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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고백의 표준인 사도신경 해설김한식 /거제호산나교회 목사

오늘부터 몇 번에 걸쳐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사도신경을 강해함으로 절대적인 진리가 무너져 가는 이 시대에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세워나가기를 소원해 본다.

사도신경은 기독교가 믿는 바를 가장 잘 요약하고 있고, 하나님의 교회가 마땅히 동의하고 숙지해야 할 사도들의 가르침의 핵심이 그 속에 들어 있다. 그래서 루터나 칼빈을 비롯한 다른 종교개혁가들 모두는 그들의 예배모범에 반드시 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 하는 순서가 들어 있다.

사도신경의 신경이라는 단어는 내가 믿는다 혹은 내가 마음을 준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도신경이라 함은 사도들이 믿었던 것 혹은 사도들이 마음을 모두 내 주었던 것이라는 의미로서 종교 개혁자들은 이 사도신경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절대적인 진리가 허물어져 가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렇게 우리의 믿는 바를 올바로 정리를 해 놓는 것이 그 어느 시대보다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진리가 상대적인 것으로 밀려나고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으며 절대적일 수 없다는 사상이 포스트모던 사회에 편만하게 퍼져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의 절대성과 진리 됨을 올바로 배우고 숙지하여 이단 사설이나 거짓 사상에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도신경은 기독교 교리를 아주 쉽게 정리해 놓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아주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요리문답 22번에 이런 질문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필수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으로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것 전부를 믿어야 한다. 그것은 사도신경 안에 잘 요약이 되어 있는데 사도신경은 일반적이고 의심할 수없는 기독교 신앙을 요약한 조항들이다.’ 이렇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기독교의 핵심교리로 사도신경을 지목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은 사도신경의 열 두 항목을 반드시 열심히 공부해 놓으셔야 한다.그러면 먼저 사도신경의 역사와 생성 과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사도신경은 사도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도신경이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사도신경이다. 현존하는 문서 중에 사도신경과 가장 흡사한 신앙 고백이 2세기 카르타고의 터툴리안의 기록에 등장한다. ‘전능하사 만물을 지으신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그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육체의 부활을 위해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보시다시피 지금의 사도신경과 비교해서 몇 가지가 빠져 있지만 그 뼈대는 아주 흡사하다. 이것이 2세기 터툴리안의 시대에 성도들이 고백했던 신앙고백이다. 뿐만 아니라 주후 215년의 히폴리투스 신앙고백이나 주후 404년의 루피누스의 신앙 고백 그리고 비슷한 시기의 아프리카 교회의 신앙 고백 등이 지금의 사도신경과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이미 그 전에 순교자 저스틴의 신앙고백이나 네오투스를 치리한 서머나 교회의 장로들이 그 회의 자리에서 고백하여 회의 기록에 남아 있는 그 신앙고백도 지금의 사도신경과 대동소이하다. 이렇게 지금의 사도신경과 대동소이한 여러 종류의 신앙 고백들이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 안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다가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남부 프랑스에서 지금의 사도신경으로 확정이 된 것이다. 그것이 주후 710-724년에 정식으로 널리 보급된 공인된 문서에 의해 교회 안에 편만하게 퍼지게 되었고 9세기경에 로마 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져 정식으로 교회에 정착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도신경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로마 천주교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초대교회 때부터 뼈대가 만들어져서 교회 안에서 여러모로 고백되어지다가 정착이 된 교회가 믿는바 핵심 교리인 것이다.

교회가 이렇게 사도신경이라는 신앙고백을 예배의 모범에 사용 하고 혹 예배 순서에는 들어가 있지 않더라도 교회의 합의된 신앙고백으로 자주 암송을 하고 고백을 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째는 교회가 신자라고 자처하는 이에게 세례를 줄 때 그가 과연 세례를 받을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표준으로서 사도신경이라는 신앙고백이 필요했다. 교회가 세례를 받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세례를 줄 수는 없다. 그 때 그가 믿는 바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이 필요했던 것이다.

둘째는 교회가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킬 때 사도신경의 내용에 근거하여 가르쳤다. 자녀들에게 부모의 신앙을 물려주려면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알려 주어야 함으로 그 때 신앙의 가장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핵심 교리로 이루어진 사도신경이 자녀들의 신앙교육의 뼈대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당시에 유행했던 이단사상들을 물리치기 위함이었다.

초대교회 때는 물론이고 2,000년 교회 역사상 이단과 거짓 교사가 없던 시대가 없었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한 아리우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펠라기우스, 알미니우스, 영지주의, 신비주의, 세속주의, 기복주의 등등 이단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해 왔다. 그때 교회가 필요한 것이 올바른 성경 교리였다. 그래서 교회는 사도신경에 비추어 그 테두리에서 어긋난 사람들이나 집단들을 이단으로 규정을 했었다. 왜냐하면 교회는 바울이 말한 대로 한 하나님을 믿는 한 믿음 한 신앙 고백 속에서 한 목적지를 향해 가야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의 교회가 믿는 믿음은 너무나 다양하다. 아니다! 기독교의 한 믿음과 한 소망은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로 수렴되고 지향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시대의 교회는 소망의 대상을 이 세상 것으로 변질시켜 놓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달콤한 미혹에 빠지면 안된다. 그래서 더더욱 사도신경에 요약되어 있는 기독교 교리 공부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계속)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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