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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와 ‘속았다’의 차이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여자들은 대부분 보석을 좋아한다. 나도 여자다. 그렇다면 보석을 좋아할 것이라는 귀납적 추리로 해석 할 수 있지만 나는 보석에 관심이 없다. 젊었을 때도 그랬고,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다. 다이아반지라고 받은 예물이 결혼 후 모조품이었음이 밝혀져 3개월 만에 이혼 절차를 밟는, 아는 신부(新婦)의 불평을 들는 오늘까지 보석의 미학적 가치에 수수방관 하고 있다.

내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예물을 생략하자는 ‘예비 며느리’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형식은 갖춰야 된다는 시가 어른과 그 마을 읍내 ‘황금당’에 갔다. 훗날 어머님으로부터 듣게 된 말씀인즉, 당신(시모)께서 “다이아반지 골라봐라”고 하니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거 안 해도 되는데예”. 그러시며 “처자가 순진한 건지 철이 없는 건지 모르겠더라” 고 웃었다.

철이 없어서인지 순진해서인지 나도 모를 일이나. 보석반지의 효용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생각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래전에 고(故) 박완서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몸을 치장하는 귀금속은 결국 쓰레기에 불과하다”.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은 선생은 평소 외양 가꾸는 일에는 무관심해 보였다. 오직 농사짓고, 글 짓는 일 외 장신구로 멋을 내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삶을 추구했다. 인생은 결국 자연으로 회귀해야 하는데 영원히 썩지 않은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의 울림이 컸다.

며칠 전, 아는 여인의 딸네미 결혼식을 일류 호텔에서 한다는 초청장을 받았다. 형편이 넉넉한 집이라 스케일이 달랐다. 안 갈 수 없어 새벽부터 서둘렀다. 비오는 날이었다. 멋을 좀 부려야 호텔 출입에 격이 맞을 것 같아 서랍장에 방치해 두었던 브로치를 꺼냈다. 신혼 시절에 지아비로부터 받은 유일한 보석 브로치였다. 정장 재킷 상단에, 브로치를 꽂았다. 포도알 모양의 알이 반짝반짝 빛났다. 거울 속 여자가 꽤 근사하게 보였다.

서울행 고속열차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 목적지에 도착했다. 축하화환이 횡으로 널어선 배경 속에서 축의금을 든 하객들이 연휴 맞은 공항터미널처럼 북적거렸다.
한 달여 후, 그날의 혼주와 동석을 했다. 그녀는 ‘1캐럿 다이아’라며 중지를 흔들었다. 시크하게 날이 선 반지는 존재의 구획을 무시한 채 최상의 퀼리티를 발산하며 좌중을 압도했다. 이럴 경우 호들갑을 떨어줘야 예의다. 나는 여인의 자랑질에 맞장구를 치며 ‘한 번 끼어봐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번쩍번쩍 광채를 경험하는 내 손가락이 촌스럽게 화들짝 놀라는 기색을 보이자, 보석반지를 놀리고 싶었다.

어이, 다이아반지! 내가 무슨 매력으로 세상의 여성들을 유린하냐? 반지가 뜬금없이 태클을 거는 나를 노려보았다. 너의 겉만 보고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째 알겠냐. 너 진짜 맞냐? 내가 보기에는 넌 그저 유리 같아 보여. 다이아반지가 억울하다는 듯 되받았다. 당신은 자신의 무능력을 검소함으로 합리화 하려는 것이냐. 그건 너무 치사하다. 다이아몬드가 발끈하며 유리와 자신을 비교분석해 주었다. 유리의 광채란, 그 연약함을 위장하는 것이지만 다이아몬드는 어두운 곳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지. 어디 그 뿐이랴. 유리는 약한 충격에도 깨지지만 다이아몬드는 아무리 큰 충격을 받아도 끄떡없어.

반지의 주인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사이 나와 다이아반지의 소통이 이어졌다. 네 말은 맞아. 그러나 네가 그 엄청난 몸값만큼의 가치는 없어.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거든. 유리를 다이아반지로 알고 끼면 돈 버는 거잖아. 다이아는 보석의 가치를 격하하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반지의 주인이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딸아이 축의금 일부를 떼어 맞춘 반지라고.
사실 나는 결혼식 날 귀가 길에 브로치를 분실했다. 우중(雨中) 동선에서 흘린 것 같았다. 브로치 이중 잠금 장치에서 핀만 원단에 슬쩍 꽂힌 게 분명했다. 축의금을 계좌로 보낼 걸. 내가 혼주일 땐 그에게 초청장을 안 보낼 수 있는데... 불면으로 며칠을 끙끙대다 남편에게 실토를 했다.

“당신이 준 다이아 브로치...그거 잃어버렸다우”
의외로 남편이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괜찮아, 그것 가짜야”
아, 살았다. 아니 속았다. ‘살았다’와 ‘속았다’ 사이에서 나는 또 갈등했다. 그것이 모조품이었다니 다행이다. 아니지. 긴 세월 동안 아내의 순진함을 즐긴 남편이 섭섭했다. 그러나 잃어버렸으니 ‘살았다’에 방점을 찍으면서 다이아가 나에게 한 말을 되짚었다. ‘유리는 잘 깨지고 다이아는 아무리 큰 충격을 받아도 멀쩡해’ . 이 논리대로라면 큐빅을 주고받은 부부 전선에 이상이 있어야 한다. 사업전선 이상은 있었어도 결혼전선 이상은 없으니 그 말은 틀린 것이 된다. 다이아반지가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다는 것도, 다이아반지로 인해 이혼한다는 신혼부부도 내 지론의 방증이 된다.

진짜, 가짜 감별이 뭐가 필요하랴. 내가 가진 것을 무조건 ‘진짜’라고 믿는 게 상책이다. 애증의 세월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가짜도 변한다. 겉 보다 서로를 긍정해주는 가치관으로 시간의 검정을 받았다면, 그 배우자가 바로 진품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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