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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뵙고.. 다시 들어가니 감회 새롭더라..”● 인터뷰: 저도의 마지막 주민이었던 윤연순 할머니
▲ 윤 할머니의 뒤로 '저도'와 '거가대교'가 보인다.

지난 7월 30일 저도를 전격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 식수에 동참한 저도의 마지막 주민, 윤연순(84) 할머니를 만났다. 그는 1973년 저도에서 가족들과 밀려난 이후, 저도와 거가대교가 한 눈에 보이는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하유마을에서 평생을 살았다.

“(문)대통령이 오실 줄은 몰랐지.. 손주까지 우리 식구들이랑 김경수 지사와 탐방 인원은 먼저 들어가 있었고.. 야외로 나가보자고 하기에 나갔더니 대통령이 와 있으시더라고..”

윤 할머니는 거제 본섬의 장목면에서 태어나 스무살에 시집을 갔다. 시부모께서 저도에 터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7남매를 낳았다. 둘째 자녀까진 거제 본섬에서, 5남매는 저도가 출생지라고 했다. 반 세기를 훌쩍 넘은 탓에 정확한 시기는 기억하기 힘들다. 윤 할머니가 저도로 들어가 삶을 일군 때는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 사이 어느 시기로 보인다.

“시아버지께서 저도에서 논 11마지기로 농사를 지으셨지.. 어느 시기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가족들과 휴가를 오시더라고.. 아이 시절이던 아들 박지만도 봤고.. 매미 잡을거라고 뛰어다니던 게 생각이 나요.”

농사가 흉작이던 때는 박 전 대통령이 시아버지에게 농사 관련 안부를 묻곤 했다고. 그러던 중 대통령 별장인 이른바 ‘청해대’ 건립이 시작되더라고 했다. 한 번에 지어진 게 아니라 윤 할머니의 기억에는 수 차례 나눠서 건축 공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대통령 별장지로 굳혀지면서 논밭이 잠식되다 보니 대체 수단도 주어졌다.

“처음엔 젖소를 키워보라고 했는데, 젖소는 안되겠고.. 누렁소도 아닌 검정소를 열 마리 주더라고.. 그런데 이 검정소가 영 신통찮아.. 뻘에 빠져 죽고..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난감했지 참..”

나중엔 누렁소 열 마리를 받았다고 한다. 청해대 건축공사 당시엔 해군들이 윤 할머니 집에서 숙박하기도 했고, 골프장 건립 때는 밥을 지어주기도 했단다.

그리고선 본섬으로 결국 쫓겨나야 했다. 저도에서 산지 십수년 만이었다. 하나 둘 밀려난 저도에서 윤 할머니 가족이 마지막 주민이었다. 구술에 따르면 강제 이주에 합당한 보상은 없었던 듯 했다. 다만, 생계를 위한 어업 관련 허가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잠수기어업과 나잠어업이었는데 해마다 갱신을 해야했고 그마저도 간첩 사건으로 인해 군경의 해상경계가 강화되면서 허가가 소멸됐다고. 다행히 어선어업을 영위할 수 있었고, 7남매의 효심이 윤 할머니의 삶을 지탱시킨 동력이 된 듯 했다.

한편, 윤 할머니 가족은 본섬으로 나오면서 현재 거주중인 주택(유호4길 21-2)을 당시 가격으로 70여만 원에 샀다. 기왓집이었는데 2003년 태풍 ‘매미’ 피해로 부서졌고, 자녀들이 합심해 양옥으로 새로 지어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집 마당에선 약 1.4km 거리의 저도와 거가대교가 한 눈에 보인다.

그저 그렇게 감내하고 살아내야만 하는 시절이었던 때문인지 윤 할머니의 구술은 담담했다.

“내 생전 저도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 줄 몰랐지.. 대통령을 이렇게 만날지도 몰랐고.. 다시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고 그렇지..”

※ 이 기사는 '경남공감' 9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

전의승 기자  zes2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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