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거제의 재발견
거제의 재발견 - 거제의 다크투어리즘 (Dark tourism) 2②제국주의가 남긴 발자국 - 일제 강점기의 흔적

거제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 유적이 시대별로 빠짐없이 남아있는 전국에도 유래가 드문 역사의 고장이다. 긴 세월 외침에 자유롭지 못한 탓에 시대별 다양한 성이 20여 개 넘게 만들어진 성의 박물관인 거제는 영광의 역사만큼 그 이면에 어두운 역사가 공존하고 있다.아파서 지우고 싶은 상처지만 분명 의미가 깊은 곳인 만큼 다시 되새겨 봐야 하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에 가장 적합한 도시다.

최근 다크투어리즘이 국내외의 관광산업을 바꾸고 있다. 9·11 테러가 발생했던 세계무역센터 붕괴지점인 미국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를 비롯해, 아우슈비츠 수용소(폴란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발전소, 중국의 731부대, 우리나라의 경우엔 제주 4·3 평화공원, 분단 상징인 비무장지대(DMZ),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등이 그렇다. 하지만 거제지역의 경우 수많은 다크투어리즘 장소를 보유하고도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구체적인 전략 수립이 부족한 실정이다.

본지는 거제지역 곳곳에 아픈 역사로 남아 있는 아픈 역사의 흔적을 찾아 다크투어리즘의 가능성을 재고하고 4회에 걸쳐 소개한다.

①왜란이 남긴 상처

②제국주의가 남긴 발자국

③이념의 그늘 아래서

④섬으로 쫓겨난 사람들

송진포해군기지·취도기념비·러일전쟁기념비

거제는 예부터 풍부한 어장과 전략적 위치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잦은 외침을 받았다. 구한말에 이르러선 국운이 기운 틈을 타 일본은 조일통어장정(조일통어장정)을 빌미로 장승포 지역에 일본인 마을을 만들고 거제의 황금어장을 잠식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일본이 만든 전략 요충지인 장목면 지역은 또다시 러일전쟁을 위한 ‘일본해군 가근거지’를 세우고 전쟁이 끝난 이후엔 러일전쟁기념비를 세웠다.

송진포에 세운 일본 해군기지는 러일전쟁의 전운이 돌고 있던 1903년 12월 ‘러일전쟁 계획안 작전 제11계획(요령)’에 따라 거제지역과 진해지역에 군사기지를 계획하면서 만들어졌다.

일본 해군은 1904년 2월 16일 선발대에 이어 같은 달 21일엔 사세보 군항에서 본대 군인과 노동자 2728명을 군함과 수송선을 이용해 송진포에 주둔시키면서 지역민을 내쫓고 토지를 무단점거한 후 3개월 동안 송진포 해군기지(현 거제문예창장촌 자리)를 만들었다.

송진포 해군기지엔 사령부, 병사, 진료소, 발전소, 저수지와 함께 인근 해상에 수뢰(水雷)와 통신시설, 항로 부표 등을 설치하고 일본 본토에서 증원 병력을 수용하기 위해 저도와 외양포에 해안포까지 설치했다.

일본해군가근거지는 1904년부터 1912년까지 운영됐는데 현재 사령부가 있던 ‘거제문화예술촌(옛 송진초등학교)을 비롯해 곳곳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송진포 대봉산 자락엔 1931년 송진포 러일전쟁기념비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 비석을 세우기 위해 일제에 협력한 거제와 통영의 부왜조선인(송진포 기념비 위원회)만 70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은 1905년 2월부터 5월까지 송진포만과 진해만 일대에 미카사, 시키시마, 아사히 등 주력전함이 포함된 연합함대를 정박케 하면서 진해만에서 러시아의 발트함대와 결전을 대비했는데 당시 일본 해군은 거제 해안에서 함대 진형 연습과 포격훈련을 실시한 후 5월 27일 쓰시마해전에 참전을 준비하면서 함포사격 연습을 했던 곳이 취도다.

일본 진해해군 요향사령부는 1935년 8월 23일 러일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취도에 높이 4m, 둘레 2m 크기에 녹슨 포탄이 하늘을 향해 꽂혀 있는 취도기념탑을 세웠다.

태평양 전쟁 최후 방어선 지심도와 근포 땅굴·쌍근포진지

장목면 송진포 일대가 러일전쟁의 상흔이라면, 동백꽃으로 유명한 지심도는 태평양전쟁을 위해 일제가 남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도 지심도 탐방길에 나서면 곳곳에서 일본군이 남긴 포진지, 방공호, 방향 지시석, 서치라이트 보관소, 국일기 게양대 등 아픈 역사를 그대로 볼 수 있다.

1936년 일본은 중일전쟁을 1년 앞두고 지심도에 포대 설치를 결정하고 지심도에 주민 소개령을 내려 지심도 주민들을 장승포와 지세포 일대에 강제 이주시켰으며, 1938년 각종 부속건물 준공과 무기 인수 작업을 마무리 해 본격적인 군사방어기지로 활용한다.

앞서 소개한 곳 외에도 거제지역 곳곳엔 일본 침략의 흔적이 남았다. 가라산, 가조도 옥녀봉, 쌍근 부근에도 일본군의 신호소와 경계비, 그리고 포진지터가 남아 있다.

일본은 1943년 부산 지역을 요새화 하면서 방호용과 잠수함 기지용 동굴을 여럿 만들었는데 거제지역에는 남부면 근포항 인근 근포땅굴을 비롯해 능포 양지암, 장목지역에도 비슷한 형태의 땅굴이 남아 있다고 한다.

남부면에 따르면 근포땅굴은 근포마을 뒤편 바닷가에 5개의 땅굴(길이 30~50m, 높이 5m)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파 놓았던 것으로 1941년 일본군이 외지인 보급대를 동원해 발파작업 등으로 포진지 용도로 굴착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중단되었다 한다. 땅굴 중 쌍굴이 있는데 내부가 H자형으로 서로 관통되어 있다. 현재 일부는 육상 축양장 창고로 활용되고 있고, 나머지 땅굴은 방치되어 있다.

또 남부면 천장산 정상이 있었던 천장산 레이더기지터는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레이다를 세웠던 곳으로 지금도 붉은 벽돌구조물과 기지 터가 남아 있다. 천장산 정상에는 1914년 5월 1일 지적(地籍)의 세부측량을 시작할 때 일본의 대마도에서 32해리 60㎞를 삼각점으로 측량해 경상남도 제1호를 매설한 곳으로 우리나라 지적도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여차마을 주민에 의하면 당시 일본군 소대병력이 주둔했고 산 아래는 일본군이 먹던 우물 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쌍근 포진지는 쌍근마을 위 무지개길을 넘어가다 보면 오른편 산 중턱 끄트머리 절벽(30m) 위에 위치해 있다. 모두 6개의 포진지가 계단 형식으로 산 능선을 따라 그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인근에 일본군 관할 표지석이 발견됐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대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