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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용사가 됩시다김한식 /거제호산나교회 담임목사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유명한 사람, 잘 난 사람, 그리고 용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를 주장하고 싶어 하고, 명령하기를 좋아하고, 대접받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철저하게 이런 사람들을 무너뜨리신다. 어떤 때는 고난을 주어서라도 쳐서 부수어 버리신다. 그리고는 끝까지 자기 부인의 자리로 밀어 넣어버리시고는 그 때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하나 붙여주시는데 그 이름이 바로 하늘 용사, 혹은 하나님의 사람, 혹은 하늘 장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신다. 오늘은 그 대표적인 사람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사사 기드온이다.

어느 날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찾아 오셨다.

그리고는 그를 향해 큰 용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사실 그는 지금 큰 용사라는 칭찬을 들을 만한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타작은 바람이 불고, 사방이 훤하게 트인 곳에서 하기마련인데 그는 지금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를 짜는 밀폐된 공간에 숨어서 타작을 하는 그런 겁쟁이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서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까 너는 나가서 미디안과 싸워서 네 민족을 구하라고 명령을 하신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신의 집은 므낫세 지파 중에 가장 약한 집안이고 자기도 또한 자기의 아버지 집에서 가장 적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한사코 거절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하면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자의 말을 거절하는 것은 지금 자기에게 힘이 없어 싸우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 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자기에게 능력이 있으면 나가서 싸울 것인데 그러나 지금 자기에게 능력이 없어서 못 싸운다는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불평하기를 하나님이 정말 나를 쓰시려면 이렇게 우리를 엉망진창으로 놔 주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원망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자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할 것이니까 싸우라고 강권했지만 그러나 기드온은 내가 지금 능력이 없어 못 싸운다고 계속해서 고집을 부렸다.

이처럼 기드온은 처음부터 용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기드온에게 찾아가서 그를 큰 용사라고 불러준다. 이 말은 지금 현재 기드온이 큰 용사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이 만들어 가실 기드온의 완성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큰 용사라고 불렀다. 다시 말하면 기드온은 장차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무가치함과 부족함, 흙 됨을 배우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신을 부인하는 자리까지 내려가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드온은 이렇게 자신이 부인되어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비우게 되고, 이로 인해 그 빈곳에 하나님이 채워지는 그래서 하나님과 연합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 여기서 연합이라는 말은 나와 하나님의 힘이 합해져서 연합이라는 말이 아니라 피조물인 나의 내용이 비워지고 그 빈 자리에 하나님이 대신 채워지는 것을 연합이라고 한다. 그게 바로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의 이야기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비로소 하늘 용사, 하늘의 장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흔히 우리는 기드온을 가리켜서 세상에서 규정해 놓은 그런 잣대로 그를 용사라고 부르고, 또 그를 따르는 300명의 부하들의 용맹스러운 모습을 가리켜서 큰 용사라 부르며 그들을 본받자고 노래한다. 그런데 사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그들에게는 전혀 세상이 규정해 놓은 그런 용사다운 면모가 없었다. 처음에 기드온이 군사를 모집할 때 32,000명이 모였다. 그런데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300명만 남게 된다. 흔히들 사람들은 이 300명을 제외한 모든 군사들은 어중이떠중이 들이고, 이 300명만 용감해서 결국 이 300명으로 적진에 들어가서 적군 135,000명을 단 숨에 무찔렀다고 이야기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당시 무기 체계로는 이 300명이란 숫자를 가지고는 결코 13만 5천의 군사를 이길 수 없다. 그들의 손에는 칼도 창도 없었다. 오직 나팔, 횃불, 항아리가 전부였다. 이것으로 용기를 내어서 135,000을 이긴다고 하는 것은 완전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이 전투에서 이긴 것은 그들의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자기들은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300명까지 밀리게 되고, 여기서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함께 하심으로 이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쟁에서 강조되는 것은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의 용기가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큰 용사는 자신의 상황이나, 조건이나, 처지나, 능력이나, 지혜를 다 부정당하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자가 하나님의 큰 용사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방법인 나팔, 항아리, 횃불과 같은 방법으로 미디안 군대 135,000명과 싸워서 이기게 하시는 것이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하늘 용사에 대한 올바른 정의다.

그런데 오늘 날 기독교라는 깃발을 꽂은 사람들이 너나 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이 세상에서 큰 자, 가진 자가 되는 것이 축복이라고 나발을 불고 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망하는 것이 축복이다. 그래야 십자가의 필연성을 느끼게 되고 주님만을 붙잡을 수 있게 된다. 순교자를 보라. 믿음의 영웅들을 보라.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영광을 범죄한 인간들에게 빼앗기지 않으신다. 영광은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고 우리에게는 결국 구원의 필연성만을 남기는 것이 기독교다. 우리는 그 사람을 가리켜 하늘 용사라고 부른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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