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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서 나온 비전은 사람을 찌르는 칼이 됩니다시대를 말하다 3 -서대경 /거제호산나교회 담임목사

죄의 시작은 비교입니다. 사망은 죄에서 오고, 죄는 욕심에서 옵니다. 욕심은 어디서 옵니까? 욕심은 비교에서 시작됩니다. 비교가 상처를 만들고 상처가 야망을 만듭니다. 결국 상처에서 나온 비전과 야망은 사람을 찌르는 칼이 됩니다. 아픔을 겪은 어린 시절, 거절당한 인격에서 또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칼을 품게 됩니다.

비교 당하고, 거절당하고, 소외당한 그 상처를 야망이라는 것으로 포장해서 살아갑니다. 상처에서 나온 야망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열심히 꿈을 이루고, 높은 자리에 앉고 자기의 비전을 이룬 사람의 끝은 결국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최고를 이루었습니다. 기적을 이룬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쁨을 잃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왜그럴까요?

첫째, 상처에서 나온 열심은 다른 사람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입니다. 비전을 가장해 야망을 이루려다 사람을 죽입니다. 살인자가 됩니다. 바울도 변화되기 전에 자신의 꿈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되어 결국 스데반을 돌로 죽이는 일에 앞장섭니다. 자기 야망의 끝은 다른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상처가 많고 그래서 화가 많습니다. 교회도 그 상처는 동일합니다. 가정에서 화를 내고, 교회에서 화를 쏟아 냅니다. 상처를 회복해야할 교회가 상처 때문에 더 허전하고 더 외로움에 살아갑니다.


둘째, 상처의 진정한 회복은 영원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믿음은 세상 끝에서 만난 유일한 빛입니다. 죄는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입니다. 죄의 시작은 비교입니다.

그 비교의 대상인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비교의 대상>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비교의 대상에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시고 성령을 주신 이유는 영원한 생명인 예수님께서 내 안에 함께 거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처럼>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 될 때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셋째, 상처는 영원이신 성령과 교통할 때 회복됩니다.
세상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는 <비교>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비교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비교할 것이 없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비교의 대상이 사라진 세상은 짐이 아니라 자유가 됩니다. 영원한 성령하나님이 내 안에 오셔서 영원이 되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계집종 하나도 두려워 예수님을 옆에 두고도 두려워 부인하고 저주하던 베드로가 세상의 칼과 창과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은 영원이신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실 때입니다.

성령과 하나 되는 영원의 호흡이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우리는 영원입니다. 성령의 호흡으로 날마다 함께 호흡할 때 우리는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생기가 들어갈 때 영원이 된 것처럼, 죄된 인간이 다시 영원한 회복을 얻는 것은 성령의 호흡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상처에서 나온 비전은 나의 비전을 가장한 야망입니다. 그러나 성령과 하나되어 호흡하는 삶은 자유입니다. 우리의 삶에 성령과 함께하는 들숨, 날숨의 호흡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된 우리에게 주신 영원의 축복입니다. 상처의 회복은 성령의 들숨 날숨의 호흡으로만 가능합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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