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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숫돌이승열 /전 거제교육장

반년이 지났다.

교육계는 1년을 분기별이나 절기로 구분하기보다는 학기로 구분한다.

따라서 내가 거제교육지원청을 떠나 온 지는 한 학기가 지나간 것이다.

능력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했던 그 자리를 벗어나서도 한동안은 자유롭지 못하여 지나간 시간들에 얽매여 지내다가 이번 2월 말로 퇴직을 한다.

평생 갇혀 있던 공무원이라는 굴레를 벗어나는 일에 설레기도 하지만 울타리의 문고리를 잡고 감히 나서지 못하고 망설이는 자신을 느낄 때는 속상하다.

그러나 퇴직 선배들은 놀다 보면 저절로 자유로워지니까 선생티 내지 말고 덤덤하라고 타박하니 그러려니 하고 지낸다.

교육계의 소회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교육에 관한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1960년대 말, 거의 50년 전의 일로 되돌아간다.

거제대교가 65년에 착공하여 71년에 완공되었으니 거제가 온전히 巨濟島였던 그 시절에 가배리 덕원마을이라는 작은 어촌에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이 있었다.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땔감 일이나 바다 일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던 까까머리 소년이었다. 집안의 장남이 중학교를 진학 못 했다는 사실은 지금의 아이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 시절에는 드문 일은 아니었다. 1년 후 비로소 한산중학교로 진학하여 통학선을 지겹도록 타게 된다.

바로 그 암울했던 1년 동안 그 소년이 한 일을, 우연한 기회에 본인에게서 들었다.

어느 날 거제도를 알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거제도 도보여행을 무전으로 감행했다. 남부면을 출발하여 일운, 장승포, 고현, 사등, 둔덕을 거쳐 무려 보름 동안 얻어먹으면서 걸었고 마을회관이나 동네 어른들 집에서 잤다.

호랑이 새끼 키우듯 아버지의 지엄한 명령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출도 아니었다. 단지 거제도가 얼마나 큰지, 어떻게 생겼는지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나이 13살 때였다. 그해 가을의 일이다. 앵산의 오비 쪽 능선에는 숫돌로 쓰는 돌이 많이 나와서 숫돌산이라고 불렸다.

숫돌은 가정에서 낫이나 칼을 연마하기 위하여 자연으로 된 적당한 크기의 수성암을 사용했는데 선사시대의 유구에서도 발견된다고 하니 인류의 탄생과 함께 한 도구인 셈이다.

그 소년은 집에 마땅한 숫돌이 없어서 아쉬워하던 중 이웃 어른으로부터 오비 뒷산에 가면 숫돌로 쓰는 돌이 늘려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새벽에 지게를 지고 집을 나선 소년은 북병산을 넘어 고현을 거쳐 오비 뒷산에 이르니 점심 때쯤이었다고 기억했다. 듣던 대로 숫돌용 돌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서서 사용할 만한 크기의 큰 돌을 골라 지게에 지고 다시 남부로 되돌아오니 깊은 밤이었다. 그 숫돌은 내내 사용하다가 몇 년 전에 집을 신축한 후부터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집에서 쓸 숫돌을 얻기 위해 스스로 왕복 40여 킬로미터의 산길을 다녀 온 것이다.

그때 나이 열셋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무참하다. 동년배인 그 소년이 산길을 걷을 때 나는 배부르게 먹지 못한 끼니를 아쉬워하며 다가올 끼니를 기다렸고 그 기다리는 동안 친구들에게 딱지치기와 구슬치기의 기술을 떠벌리고 있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그 소년은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초등교원양성소를 거쳐 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당시에는 의무교육의 시행으로 교사의 수요는 급증했으나 교육대학교 출신만으로는 공급이 딸려서 교원양성소에서 단기 연수를 시켜 교사로 발령내던 시절이었다. 그 후 정통 코스를 밟지 못한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방통대와 진주교대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후 관리자로 승진하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교육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바로 현 거제교육지원청 안재기 교육장의 이야기다.

교육자는 교육의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사람이 아직 덜 자란 사람을 상대로 감화시키고 종내에는 성숙한 인성과 소양을 갖게 하는 일은 예사로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배고픔과 헐벗음의 아픔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곤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등생 시절만 보낸 판사가 빵을 훔치는 가난한 피의자의 허기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이유로 교육대학 출신이 아닌 비정통파 신분으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인생의 꽃을 피운 그분이 지역 교육계의 수장인 교육장으로 취임한 것

은 잘된 일이며 교육계는 공정하고 또 교육적 가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인사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학력과 지식으로 단기적인 성과를 얻는 역량보다는 사람을 공감하고 배려하며 타인의 결핍을 가슴 아파하는 감성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퇴직하는 내가 현직 교육장을 칭송하여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교육자의 소양과 교육적 가치, 소명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분을 끌어들인 것이 죄송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교육자가 감내해야 할 부분인지라 용서해 줄 것으로 믿는다. 미안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곧 학교 구석구석에서 허리를 젖히고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2019년의 새 학기가 시작되는 소리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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