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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新 又日新김한식 /호산나교회 담임목사

흔히 인생은 고해와 같다고 말한다.

인간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천재들이 인생은 고해와 같으며 비극적이라는 걸 그들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결론짓고 갔다. 세계 최고의 문학작품들을 보라. 왜 그 내용들이 대부분 비극적인지 아시는가? 사람들이 그들이 써놓은 책들을 읽고 그걸 베스트셀러 혹은 역작이라고 인정을 했다는 건 그걸 읽은 사람들이 맞아! 인생이란 이런 것이야 라고 그 내용에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헤밍웨이 같은 사람은 나중에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 사람은 젊었을 땐 권투선수였고 일 년에 몇 번씩 아프리카로 사냥을 다닐 정도로 굉장히 체력이 좋은 사람이었으며 여성편력도 강해서 수십 명의 여자들과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다. 그리고 명성은 물론이고 재산이 또한 얼마나 많았던지 그의 손녀가 할아버지 재산으로 지금까지도 호의호식할 정도로 그는 부유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엽총을 입에 넣고 자살해서 죽었다. 그 사람은 평소에 인생은 그래도 살아볼만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면서 살았지만 그러나 자기에게 찾아오는 그 공허와 허무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다. 노인이 거대한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았는데 세상을 상징하는 상어가 찾아와서 마구 뜯어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사투를 벌이면서 끝까지 항해를 하는데 결국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뼈다귀만 배 옆에 달고 들어가서 자는 걸로 끝이 난다. 그가 끝까지 뼈를 버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가치 있는 것일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헤밍웨이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은 인생은 그냥 이렇게 비극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었다. 그리고 그는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철학이나 종교들은 삶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이 허무와 비극적 삶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나 지식을 총 동원하여 인생을 새롭게 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 날 교회마저도 이 세상과 똑 같은 방식으로 인생의 허무와 비극적 삶을 극복하려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경험해 보았지만 인간의 지혜나 지식의 산물인 과학이나 의학기술로서는 결코 우리가 새롭게 되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우리의 인생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는 어떤 것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 자기를 새롭게 하는 것은 우리 속에서 혹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다.

이 세상의 것은 잠시 우리를 유쾌하게 할런지는 모르지만 다시 일상으로 복귀가 됐을 때 우리는 여전히 그런 허무한 상태를 또다시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문명이나 과학이나 의학이 발달하면 더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인간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죄악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 생각해 보라. 인터넷이 발달함으로써 굉장히 편리한 점들이 많아졌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인한 신종 범죄들은 오히려 더 많아졌으며 인간의 정신도 더 피폐해졌다. 과학의 발달로 인류의 미래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런 기대는 양차대전으로 인해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 이처럼 오늘날 세상은 점점 더 완악하게 변해가면서 절망적인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인류는 점점 자기들이 발전하고 있고 번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다. 성경은 이 모든 결과는 바로 인간의 죄로 인해 주어졌다고 결론지으면서 이런 고해와 같은 비극적 삶에서 새롭게 되는 삶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비극적이고 고해와 같은 삶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소망적이고 희망적인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 성경은 오직 죄에 대한 회개를 통해서만이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회개라는 말은 눈물 콧물 흘리면서 단순하게 짓던 죄를 반성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런 죄를 안 짓겠다고 고백하는 그런 종류의 회개가 아니다. 물론 그것도 회개에 나타나는 일종의 현상임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회개라기보다는 일종의 반성이나 뉘우침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말이다.

회개라는 말의 정확한 뜻은 다시 생각하여 마음을 바꾼다는 말이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세계관이 바뀌는 걸 말한다. 그동안에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방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여 이게 아니구나라고 해서 마음을 바꿔내는 것 그것을 회개라고 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겨왔던 이 세상적인 것들로 향하던 우리의 생각들을 바꾸라고 권면한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행복에 도달하려고 채택하고 있는 그런 삶의 방법들이 잘못된 것이니까 다시 생각해보고 그것들을 바꾸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오늘 날 교회들은 여전히 이 세상적인 것들로 자신들을 새롭게 만들겠다고 그것들만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만 얻을 수 있다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이 시대에 기독교가 진짜 존재하는 건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진짜 있긴 있는 건지 궁금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참다운 회개가 가능할까?

과연 우리는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회개는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밖에서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인데 그 힘이 바로 성령의 힘이다. 회개는 그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그 회개를 통해서만 우리는 비극적 인생에서 소망적 인생, 살맛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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