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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블루시티거제문학상 전국공모 시상김성배 씨 詩 ‘해송다방은 펄떡거리는 그리움을 판다’ 대상

한국문인협회 거제지부(회장 서한숙)는 제2회 블루시티거제문학상전국공모전 결과를 지난 13일 발표했다.

블루시티거제문학상운영위원회에서 주관한 이번 행사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거제도’를 소재로 한 전국공모전으로서 모두 6명(15편)이 선정됐다.

대상은 시 부문에 응모한 김성배(경기도 부천시)의 「해송다방은 펄떡거리는 그리움을 판다」 외 4편의 작품이 선정됐다. 금상(거제시장상)에는 김태연(대전시 유성구)의 소설 「사진 속의 새」와 장병길(경북 구미시)의 시 「지심도의 덩굴손」 외 4편의 작품이 각각 선정됐다.

은상에는 박하성(부산시 해운대구)의 수필 「동백섬 피고지고」 외 1편과 김두선(부산시 수영구)의 수필 「조탁(彫琢)」외 1편의 작품이 각각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제21회 거제선상문학예술축제 일환으로 열린 블루시티거제문학상 전국공모전은 모두 339편이 접수됐다. 예심을 거쳐 본심 심사는 홍신선(시인/문학평론가), 윤후명(소설가), 고동주(수필가), 최원현(수필가/문학평론가)가 각각 맡았다.

수상자 중 대상 수상자는 도지사상과 상금 300만 원을, 금상은 시장상과 상금 200만 원을, 은상은 거제문협장상과 상금 100만 원을 각각 수여한다.

한편, 블루시티거제문학상 당선작은 ‘거제문학 37’집에 수록되고, 시상식은 오는 26일(화) 웨딩블랑 3층에서 거제문학출판기념회와 함께 열린다.

1. 시/심사평(홍신선)

“거제 풍광을 위한 시적 전략 돋보여”

시상(施賞) 취지 탓일까. 예심을 거친 50 여 편의 작품 대다수는 거제의 풍물들을 시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몽돌, 바람의 언덕, 지심도, 해금강, 외도 등등. 작품 속에서 이들 시적 대상은 하나같이 묘사되거나 진술된다. 그런데 묘사는 주로 목록 식으로 대상의 세부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래 말은 장황하고 초점은 모호하다. 진술 역시 그리움, 애달픔 같은 정서적 반응이 대부분이다. 얼핏 시적 틀이 정형화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스타일과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 좀 심하게 말하자면 상투형으로까지 읽히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시적 대상의 묘사는 세부를 목록 화하기보다는 지배적 인상 한 두 가지를 제시하는 게 맞을 터이다. 또한 제시된 대상은 작자 나름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곧 쓴 사람만의 남다른 생각이 거기 묻어있거나 묻어나야 한다. 이 같은 시적 전략에 충실할 때 우리는 저 상투적 스타일을 벗어날 수 있을 터이다.

이번 대상으로 올린 작품 김성배의 「해송다방은 펄떡거리는 그리움을 판다」는 이 전략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 간결한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썩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해금강을 흥취 있게 둘러본 화자는 그 감흥에 취해 “재만 남은 십구공탄처럼/오늘 하루 더 뜨겁게 쉬어갈까”라고 읊조린다. 뿐만 아니라 귓전을 때리는 파도소리에 ‘그만 눌러 살’ 요량까지를 낸다. 이는 거제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그 어떤 시적 수사보다도 더 강하게 읽힌다. 우수상에 선정된 장병길의「지심도의 덩굴손」 역시 ‘나팔꽃 덩굴손’을 지켜본 화자의 감회가 남다르다. 그 감회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투명한” 허공 속에 열망 하나로 뻗는 덩굴손의 각별한 품새에 기인한다. 특히 덩굴손을 매개로 거제 일원의 풍광이 우회적으로 제시된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이번 입상한 두 분들께는 거듭 축하를 드린다. 아울러 앞으로 더 고도한 시적 성취를 즐겁게 기대해 본다.

