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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재발견 - 거제의 다크투어리즘 (Dark tourism) ③이념의 그늘 아래서
1951년 거제포로수용소를 만들기 위해 '주민 소개령'을 내린 후 불타고 있는 민가

거제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 유적이 시대별로 빠짐없이 남아있는 전국에도 유래가 드문 역사의 고장이다.
긴 세월 외침에 자유롭지 못한 탓에 시대별 다양한 성이 20여 개 넘게 만들어진 성의 박물관인 거제는 영광의 역사만큼 그 이면에 어두운 역사가 공존하고 있다.
아파서 지우고 싶은 상처지만 분명 의미가 깊은 곳인 만큼 다시 되새겨 봐야 하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에 가장 적합한 도시다.
최근 다크투어리즘이 국내외의 관광산업을 바꾸고 있다. 9·11 테러가 발생했던 세계무역센터 붕괴지점인 미국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를 비롯해, 아우슈비츠 수용소(폴란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발전소, 중국의 731부대, 우리나라의 경우엔 제주 4·3 평화공원, 분단 상징인 비무장지대(DMZ),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등이 그렇다.
하지만 거제지역의 경우 수많은 다크투어리즘 장소를 보유하고도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구체적인 전략 수립이 부족한 실정이다.
본지는 거제지역 곳곳에 아픈 역사로 남아 있는 아픈 역사의 흔적을 찾아 다크투어리즘의 가능성을 재고하고 4회에 걸쳐 소개한다.

거제포로수용소 잔존유적

거제지역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 하면 흔히 칠천량해전공원과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꼽는다. 칠천량해전이 임진왜란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 한다면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69년 전 이데올로기와 남북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외도 보타니아와 바람의 언덕 등 거제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포로수용소 관련 기록물이 ‘세계문화유산기록물’ 등재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거제 포로수용소는 1951년 1월부터 6월까지 유엔군 제1포로수용소, 1952년 5월 말부터 8월까지 500명 단위의 수용동 확장 건설, 1952년 6월부터 9월까지 제 1A 저구리포로수용소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과 계룡산, 고현중학교, 장평동, 수양동 일대엔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았다(남부면 저구리수용소 흔적은 미미한 상태).

하지만 관광객들은 물론 거제시민 대부분은 한국전쟁의 발발과 포로수용, 그리고 피난민들의 역사만 알고 포로수용소 건립으로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거제 사람들’의 애환은 기억할 명분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거제시가 경상남도 기록원에 보낼 기록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군 징발 관계 서류철-피 징발자 피해 조서’라는 문서에는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 설치에 따른 거제도 주민들의 강제 징발 피해액이 당시 돈으로 11억 3311만 4096 환으로 나타났다.

민간인 및 보도연맹 희생지

거제포로수용소 건립에 앞서 이념갈등으로 인한 잊지 말아야 할 상처도 있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 거제 땅에 있었던 민간인 희생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49년 4월부터 1950년 4월까지 거제지역 야산대(빨치산) 토벌 명목으로 진주한 백골, 호림, 백호, 비호부대가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시켰던 아픈 역사다.

동부면 구천계곡 학살을 비롯해 10여 차례에 걸쳐 민간인 310명이 총살당했고, 49년 7월 연초면 송정리, 50년 4월 일운 구조라, 둔덕 방답, 장승포 신사 등지에서 민간인 70여 명이 희생됐다.

또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1950년 7월 21일 보도연맹원 731명이 호출장을 받고 거제경찰서에 강제 집결한 뒤, 7월 24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지심도·외도·칠천도 앞바다에서 모두 수장된 사건이다.

수장된 희생자들은 손과 발이 묶인 채 현해탄 건너 대마도까지 밀려간 기록이 있다. 1950년 10월 12일 자 대마 신문(對馬新聞)에는 보도연맹 희생자들이 거제에서 수장돼 일본 대마도 방면으로 밀려왔다는 기사 있다.

보도연맹과 관련된 장소는 희생자들이 수장되거나 매장?희생된 곳이 대부분이기에 역사와 관련된 상징적인 장소를 찾기 힘들다. 더구나 진상조사와 국가 상대 소송 승소 이후 추모제와 거제합동위령제가 매년 열리고 있지만, 여전히 거제지역엔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번듯한 추모비 하나 없는 실정이다.

다만 일운면 지세포 유람선 선착장 앞에 만들어진 지세포공원에는 지역에서 일어난 보도연맹의 참상을 알리는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일명 ‘총(銃) 맞은 나무’로 불리는 이 소나무는 1949년 5월 하순 이 지역 주모 씨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될 당시 총탄이 박힌 소나무(지상에서 2m 지점에 옹이 같은 흔적이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로 건축공사 등으로 소나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소나무의 내력을 알고 있는 조경 전문가 윤종환 씨가 지난 2013년 현재 장소로 나무를 이식하고, 지난해 6월 제막식과 위령제를 지냈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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