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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 시인의 생애 기록되지 않은 1949년 찾아조상도 前 시장 증언, ‘내가 제자’, 사등고등공민학교 국어 교사로 근무
▲ 1955년 경주고등학교 재직시절의 청마

청마기념사업회(회장 옥순선)는 유치환 시인의 연보 기록 중 유일하게 기록되지 않고 있던 1949년의 행적을 찾았다고 최근 밝혔다.

청마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시인의 연보(1908~1967)에 매년 작품이나 지인들의 기록을 통해 행적이 확인되지만 유독 1949년 청령일기 발간 이후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가 지난 5일 조상도 전 시장의 증언으로 시인의 행적을 찾았다.

조상도 전 거제시장의 증언으로는 시인은 1949년 사등 고등 공민학교(현 성포중학교) 국어 담임으로 3~4개월 재직했다.

당시 사등고등공민학교는 일인 교육장으로 사용하던 심산소학교 터에서 운영될 무렵으로 당시 이사장을 맡은 김순관 전 사등면장이 시인이 집에 쉬고 있다는 소식에 시인을 찾아가 고 사등 고등 공민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과목을 맡아 달라는 부탁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조 전 시장은 시인이 사등 고등 공민학교에 재직할 무렵 입학해 다음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시인에게 수업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1951년 피난시절 부산에서_앞줄 왼쪽에서부터 소설가 김말봉, 청마, 곽종원, 조연현, 뒷줄 왼쪽 김광주, 김동리

김득수 전 거제시의회 의장도 조 전 시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언을 했다. 시인의 셋째 딸인 유자연 여사와 생전에 나눈 이야기 중 시인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1949년) 주말이면 어머님(권재순 여사)이 챙겨주는 옷가지(속옷 등)를 챙겨 배를 타고 이동해 아버지께 다녔던 기억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유자연 여사가 탔던 배는 ‘진해환’이라는 선박으로 추정되는데, 시인의 따님은 본가인 통영에서 출발해 견내량과 성포를 경유, 중통골(현 중곡동)로 1일 1회 왕복하던 이 선박을 이용해 아버지인 시인을 만나러 왔다는 이야기로 미뤄 시인이 사등고등공민학교 재직 시절 성포에 거주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밖에 청마기념사업회는 최근 시인의 연보에서 누락돼 있던 ‘1949년 5월 청령일기 시집 발간’, ‘1950년 9월 한국전쟁 동부전선 종군’ 등의 기록을 찾아 청마기념관 연보를 수정하는 등 시인의 올바른 생애를 기록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옥순선 청마기념사업회장은 “이번 조상도 전 시장님의 증언으로 청마 선생님 연보에 없던 새로운 행적은 찾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청마 선생이 고향에서도 교육자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큰 의미”라고 말했다.

조상도 前 거제시장이 유치환 시인의 1949년 현 성포중학교에 근무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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