본심 심사위원: 홍신선

시인/문학평론가

동국대 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 교수/ 예술대학원장 역임. 『시문학』 시추천(1965년).

시집: 『서벽당집』, 『겨울섬』, 『우리이웃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 『우연을 점 찍다』. 『삶의 옹이』, 연작시집 『마음경』 등 다수.

수상: 현대문학상, 불교문학상, 녹원문학상, 한국시협상, 천상병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노작문학상 등 다수.

시 당선작/대상

해송다방은 펄떡거리는 그리움을 판다

김 성 배 (경기도 부천시)

한 권의 해금강을 마저 읽지 못한 채

장승포시외버스터미널에 나왔다

세꼬시 바람을 씹다가

잇몸이 아린 바다

괭이갈매기 울음에 발목이 잡혀

책갈피로 끼어둔

해송다방 박 양의 애달픈 눈웃음을 꺼내본다

재만 남는 십구공탄처럼

오늘 하루 더 뜨겁게 쉬어갈까

동백꽃 홑이불을 덮은 수평선을 걷을 수 없다

성에로 낀 그리움이

호호 입김 불며 나온 파도 소리의 배웅에

그냥 눌러 살아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한 생 비려 보는 것도……

당선소감

김 성 배(경기도 부천시)

껌딱지 윤 선배랑 연탄불고기로 마음에 점을 찍다(點心)가 에메랄드빛 거제와 통화를 나눴다. 연탄가스에 취한 듯 파도 소리가 밀려오더니 내 마음에 쐐기문자가 새겨졌다. 거제문인협회에서 날아온 괭이갈매기 깃털처럼 무거운 수상 소식에 흐린 하늘이 쨍, 하고 깨어지듯 맑아졌다. 컴퓨터가 고장 나 불쌍한 핸드폰에 모바일 한글을 깔아 불쌍한 시를 썼다. 우스갯말로 생계형 시인인데 좋은 일이 생기지 않나 걱정을 걱정했는데 갈곶 해금강 물결에 귀 환히 씻은 근심은 잘 흘러갔는지. 이제 마음속으로 난 거제도 갈곶에서 갈 곳은 어딘지, 머물 곳은 어딘지를 찾아 조금은 덜 헤맬 수 있을까. 내 방에서 방을 찾던 모난 서글픔은 언제쯤 제자리를 지킨 몽돌처럼 둥글어져 갈 수 있을까. 운명처럼 만난 시를 한동안 삶의 고단함으로 별거도 해보았지만, 어머니 맘처럼 기다려 준 고마움에 대한 심술이랄까 다시 만나 곁에 두고는 잘 괴롭혀왔다. 그 괴롭힘은 결국 자신의 아픔이 되어 늦은 밤 강소주로 뒹굴어왔다. 고맙고도 독하게 미운 내 사랑이여, 시여. 이제 가난한 너와 헤어지진 않겠다. 어차피 끊어질 수 없는 서로의 운명을 잘 알기에 거기에 대한 방점을 찍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부족함을 알기에 모자란 작품을 어여쁘게 봐 주신 심사위원께 오히려 공을 돌린다. 늘 이제 시작이다. 그러기에 힘들지만 나는 지금에 있다. 그리움이 되어버린 돌아가신 누나이자 선배 시인이던 김선향,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둘째 형이 사무친다. 내겐 삶이 도전이고 부족함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언제쯤 나는 내가 모른다(無知)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고맙다. 또다시 나의 모자람을 알게 해준 푸른 거제여.

