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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듯 유정함으로김정희 /거제문예재단 경영지원부장

우리 집에는 화분이 스무 개 가량 된다. 그 중에서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올 때 지인들이 선물한 다섯 개의 화분은 이집에 살고 있는 햇수로 커가고 있다. 그런 연유로 나는 다른 화초들보다 더 자주 손길을 준다. 그래서인지 튼실하게 늘 푸른 잎으로 베란다를 꾸며 준다. 또한 제철이면 마디마디에 맺힌 몽우리가 활짝 피면 난 아예 그 속에 푹 빠져버린다.

그런데 그들 중 유독 소철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나 지금이나 늘 그 상태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여느 화분들처럼 살갑게 다가서는 나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베란다 한쪽에 놓여 있다. 그래서 나도 그가 갈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물만 공급해 주는 최소한의 관심만을 표한다. 그러나 이 소철도 아주 가끔씩은 자리를 옮길 때가 있다. 집안 분위기를 바꾼다거나 손님이 올 때는 거실의 중요한 소품으로 자리 메움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화초가 참 예쁘다고 탄성을 지른다. 그럴 때 한번 자세히 보면 시나브로 크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또 크리스마스 때면 사방으로 펼쳐진 잎 사이사이에 깜박등을 늘어뜨리고 솜뭉치를 군데군데 얹으면 멋진 크리스마스트리로 변신한다. 이렇게 꼭 필요할 때 제 할 일을 완벽하게 해 내고 나면 미련 없이 제자리로 조용히 물러앉는다.

가끔씩 전화를 주는 친구가 있다. 며칠 전 휴일에도 그랬다. 그렇게 바쁜 시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야 할 일거리를 시작하지도 않은 텅 빈 시간이었다. 고요함을 즐기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근 두 달 만이었다.

그 순간을 꼭 기다린 듯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 친구와 이런 긴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우연일까 필연일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 친구와는 학창시절 쭉 같은 반으로써의 시간을 함께 공유한 기억 말고는 변변한 추억거리 하나 없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도 한동안은 통 소식 없이 지냈다. 그러고 몇 년이 지난 후 우리 집 주소를 어떻게 알고는 청첩장을 보내왔다. 그것을 시발로 드문드문 연락을 주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꾸준함으로 지속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난 친구에게 동화에 나오는 '재키의 완두콩'처럼 하룻밤 사이에 하늘까지 자라는 '완두콩우정'같은 성급함을 보이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친구는 언제나 필요 이상의 따뜻함을 보내오지 않는다. 서로의 냉정한 절제 속에 아주 느리게 우정을 키워 나가야 된다고 무언의 암시를 주는 것이다.

때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친구가 무정할 때도 있지만 자세히 귀 기울이면 전해오는 유정함을 측량할 수 있다.
평소에는 서로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살지만 어느 날 우연스레 그러나 꼭 필연적인 전화가 되어버리는 그와 나.

요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으레히 어깨에 띠를 두른 선거 출마자들이 명함을 돌린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임을 실감할 수가 있다. 구호만 요란스러운 정치인이 아닌 묵묵히 정책적으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인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요란스러운 구호가 아닌 필연적인 사명감으로 긍정적인 변화에 일익을 담당하는 정치인을 선택해야 되지 않을까?

언제나 묵묵히 무덤덤함으로 나에게 감정을 절제하는 듯 한 소철 같은 친구, 같이 살거나 자주 만나지 않는 관계에 있어서도 내 삶과 진하게 연관을 지닌 친구와의 인연은 늘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 준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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