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표정은 어두웠다. 몽니 궂은 상(相)이었다. 철통 보안시스템, 몇 미터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쳐진 요새에서 여자는 자신을 방어하느라 평생 전투적 긴장관계를 유지했다고 누군가 폭로한 음성파일이 방증했다. 증거품을 제시한 사람들은 돈과 밥의 두려움에 떨던 일꾼들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한한공 사주 아내‘이명희’다. 그녀의 괴성은 엘레강스한 저택의 품격과는 거리가 먼, 칠십 세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했다. 돈으로 나이를 깎을 수만 있었다면 젊음을 유지했을 번한데 그건 신의 영역이라 나이만큼 늙은 외양이었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얼굴을 보고나서 ‘20분간 50번 욕설·폭언’이란 기사를 믿었다. 분노, 혐오, 원망 등, 부정적 감정 노출이 습관이 되면, 그 순간의 앞면 근육이 표정으로 굳어진다는 전문가 말을 떠올리게 하는 안면이었다.

‘얼’은 ‘정신'이고 ‘굴’은 ‘정신의 통로’라고 한다. 멍한 사람더러 '얼빠졌다'고 하는 것도, 생명이 빠져나간 주검의 얼굴이 변하는 현상도 이를 대변하고 있다. 신체발부와 오장육부 구석구석을 관여하는 게 마음이고, 마음이 희로애락을 연출하여 상을 만든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정신의 나들목임을 확인한 셈이다.

새삼 명경 속의 나를 응시한다. ‘생애 이력 문서가 얼굴이다’ 이처럼 두려운 자료도 없을 것이다. 멘토로 지정한 ‘논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펼쳐 밑줄 그은 부분을 다시 본다.

공자가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천하를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깨달은 때가 일흔이었다. ‘인생이란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지고 태어나서 두 눈으로 바로보고, 두 귀로 바로 듣고, 두 코로 향내를 감지하고, 입으로는 정갈하게 먹고 진실하게 말하며, 두 구멍으로 배설하는데 막힘이 없어야 한다. 이건 삶을 기본이요, 도리’라고 간주 했다. 이후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해도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고 한 말이 그 유명한 ‘종심소욕 불유구’다.(논어,「위정편爲政篇」)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리얼하게 짚어내고 있다. 작가는 사형대에서 죽을 뻔 했던 사람이다. 충격적인 체험 덕에, 죽음을 공통된 주제로 하여 인간 구원의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전해준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 지옥은 어떤 것일까? 그는 ‘지옥이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다’라고 정의한다. 이 문구를 곱씹어 보면 의미심장하다. 인간이 배려, 양심, 성찰 없이 욕구만을 추구한다면, 그러한 인간이 모인 곳을 지옥(Dead House)이라는 뜻이다.

예화(양파 한뿌리)를 그 증거로 제시한다. “한 번도 선행을 한 적 없는 노파가 죽어서 지옥에 갔다.?사탄은 노파에게 ‘너는 생애 욕심 많고 이기적이었으니 지옥이 딱 알맞다’고 했다. 그러자 노파가 소리쳤다. ‘있어, 거지에게 양파 한 뿌리 준 적이!’ 그때 신의 손이 지옥까지 뻗쳐져 내려와 그 양파를 내밀면서 말한다. ‘양파 한 뿌리가 끊어지지 않으면 천국으로 오게 하마’ 노파는 양파를 잡고 천국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거의 다다랐을 때 수많은 다른 죄인들이 자신의 팔다리에 붙어 따라 올라오고 있음을 알았다.

양파가 끊어질까 겁난 노파는 ‘내 양파야, 너희들 것이 아니라고. 양파 한 뿌리가 끊어지면 난 천국에 못 간다구’ 소리치며 발길질로 다른 죄인들을 걷어찬다. 많은 죄인들이 지옥불에 떨어진다. 그녀의 발길질로 지옥에 떨어진 사람 수가 늘어날수록 양파줄기가 약해진다. 마지막 한 죄인이 발가락을 붙잡고 딸려오는데,그마저 발로 차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양파줄기가 끊어지고 노파도 지옥으로 떨어졌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7권 5장 가운데).

그 여자 칠십에 난 동티를‘종심소욕’관점에서 보면 필연이다.‘양파 한 뿌리’관점에 보면 사필귀정이다. 끝까지 그 삶의 방식이 은폐되었다면 감당하지 못할 업보를 받지 않을까. 신은 그 가족을 은총의 수혜자로 지목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면피를 목적으로 병원진단서를 끊을 게 아니라 벌을 정중히 접수해야 한다. 지상에서 가장 척박한 공간에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와 ‘지옥이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란 뜻을 음미해야 한다.

인간은 미완성 존재이다, 누가 누구를 평가하고 재단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유물론적 사고가 빚은‘얼’과‘굴’의 텍스트로써,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 해 본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여자의 얼굴이 회복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선행은 돈을 경유해야 적극성을 띈다. 온갖 편법으로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등 삶의 새로운 변주를 시도하면 가능할 것이다. 소외된 이웃에 노블레스 오블라주를 실천하고, 기부 습관이 몸에 밴다면 ‘천국이란 누구나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에 눈시울을 붉힐 지도 몰라. 그 순간의 표정은 환하리라.
이 소시민, 재벌녀의 선행에 감동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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