시 당선작/금상

지심도의 덩굴손

장 병 길(경북 구미시 구아읍)

지심도의 나팔꽃 덩굴손
수면을 긁으며 몰려오는 바닷바람에 휘청한다
춤사위라 말하는 것은 지구 끝에서 행하는 언어의 유희다
핏물처럼 밑도 끝도 없이 묻어나는
그 무엇
며칠 동안 손안에 공기만 쥐었다 폈다 한다
파도처럼 멈추지 않는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부러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그 허공 속에
그 무엇이 있는 것인지
이 순간 애타게 잡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소나무숲을 뚫고
오동나무 붉은 꽃에 앉아 앞바다 너머 거제도를 바라보며
빠져나오지 못할 블랙홀 같은 허공에 갇혀
두 팔을 허우적거린다
그것은
뭍이 되고 싶은 꿈일까 뭍에서 떨어져 나온 아픔일까
덩굴손이 뻗는 허공에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투명한 것들만이 자욱하다
몇 날 며칠
쉬지도 자지도 않고 마른 눈물을 삼키면서
원하는 곳까지 갈 수 있을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 열망을 끝까지 가지고 있다면
지심도의 해무가 걷힌다
쉿 예단은 금물이다
지켜보자

당선소감

장 병 길(경북 구미시)

정유년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이때결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뜻밖의 소식인제2회 블루시티거제문학상을 받게 되어 개인적으로 크나큰 영광입니다몇 해 전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섬 외도와 몽돌해변의 노을을 가슴에 담아 거가대교를 넘어온 여행이 가슴에 새록새록 살아납니다그 기분으로 쓴 시가 당선이 된 것 같아영원히 잊지 못할 가슴 벅찬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습니다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저에게 이 계기는 아마 훌륭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습니다거듭 감사드리며거제문인협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소설 심사평(윤후명)

애향심의 승화

예심을 거쳐 넘어온 작품(소설)은 3편이었다. 비록 편수는 적었지만 수준은 만만치 않아 우리 문학의 앞날에 대해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3편을 놓고 저울질하면서 어느 쪽을 택할지 고심했다.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는 경우는 그리 흔한 경험이 1983년에 나는 대우조선의 협찬을 받아 거제에 머물며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때는 문학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팔색조>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내 문학적 약력에 보탰다. 35년 전의 그 날들을 뒤돌아보며 이번 심사를 하는 심정은 자못 감격스럽기도 했다.

세 작품 중 <사진 속의 새>는 특별히 그 옛 일들을 생각나게 했다. 새를 ‘생포’하기 위한 이야기는 환상적이기도 했는데, 문장의 묘미 또한 미학적이었다. <몽돌 위에 눕다>는 거제 학동의 몽돌 해안을 배경으로 거제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린 작품이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향토를 작품에 등장시키는 시도는 우리 문학에 권장되어야 할 덕목이다. <당신의 시간> 역시 거제 외도를 무대로 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이 많다는 것은 지역 문학상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살린, 의미 있는 문학행사임을 보여준다 하겠다. 세 작품 모두 문학적인 장점을 잘 살린 작품들이었다.

어느 것을 택해도 손상이 없었는데, 심사숙고 끝에 김태연의 <사진 속의 새>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고심한 흔적이 조금은 더 승화되었다고 읽혔다. 그리고 문장의 영롱함이라고 할까....문학의 향기가 짙었다. 향토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 눈에 두드러져 우리 문학 전반에 새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사진 속의 새> 작가의 빛나는 앞날을 기대한다.

본심 심사위원: 윤후명

소설가/시인

<경향신문 신춘문예>(1967) 시당선, <한국일보 신춘문예>(1979) 소설 당선(1979)

시집 <명궁> <홀로 상처 위에 등불을 켜다> <쇠물닭의 책> 등

소설집 <강릉><둔황의 사랑><협궤열차> 등 전집12권,

산문집 <꽃><나에게 꽃을 다오 시간이 흘린 눈물을 다오> 등 다수

녹원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이수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만해 ‘님’ 작품상(시) 등 수상

국민대 겸임교수와 체코 브르노 콘서바토리 교수 역임,

현)’문학비단길‘’문학나무‘ 고문, 강릉문화작은도서관명예관장

소설 당선작(금상)

사진 속의 새

김 태 연(대전시 유성구)

멀리 통영타워 휴게소가 보였다. 두 시간 반을 운전하고 오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았다. 휴게소를 들를지 그냥 지나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이에 신거제대교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내 뒤차가 슬쩍 옆 차선으로 가더니 내 차 앞을 순식간에 끼어들었다. 이런 일이 살면서 한두 번도 아니었는데 당할 때마다 적응이 안됐다. 일부러 천천히 간다고 생각했었나보다. 그사이에 내 차는 휴게소를 지나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목적지에 빨리 가기로 했다.

