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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기성, 의종이 만든 사찰 존재했다고려사연구회 이임춘 고문, 출토된 명문 기와 편에 쓰인 한자 해석

둔덕기성 서문에 고려 미륵사상 품은 작은 암자 있었을 것으로 추정

고려사연구회 이임춘 고문(둔덕치안센터장)은 둔덕기성에서 발견된 기와 편에 새겨진 한자를 풀이한 결과 성 내부에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고문이 둔덕기성에 암자가 있었다고 주장은 지난 2015년 동아세아연구재단이 둔덕기성 발굴 중 서문지 인근에서 찾은 고려시대 명문기와의 명문을 근거로 두고 있다.

명문기와엔 ‘○○초 ○복사(○○草 ○福寺)’라는 글자가 있었는데 애초 동아세아재단은 ○○초○복사 중 첫 자는 불교용어 ‘옴마니반메훔(산스크리트어)로 보여 고려시대 불교와 관련된 의미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의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고문은 ○○초의 첫 글자는 일종의 기호로 보이고, 나머지 글자는 당초(堂草), ○복사에 밝혀지지 않은 명문 첫 글자의 경우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한자인 멱(覓) 자로 명문기와의 글자는 ○당초 멱복사(○堂草 覓福寺)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 고문은 멱복사는 복을 찾는다는 뜻이며 당초는 고려시대 미륵사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당초 堂草라는 글은 현재 국어사전이나 한문 사전에 없는 말인 데다 앞서 관련된 유물이 나온 곳이 고려시대 사찰터인 숭선사지, 중원 미륵사지 등 두 곳에서 발견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1970년대 충주중원미륵사지(충주미륵대원지) 발굴조사에서 ‘미륵당, 미륵당초, 명창3년대원사주지승원명) 彌勒堂, 彌勒堂草, 明昌三年大院寺住持僧元明)’이라 적힌 기와들이 발견됐는데 명창은 금나라의 연호며 명창 3년은 1192년으로 고려 의종의 동생인 명종 22년인 것을 보면 둔덕기성에 지어진 ‘멱복사’가 의종 대에 지어진 사찰이나 암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고문은 “의종은 불교는 물론 도교나 선교에 깊은 지식과 애정이 있었기에 의종이 머물렀던 둔덕기성에 기도도량이 없다는 것이 의아하던 중 기와에 새겨진 명문을 보고 둔덕기성에 절이나 암자가 분명 있었을 것으로 무신난과 잃어버린 왕실의 권위를 찾는 의미에서 절사찰의 이름을 멱복사로 지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고문은 또 “미륵사상은 통일신라시대는 물론이고 후삼국 시대 궁예와 견훤이 백성들의 통치를 위해 사용했고 고려시대 들어선 묘청과 신돈이 북진과 개혁의 이념으로 삼았던 신앙이었다”면서 “둔덕기성에서 발견된 당초 멱복사 명문 기와는 의종이 백성을 핍박하고 박해한 무능한 왕으로 기록된 왜곡된 고려사의 이미지를 벗어나 왕권강화와 애민정신을 실천한 왕으로 재조명돼야 할 근거”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동아세아연구재단 관계자는 “둔덕기성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해석하고 있는 이 고문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지만, 기와를 다른 지역에서 가져왔을 가능성 등 다양한 연구가 필요해 필요해 보이며, 만일 둔덕기성에 사찰이 있었다면 북측 기단 인근에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설명했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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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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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정도 추정 나름 2018-09-18 14:21:27

    근거라는건 주장과 합이 맞을때 가치를 가지는 것이고 가능성도 설득력이 있어야 호응이 드는것이지요 왕권강화와 애민정신을 실천한 왕으로 재조명돼야 할 근거 라고 밝히기엔 가능성에 불과하니 근거로서 값어치는 떨어지는 것이지요 이를 두어 주장을 가지고 근거를 대신하다고 합니다 주장에 주장의 덧붙힌 셈이니 근거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제가 말한다면 비약이라고 하실련지요 ㅎ 의종이 지은 사찰이 아닐 가능성이 분명 존재하지요 멱복사가 아닐 가능성 존재하지요 아에 사찰이 아닐 가능성 존재하고 의종 명종대가아니라 그전 그후일 가능성 존재합니다   삭제

    • 추정도 추정나름 2018-09-18 14:08:43

      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요 아닌거 같은데? 둔덕기성에서 발견된 당초 멱복사 명문 기와는 의종이 백성을 핍박하고 박해한 무능한 왕으로 기록된 왜곡된 고려사의 이미지를 벗어나 왕권강화와 애민정신을 실천한 왕으로 재조명돼야 할 근거”라고 밝혔다. 앞서서는 가능성이라고 밝히고 뒤로는 단정적으로 멱복사다! 근거다 하기엔 글쎄요 비약이라는 단어도 한번 사전에서 살펴보시는건 어떨까요?   삭제

      • 추정이라는 이름으로 2018-09-18 10:33:50

        추정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시는게 어떨까요? 예를 든 중원 미륵사지 명문기와는시대적 연관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의종이 만든 거라고 한건 아닌 걸로 보입니다 가능성을 말하는 것 조차 비판하고 폄하하는 것은 올바른 것일까요?   삭제

        • 고려역사연구하는거 맞나?? 2018-09-09 18:38:51

          사찰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사찰이 있었음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그러하다는 분명 다를텐데? 좋아좋아 기와가 나왔으니 있었다 치자 사찰을 누가 언제 지었냐도 들어나지 않았는데 의종이 지었을거고 사찰을 지었다는건 애민정신이 있었던 왕이다! 로 넘어가는지 추정을 거듭하는걸 쉽게 말해 비약이라고 하더라고 의종의 생몰연도가 1173년인데 1170년 유페 거제 1173년년 경주에서 붕. 응? 암자의 기와를 20년이 지나서 1192년에 올리는건감?아님 저 미륵당초라는 기와는 다른 곳에서 발견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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