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거제의 재발견
거제에서 못 보는 거제 출토유물거제의 재발견 = 고현만 현자총통, 북사 동종, 상사리 명문 기와, 옥산금성 잡상

보물 제885호 고현만 현자총통

국립진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자총통은 지난 1984년 3월 8일 고현만 매립 준설작업 중 모래에 섞여있는 것을 김종태 씨가 발견됐다.

거제에서 발견된 보물 제855호 현자총통 약실에는 ‘1596년 7월에 수군 감영의 작업소에서 제작하니, 현자총통의 무게는 89근으로 서울의 장인 이춘회가 만들었다(萬曆丙申七月日水營功會 玄字重八十九斤 京匠人 李春回)’는 명문이 남아 있어 정유재란 직전 제작돼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자총통이 처음으로 제작된 시기는 조선 태종 때지만 세종 27년(1446) 사용되는 화약의 양에 비해 황자총통보다 성능이 떨어지고 중량이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사용을 폐기했다. 하지만 주조된 양이 많아 폐기하지 못하고 개량 작업이 계속됐고,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주 무기로 사용됐다.

통신과 약실로 만들어진 구조인 이 현자총통은 길이는 79cm(통신 길이 58.7cm, 약실 길이 20.3cm), 입지름은 7.5cm로 만들어진 청동 재료 화포다.

기록에는 화약 4냥과 격목(檄木)의 힘으로 길이 6자 3치 7푼(약 2m), 무게 7근의 차대전(次大箭)을 발사하면 1600m 정도 날아갔다고 전한다.

보물 제885호 고현만 현자총통은 우리나라 화기 발달사의 연구 자료는 물론 국방과학기술 문화재로 높이 평가되는 문화재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7점(보물 지정은 2점)의 현자총통 중 가장 먼저 보물로 지정됐다.

왜구가 약탈한 ‘북사 동종’

현재 일본 좌하현 혜월사(惠月寺)에 일본 중요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는 하청 북사 동종(銅鐘)은 높이 72cm(종 머리 포함), 종신 51.8cm, 종의 지름 44.5cm에 무게 72Kg 정도로 전해진다.

몸통 뒤편 당좌(撞座-종을 치는 당목이 직접 접촉되는 부분)와 좌측면의 비천상과의 사이 위패형 명문곽에 ‘太平六年丙寅九月日河 淸部曲北寺鍮鍾壹軀入 重百二十一斤 棟梁僧談曰’(태평 6년 병인 9월 일 하청부곡북사 유종일 구입 중 121근 동량승담일)‘이라고 새겨져 있다.

명문 내용을 풀이하면 태평 6년은 요나라의 연호로 1026년, 즉 고려 현종 17년 9월에 하청 북사의 종을 만들어 달았다는 내용이다.

특히 북사 동종에는 1374년(공민왕 7년) 일본에서 따로 새긴 추기(追記)가 있는데 북사 동종이 만들어진 후 200여 년이 지난 1232년에 약탈했다는 기록으로 북사동종이 왜구에 의해 약탈된 불법 문화유산임을 증명하고 있다.

거제시지에 따르면 1970년대 일본 측에선 러일전쟁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승전비와 일본 좌하현 혜월사에 소장된 하청 북사 동종을 교환 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여론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거제 역사의 바로미터 상사리(裳四里) 명문 기와


상사리(裳四里) 명문 기와는 1996년 둔덕면 거림리 일대에서 경지정리 사업 차 시행한 발굴 조사와 지난 2007년 둔덕기성 집수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각각 1기씩, 2기가 발견됐다.

상사리 기와 편은 상사리 사람들이 기와를 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기와의 제작과정과 운반거리를 감안하면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 상사리가 거림 인근에 위치한 마을이며 상군 관할의 여러 마을 중 하나로 ‘상군의 치소지가 거림’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 김해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 명문 기와는 단순히 983년경 고려시대 거제지역에 설치됐던 기성현 관아의 흔적이라는 의미를 넘어 거제지역의 역사 연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고대 거제지역은 섬이라는 뜻의 ‘두루·도로’의 어원에다 한자음을 붙여 ‘독로’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신라 문무왕 시대에는 이를 훈차 해 상군(裳郡)이 됐으며, 이후 신라 경덕왕 대에 이르러 현재의 지명인 거제군으로 불리게 된다.

상사리 기와 편 ‘독로’, ‘상군’, ‘거제’가 모두 섬의 지형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독로국 거제설’에서 독로가 상군으로 바뀌는 과정을 증명하는 중요한 문화재다.

거제의 얼굴, 옥산금성 잡상

애초 19세기 조선 시대 마지막 산성으로 알려졌던 거제면 옥산성지(경상남도 기념물 제10호)는 지난 2015년부터 이뤄진 시굴조사에서 7세기 통일신라대 유물이 다량 출토돼 축성 연대가 앞당겨졌다.

더구나 정비사업 과정에서 그동안 거제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 조차 보기 드문 유물 2점이 발굴돼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현재 경상문화재연구원이 연구의 목적으로 임시 보관하고 있는 옥산금성 출토 잡상이다.
잡상은 조선시대 널리 사용된 장식 기와의 하나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을 흙으로 구워 만든 인형이다.

중국 송나라에서 전래돼 조선시대에 성행한 잡상은 주로 궁전 건물과 궁궐과 관련이 있는 건물 및 사찰의 추녀마루 위에 세우는데 사용됐는데 이에 따라 조선시대 옥산금성에 국가가 관리하는 규모의 건물이나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조선 중기 다양한 민간 지식과 풍속을 담고 있는 설화집 어우야담(於于野談)을 비롯한 조선시대 사료에는 잡상에 대한 다양한 형태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옥산금성 잡상과 유사한 형태의 잡상은 발견된 사례가 없어 앞으로 거제시의 연구가 필요한 자료로 보이며 경주에서 발견된 얼굴무늬 수막새 기와가 ‘신라의 미소’로 활용된 사례처럼 옥산금성에서 발견되 잡상의 이미지를 활용한 콘텐츠나 지역 상품 개발도 기대된다.

참고자료 = 동아대 박물관 <발굴유적과 유물> 2003, 거제시지 2000, 경상문화재연구원 <거제옥산성지 정부사업부지 내 유적 약식보고서>2016, 신현읍지 2006,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대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정기 후원은 새거제신문의 신속 정확한 뉴스 및 정보 제공에 큰 힘이 됩니다!

후원하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