거제 시청에는 이미 많은 차들이 주차장에 들어 서 있었다. 천천히 빈 곳을 찾아 돌고 있을 때 차 한 대가 빠져나갔다. 다른 차가 주차할까봐 재빨리 차머리를 들이밀었다. 저 쪽에서 오던 차가 머쓱해져 방향을 바꾸는 것이 사이드미러로 보였다. 차를 주차하고 나니 허기짐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아침 일찍부터 준비한 도시락을 갖고 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수고로움이 잔뜩 묻어 있는 도시락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될 거 같아서였다. 시청 건너편에는 도로를 따라 여러 개의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한우 ,복어, 멸치쌈밥 등을 파는 음식점을 지나 왕보리밥이라고 쓴 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1시가 훌쩍 넘어서인지 식당은 한산했다. 혼자 앉아도 덜 부담스러운 2인용 탁자 쪽으로 가서 지친 발걸음을 멈췄다. 식당 이름에서 느껴지는 대표 메뉴인 보리밥 대신에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두루치기도 먹고 싶었지만 가격대가 만만치 않았다. 먼저 밑반찬이 나오고 된장찌개와 공기밥이 연달아 나왔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뭘 먹어도 맛있을 만큼 배가 고팠다. 다행히 음식들이 입에 맞아 탁자 위 대부분의 음식을 먹어 치웠다. 물을 더 따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는 동안 식당주인은 슬쩍 내 모습을 보더니 낡은 운동화에서 잠깐 시선이 머문 뒤 관심을 거뒀다. 식당을 나와서 내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이라도 분리수거함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닳아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시청 쪽으로 걸어갔다.

시청 강당 안으로 들어 가 보니 빈자리가 드물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나는 뒤로 가는 것보다 앞쪽에서 서서 듣는 것을 택했다. 대다수가 중년 남자들이었고 간혹 연세가 지긋한 노인과 20대의 젊은이들, 나이 든 여자들도 보였다. 웅성거리는 소음은 안경을 쓰고 마른 몸매에 흰 셔츠를 입은 남자의 등장으로 잠잠해졌다.

“여러분, 여기까지 오셔서 감사합니다. 공지한 바와 같이 새의 서식지를 알려 주신 분에게 100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사람들을 한 번 쭉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만약 새를 생포 하신 분에게는 1억원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저기서 감탄과 탄식이 섞인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앞줄에 앉은 50대 남자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새를 잡으려다 새를 죽이면 상금을 받을 수 있어요?”

안경을 쓴 남자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몸을 돌려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자연사 박물관의 박제가 되는 방법 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상금을 드릴 수 있을지는 차후에 공지하겠습니다. 상처를 입혀도 되니 살아 있는 상태로 잡아서 갖고 오셔야 됩니다. 또 질문 있으십니까?”

그 후 어디로 연락해야 되는지 증거 사진이 필요한지 등등의 질문이 이어지고 나서 설명회가 마무리 되었다. 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강당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생포라? 흔적을 찾기도 어려운데 그게 가능할까?”

“어쨌든 큰 상금이 걸려 있으니 열심히 해보세.”

친구로 보이는 두 남자가 나누는 대화가 내 귀에 들려왔다.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두 남자는 재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도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서 내 차를 찾기는 쉬웠다. 19년을 타고 다닌 흔적이 묻어 있는 앞 범퍼가 멀리서도 보였다. 차를 타고 막상 출발하려니 마음이 심란했다.

