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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재발견 -장승포시를 기억하십니까하나의 땅 두 개의 시군 - 장승포시와 거제군
장승포시 마크

하나의 땅 두 개의 시군 - 장승포시와 거제군

지난 1995년 시·군 통합 ‘거제시’가 탄생한 지 25년이 지났다. 시군 통합 이후 ‘IMF 외환위기’에도 꿈쩍 않던 옛 장승포시의 중심지인 장승포항은 2010년 12월 거가대교 개통으로 여객선터미널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상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최근 지속되고 있는 조선업(造船業)의 불황으로 이른바 ‘불 꺼진 항구’라는 꼬리표까지 단 모양새다.

지난 1989년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초고속 성장으로 장승포읍 지역의 인구가 7만 여 명에 달하면서 승격된 장승포시 시절의 이야기는 현재 장승포 지역 사람들에겐 옛 추억 속 영광으로 남았을 뿐이다.

거제의 재발견에선 한 때 거제도의 양대 도시로 균형발전을 꿈꿨던 장승포시와 거제군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불 꺼진 항구’ 장승포항의 부활을 기원해본다.

1904년 장승포 이리사촌, 당시 일본인 어민의 유입이 많아 신문물이 일찍부터 들어 왔다.

장승포시(長承浦市)의 추억

장승포지역은 일제 강점기 전부터 일본인의 이주로 신문물이 빠르게 도입돼 도시로 면모를 갖추고 있었고 광복 이후부터 장승포읍이 설치돼 거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특히 장승포 우체국의 전신인 장승포 입좌촌 우편소(1877년 11월 1일)는 1884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행정기관인 우정국(현 우정사업본부)이 만들어지기 16년 전에 이미 들어섰을 정도였다.

1980년대 말 대우조선 (사진 거제시청)

1973년 대우조선소가 만들어지면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고, 승격을 앞둔 1989년 11월 1일 기준 장승포시와 거제군의 인구는 각각 5만 767명, 10만 200명이었다.

시 승격 이전(1985년 10월 현재) 장승포읍 지역은 7개 법정리 25개 마을 185반에 12개 학교 1만 748명의 학생, 38개의 병원 등 의료시설, 학원 10개, 소극장 5개소 등 거제군 지역에 비해 문화시설이 더 많았다.

1990년대 초 옥수동 (사진 거제시청)

면적 30.22㎢로 거제도 전체의 7.6% 정도였던 장승포시의 승격은 애초 장승포동, 마전동, 능포동, 옥수동, 아주동, 옥포동, 조라동, 국산동 8개 동으로 계획됐다가 장승포동, 마전동, 능포동, 아주동, 옥포 1동, 옥포 2동 등 행정 6개 동, 법정 7개 동, 59통 430반으로 최종 결정됐다.

1988년 국회에서 장승포읍의 장승포시 승격 법안 통과로 1989년 1월 1일부터 시로 승격된 장승포시는 새로운 시청사를 지을 예산이 없어 옛 거제고등학교(장승포동 474번지) 건물을 고쳐 사용했으며, 장승포시를 상징하는 시목(市木)은 해송(海松), 시화(市花)는 철쭉, 시조(市鳥)는 갈매기로 정하고 장승포 시민의 노래(정용원 작사, 금수현 작곡)도 만들었다.

장승포 시민의 노래

장승포시를 상징하는 마크는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외각의 8각 모양은 공업도시를 상징하는 톱니바퀴를 표현하고 중심의 원형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표현해 조선해양관광도시를 의미했다.

장승포시의 승격으로 지역 대표 문화행사인 옥포대첩기념제전을 치르지 못하게 된 거제군은 1989년 10월 독로문화제를 만들기도 했다.

장승포시는 초대 이근식(李根植)시장(1989년 01월 01일 ~ 1990년 06월 06일)을 시작으로 이진영(李珍榮)시장 (1990년 06월 07일 ~ 1992년 04월 24일), 하일청(河一淸) 시장(1992년 04월 25일 ~ 1993년 03월 29일), 김명규(金明奎) 시장(1993년 03월 30일 ~ 1994년 09월 30일), 한창일(韓昌一) 시장(1994년 10월 01일 ~ 1994년 12월 31일) 등 5명의 역대 시장이 5년 동안 시정을 이끌었다.

독로문화재 축하연(사진 거제시청)

통합 거제시 이후 장승포의 현 주소

시 승격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보였던 장승포시는 지난 1995년부터 정부가 행정력 효율성을 강조하며 시행한 소규모 시·군 통합 정책에 따라 거제군과 통합해 ‘거제시’에 편입된다.

당시 장승포시는 거제군의 통합을 완강히 반대했다. 장승포시와 지역 시민은 정부의 일방적인 행정구역 개편에 반대하는 ‘시ㆍ군 통합반대 상설기구를 만들었으며, 장승포시의회도 임시회를 열고 통합반대를 결의하고 이후 반대 서명 운동과 청원서 제출 등 반대운동이 활발했음에도 경남도의회의 결정과 정부의 공포로 끝내 통합이 진행되고 말았다.

거제군 마크(왼)와 독로문화제 마크(오른)

통합 거제시 이후에도 옛 장승포시 지역민과 거제군 지역민 사이에선 시청사의 위치와 명칭 문제로 ‘지역 감정’ 싸움을 이어갔다.

장승포시의회와 시민들은 행정명은 거제시’로 하더라도 시청사만큼은 장승포 지역에 둬야 한다는 주장을, 거제군의회와 군민들은 명칭은 ‘거제시’ 시청사도 거제군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팽팽히 맞섰다.

결국 시청사 문제는 1995년 1월 13일 연초면 사무실에서 열린 2차 본회의에서 장승포시의회 의원 7명이 불참한 가운데 거제군의회 의원 11명만 표결을 진행해 현재의 시청사 자리를 거제시의 청사로 정하게 된다.

거제시청사

이후 거제시는 장승포항 주변을 ‘문화·예술의 도시’로 발전시키자고 제안하면서 2003년 10월 장승포항에 거제문화예술회관 완공?개관하게 됐다.

지난 2016년 5월부터 마전동이 소규모 행정동 통합지침에 따라 장승포동에 통합됐으며, 지난해부터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에 선정돼 162억 원(국비 94억·도비 31억·시비 31억·기타 4억 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문화 콘텐츠 확충에 역점을 둔 다양한 도시재생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장승포 지역은 핵심 시설인 장승포여객선터미널의 활용 방안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장승포 지역에 있어서 도시재생사업이나 도시의 관광자원화 보다 더 시급한 과제다. 장승포의 영광스러운 역사는 항구로서 역할에 충실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거제문화예술회관
장승포 항

<참고자료> = (巨濟ㆍ1990, 거경향인회), (장승포 역사ㆍ2016ㆍ장승포 역사편찬위)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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