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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로에서 거제까지 거제 역사의 타임캡슐거제의 재발견 - 거제고군현치소지(巨濟古郡縣治所址)

최근 둔덕면 방하리고분군의 정밀 발굴 결과가 학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방하리고분군 내 고분 6기와 봉분이 잔존하지 않는 고분 1기를 정밀 발굴한 결과 방하리 고분군의 조성 시기는 6세기 중반에서 7세기 중반 정도로 거제둔덕기성과 거제고군현치소지의 조성시기와 맞물리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방하리 고분군은 인근에 위치한 거제둔덕기성 및 거제고군현치소지는 거제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고대 재지(在地) 문화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제지역 최대급 유력 정치체가 형성한 고분문화 및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 세 곳은 경남에서 유일하게 치소(治所), 성(城), 무덤(古墳)이 한 지역에 남아 있는 유적이어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거제둔덕기성이나 최근 발굴로 이름이 알려진 방하리고분군과 달리 거제고군현치소지의 경우 시민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발굴이 있었던 지난 1996년 당시 예산 부족으로 유적 일부분만 발굴하고 곧바로 유적 보호를 위해 덮었기 때문에 유적의 모습을 본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옛 거제지역 행정중심지 ‘둔덕’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제162호인 거제고군현치소지는 지난 1995년 경지정리사업 기와 조각과 건물의 초석(礎石)으로 추정되는 큰 돌이 무더기로 나오면서 거제시가 동아대박물관 팀에 의뢰해 발굴됐다.

조사 당시엔 대상지 지하에 남아 있는 유물의 특징을 조사하기 위해서였지만, 조사 결과 경작 중인 논바닥에서 다량의 건물 초석과 축대(築臺), 배수시설유구(排水施設遺構) 등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또 발굴 현장에선 고려시대의 막새기와를 비롯한 명문(銘文) 기와(裳四里, 八月 四日, ?)와 신라 및 고려시대의 토기 조각, 고려청자, 조선시대 분청자기 및 백자 조각이 출토됐다.

당시 동아대 박물관팀은 보고서를 통해 이 유적이 신라시대에서 조선 전기에 걸쳐 축조된 각종 건물이 위치했고, 초석의 규모나 기와 조각의 다량 출토 현상은 당시에 이곳이 관아와 같은 대규모의 목조건물이 위치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발굴된 건물지가 삼국시대 가람배치나 고려 및 조선시대 향교건물의 배치 상태와 동일한 데다, 남북으로 이어진 크고 작은 건물이 집중되는 것은 지방의 일반 민가보다는 관아 등 공공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거제지역 치소 위치는 사료 등을 통해 조선시대 것만 확인되고 있었고 고려시대 이전의 것은 확인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잃어버린 거제지역의 역사를 규명할 수 있는 학술적 자료였던 셈이다.

거제고군현치소지에선 신라시대에서부터 조선 초기까지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지만, 대부분 고려시대와 관련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사용 시기 대부분은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또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도 섞여 있어, 거제 지역민이 고려말 진주와 거창지역으로 피난 갔다가 세종 때 수월산성 인근에 목책을 세우고 거주하기 전 거제고 군현 치소지에 남아 있는 건물을 이용해 생활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특히 이 발굴 현장에서 최초로 출토된 ‘상사리’ 명문기와는 발굴지역이 신라와 고려시대에 걸쳐 거제지역의 치소지(治所址)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밝혀졌다.

당시 기와 제작과 운반거리를 생각하면 ‘상사리 명문기와’가 출토된 주변을 크게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행정지명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상군(裳郡)과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마 상(裳) 자는 ‘삼국사기 변진전’에 나타나는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의 위치가 거제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라는 점에서 거제고군현치소지의 발견은 둔덕 지역이 옛 독로국부터 조선 세종 시기까지 거제지역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증거기도 하다.

최근 방하리고분군의 발굴로 거제고군현치소지의 재 발굴 및 도지정문화재 등재 신청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어 이 유적의 정밀 발굴이 필요해 보인다.

거제고군현치소지 발굴 당시 예산 부족으로 일부 구간만 발굴돼 고군현치소지의 정확한 규모와 성격,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발굴을 중단한 데다 발굴 이후 동아대 박물관 팀도 조사보고서를 통해 “조사지의 발굴이 전면조사가 아니어서 유적의 전체적인 성격 규명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어서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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