다. 거가대교 아래로 흐르는 견내량은 '전하도'라고도 한다.

이는 고려의종이 귀양갈 때 건넜다는 유래가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수많은 군선이 드나들었던 요충지로도 유명하다.

거제대교(1971~)가 개통될 당시, 하늘에는 헬리콥터 수십 대가 원을 그리며 날았다. 그 아래 바다에서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오색 깃발을 단 채 파도를 가르며 빙빙 돌았다.

북소리, 꽹과리 소리에 갈매기도 흥이 난듯 훨훨 춤을 추었다. 그때 견내량 주변은 거제대교 개통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시 둔덕면에서 살았던 나는 섬바깥으로 나갈 때는 차도선(둔덕호)을 타고 다녔다. 거제대교가 개통됨으로써 배를 타지 않고도 통영길로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거제대교로 건너가면 십리길도 금방이었다. 신기한 나머지 달 밝은 밤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거가대교를 따라 걷기도 했다

▲거제대교 개통식 때 필자

거제대교가 개통됨으로써 거제도의 생활상은 나날이 달라졌다. 흙먼지 펄펄 날리며 다녔던 자갈밭길이 아스발트로 포장됐다. 또한 초가지붕이 스레트 지붕으로 바뀌더니 현대식으로 바뀌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런 가운데 여객선 '둔덕 호'는 닻을 내린 채 종일 선착장에 매여 있었다. 한 때는 5만명에 불과했던 거제인구가 늘어나 25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1인당 국민소득도 3만달러에 이르렀다.

전국에서 와인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도시로 알려질만큼 거제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도시화의 물결에 편승돼 살기좋은 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언젠가 삼풍 백화점과 성수대교가 허물어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불현듯 거제대교가 떠올랐다. 튼튼한 다리가 거제사람의 삶을 육지로 연결해 기반을 단단히 다져놓은 것 같아서였다.

하기야 IMF외환위기 때에도 묵묵히 견뎌낸 다리였다. 대우, 삼성조선소의 자재들을 실어 나르는 차량의 무게를 용케 견뎌낸 거제대교는 거제를 해양조선관광의 중심도시로 만들었다. 실로 고마운 다리가 아닐 수 없다.

개통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거제대교가 노후된 다리로 남아 있다. 그 옆에 '신거제대교'가 개통돼 흉물처럼 나앉은 모양새다. 더욱이 대우, 삼성조선소의 불황으로 지역경제 침체가 장기화돼 관리비조차 우려되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거제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 거제대교(구)를 허물 수는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처럼 재활용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문득 만남의 장을 떠올린다. 거제와 통영을 잇는 거제대교에다 “견내량 바다장터"라는 슬로건을 걸고서 통영시와 mou를 체결한다.

나아가 거제대교 이쪽과 저쪽을 관할하는 거제, 통영에서는 서로 주차장을 확보하고 차량을 통제한다. 여기서 총길이 740m에 이르는 거제대교 상판은 거제, 통영의 특산물은 물론, 전국 팔도의 특산물까지 팔 수 있는 장터를 만든다. 그럼으로써 거제대교와 견내량의 뿌리깊은 역사도 알 수 있다.

나아가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로 다양한 거제섬 문화를 고루 체험할 수가 있다.

거기서 야시장을 열어 전국의 풍물패를 모아 각종 문화 예술 공연을 하는 것도 좋겠다. 주말 장날에는 다양한 세대층이 장터를 찾게끔 체험의 장을 마련할 필요성도 있다.

매스컴을 통한 홍보도 하고, 싱싱한 해산물을 견내량 바다장터에 내다팔기 위한 전략도 세워야 한다. 그 옛날 한산대첩이 견내량을 통해 승첩의 영광을 안았듯이 바다 위 장터를 전국장터로 개발해 경제위기의 기회로 삼자.

그리하면 청정해역으로 유명한 거제, 통영 특산물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다. 5일장이면 어떠하고 7일장이면 어떠한가. 판로가 확보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옛날부터 견내량을 마주한 거제와 통영은 하나의 생활권이었다. 그런 것처럼 두 지역이 음식이나 교육 등 의식문화가 서로 많이 닮아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만남의 장을 열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신거제대교는 뒤로 한 채 '거제대교'로 건너가던 내가 불현듯 견내량 바다장터를 떠올리는 이유다.

김복희 = 둔덕면 출생/ 창신대 문예창작과 졸업/ 계간「시세계」신인상/ 거제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 거제시의회 의원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거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