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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엔 수중묘가 있다직접보고 다닐 수 있는 국내 유일 수중묘

삼국유사 만파식적조(萬波息笛條)에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한 뒤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돼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다.

문무대왕의 묘는 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巖)으로 둘레가 200미터쯤 되는 천연 암초로, 멀리서만 구경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수중묘다.

또 1985년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가 발행한 ‘제주설화집성’에 따르면 강정 앞바다에 강 씨 집안의 수중묘(水中墓)가 있다.

이 수중묘는 1876년 병자년(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된 해) 7월 17일에 사망해 강정 경(境)패암(조개바위)에 묘를 만들었다는 비문이 있지만, 현재 해군기지 준공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두 곳 수중묘는 일반인 접근이 거의 불가능 하지만, 거제지역엔 누구나 물때(조석예보)만 맞추면 가까이 찾아 볼 수 있는 ‘수중묘’가 있다.

거제면 오수리 941번지(죽림마을)에 선착장 끝 바닷가 있는 ‘죽림 수중묘’로 이 무덤의 주인공은 1863년에 태어나 1948년에 생을 마감한 ‘배귀임 할머니’다.

죽림 수중묘가 처음부터 바다 가운데 있는 수중묘는 아니었다. 애초 이 무덤은 죽림마을 해변인 ‘여치 끝’에 자락에 있었다.

현몽 깃든 장지는 왜 수중묘가 됐을까

죽림마을 주민에 따르면 무덤의 주인공인 배 할머니는 생전 6남 4녀를 낳았다. 그런데 그 중 막내아들만 결혼한 지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할머니의 늘 걱정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낮잠을 자던 할머니의 꿈에 조상으로 보이는 분이 나타나 “49일 후에 죽게 되면 마을 끝 바닷가인 '여치 끝'에 묘를 쓰라”고 말했다. 꿈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죽거든 꼭 그 곳에 묻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자식들은 할머니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얼마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그때서야 할머니의 꿈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은 현몽임을 깨닫게 됐다.

더구나 자식들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계산 해보니 할머니가 꿈 이야기를 한 지 정확히 49일 째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자식들은 할머니의 부탁처럼 ‘여치 끝’에 무덤을 만드는 일을 마냥 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닷가 끝에 무덤을 만들 경우 자연재해에 무덤이 훼손 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형제도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돌아가실 날까지 정확히 예언한 할머니의 꿈 이야기를 예사롭지 않게 생각한 자식들은 결국 어머니의 유언을 받드는 뜻에서 ‘여치 끝’에 무덤을 만들고 정성스레 장례를 치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자식이 없어 애를 태우던 막내 부부가 1남 1녀를 얻었고,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대를 이어 죽림마을에 번성하게 됐다.

자식을 오랫동안 얻지 못한 막내아들을 걱정한 할머니의 꿈에 조상이 나타났고, 그 현몽에 따라 묘를 써 자식을 얻게 된 영험하고 전설 같은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이후 죽림마을 수중묘는 자손이 귀한 집안이나 결혼 후 오랫동안 자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자식을 낳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기 위해 찾는 일이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자연재해에 취약한 곳에 무덤을 쓴 탓에 할머니의 묘는 자식들이 우려한 것처럼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육지와 연결된 부분이 파도에 쓸려 바다 가운데 묘로 변해 버렸다.

이 후에도 셀마, 매미 등 자연재해 때문에 봉분이 깎이고 훼손됐고, 할머니의 자손들은 더 이상 할머니의 묘가 파도에 더 쓸려나가는 등 훼손되지 않게 무덤 주위에 돌담으로 쌓아 무덤을 지키고 있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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