나는 군대를 제대하고 이일 저일 하다 화장품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취직을 했었다. 내가 한 작업은 컨베이어 벨트에 용기를 세우는 일 이었다. 용기가 제대로 세워 져야 화장품 내용물이 잘 담길 수 있었다. 한 눈을 팔면 작업반장의 쇳소리가 여지없이 날아들었다. 물속의 기름처럼 겉돌다가 그 곳을 그만 두었다.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떼버릴 수 있지만 어머니의 걱정담긴 시선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몸이 힘들더라도 열심히 하면 돈이 될 거 같아 택배 일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물건을 받아다가 택배를 받는 집에 일일이 문자하고 답장이 오면 집 앞으로 가거나 경비실에 맡겼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때가 다반사고 있는 것이 예외였다. 기껏 문 앞에 가서 벨을 눌러도 물건을 밖에 놓고 가라는 목소리가 인터폰에서 들렸다. 세상이 험난해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입맛은 씁쓸했다. 어떤 아파트는 건물 앞까지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이럴 때는 입구 쪽 도로에 택배차를 세우고 손수레에 물건을 싣고 가야 했다. 더 심한 곳은 출입카드를 발급받아야만 하는 아파트였다. 택배 한 건당 600원이 내 몫인데 한 달마다 만원씩 경비실에 낼 때는 손이 떨렸다. 8년 동안 이 일을 하면 이골이 날 때도 됐는데 몸은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더위가 한풀 꺾여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해진 9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택배를 시켜 안면이 익은 최씨 영감이 잠깐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내 소매를 끌었다. 영감은 물건을 가져다 줄 때마다 내 손에 음료수병을 쥐어 주었다. 날씨가 더운 날에는 무척 그가 고마웠다. 나는 흘낏 시계를 봤다. 잠깐은 괜찮을 거 같아 집으로 들어갔다. 택배 물건들이 고가의 상품들이라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보니 입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한 실내 장식과 여기 저기 걸려 있는 그림들과 거실에서 키우기 어려운 식물들까지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했다. 영감은 손수 녹차를 걸러 내 잔에 따라 주었다.

“내가 자네를 들어오라 한 이유는 이것 때문일세.”

영감은 주머니에서 사진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은 산 위에서 두 사내가 밝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내가 폼을 잡고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이리저리 사진을 봐도 도무지 이 영감이 왜 나에게 이것을 보라 했는지 알지 못했다. 영감은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손으로 사진 한 곳을 가리켰다.

“이것이 뭐로 보이나?”

나는 몸을 기울여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사진 속에는 두 사람 뒤로 날아가고 있는 물체가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새처럼 보였는데 분명 새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새 같은데 날개 부분이 비행접시처럼 생겼네요.”

내 말에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사진도 손으로 짚었다. 영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좀 더 희미한 모습의 그것이 있었다.

“이 사진은 저 사진과 장소도 날짜도 다른 거네.”

영감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거제에 저 새가 있다는 말을 젊었을 때부터 들었었지. 아주 신출귀몰해서 눈앞에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진다고 하더군. 심지어 사람의 눈동자를 가졌다는 소문도 있었어.”

믿기가 힘든 말을 쏟아 낸 영감은 목이 마른지 녹차를 마셨다.

‘그래서 이 사진들을 왜 보라고 하지?’

영감은 내 속마음을 눈치 챘는지 말을 이었다.

“자네가 이 새를 찾아주게. 내가 자네 나이라면 직접 찾으러 다녔을 걸세.”

“새를 찾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는 그것이 정말로 궁금했었다. 영감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면서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벽면의 반을 차지한 그림은 섬을 그린 멋진 그림이었다.

“새를 저 섬에 풀어 주실 건가요? 날아갈 수도 있잖아요?”

내 질문에 영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저긴 한 번 새가 들어가면 나올 수 없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림을 보았다. 영감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까지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규모가 거대한데 새를 어떻게 가두실 겁니까?”

나의 연이은 질문에 영감은 막힘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가 새만 찾아 준다면 새의 부척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놓을 걸세. 새는 43000평이 넘는 섬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지. 하지만 섬 밖을 날아서 나갈 순 없게 해 놓았어. 이걸 보게나. 섬 전체에 설치해 놓았지.”

영감이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것은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금속봉 이었다.

“여기 버튼을 누르면 자외선이 나오지.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동물을 기를 때 자외선램프를 사용하는데 잘못 사용하면 동물들에게 치명적이라네.”

나는 금속봉의 버튼을 눌렀다. 푸르스름한 빛이 칼처럼 날카로웠다. 영감이 건네 준 종이에는 자외선으로 인한 부작용이 적혀 있었다. 화상, 스트레스 증가, 깃털질환 등등 가장 눈에 띤 것은 시력감퇴, 시력상실이었다.

“이것을 가지면 새를 포획할 수 있을 거야. 나는 40년 넘게 이 새를 찾으러 다녔네. 소문에 의하면 어떤 남자가 등산을 하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에 떨어졌는데 멀쩡히 살아났다고 하더군. 그 남자는 새가 자기를 구해 줬다고 했지만 사람들이 믿지를 않았어. 그러다가 한 명씩 한 명씩 본 사람이 늘고 최근에 사진으로 확인이 됐지. 내 나이 80세가 넘었네. 죽기 전에 새를 보고 싶네. 이 늙은이의 소원일세.”

영감은 애처로운 표정을 띠며 말했다.

“영감님, 왜 저에게 이런 부탁을 하시나요? 다른 유능한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그동안 자네를 살펴보았네. 무척 성실하더군. 시간도 잘 지키고 무거운 물건도 번쩍 들어 나르고, 계단도 두 개씩 오르더군. 요새는 호의를 베풀었을 때 입으로 고맙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 마음까지 고맙다는 사람은 드물어. 나는 자네가 정직한 젊은이라 믿고 싶네.”

영감의 말에 쑥스럽고 당황스러운 나는 고개를 숙였다.

“하루라도 빨리 출발해주게. 요새는 석양만 봐도 가슴이 아프다네. 내 생명이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니까.”

30대 중반인 나는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홧김에 죽어야지 하고 입 밖으로 내뱉지만 죽을 맘이 깨알만큼도 없고, 살날이 바닷가 모래알만큼 남아 있다고 여기며 살았다. 영감의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나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제가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서 영감님 부탁을 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허허, 착수금을 넉넉히 주겠네. 원하는 대로 일이 되면 번듯하게 사업할 수 있게 도와주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10평짜리 내 가게를 갖고 싶어 하는 걸 어떻게 알았지.’

주저하는 나에게 영감은 봉투를 내밀었다.

“거제 시청에서 새에 관한 설명회가 있네. 꼭 참석하게나. 내 전화번호도 봉투 안에 있으니 새의 흔적을 찾으면 바로 전화하게.”

나는 얼떨결에 봉투를 받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그 집을 나왔다. 봉투 안이 궁금했지만 택배물건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부지런히 움직였다.

집에 왔을 때는 밤 12시가 넘어 있었다. 거실에서 뜨개질을 하며 아들 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작은 죄책감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모자를 뜨시네요.”

“ 이제 오니? 밥은 먹었니?”

“네. 먹었어요”

매번 같은 질문과 대답을 우리 모자는 질리지도 않고 하고 있었다. ‘밥을 먹었니?’의 말은 많은 것을 포함했다. 오늘 하루는 밥 먹을 시간이 있었는지, 상사나 고객한테 싫은 소리를 들어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는지, 속이 더부룩해서 먹을 수 없었는지가 그 말에 들어가 있었다. 어머니는 집에 있을 때는 주로 뜨개질을 했다. 거의 다 짰다가 다시 풀었다. 그래서 완성된 것은 몇 개 안됐다. 하루는 뜨개질이 왜 좋은지 어머니께 물어봤다. ‘언제든지 잘못됐으면 고칠 수 있어서’ 어머니는 짧게 답했다.

“저 며칠 거제 다녀올게요.”

어머니는 뜨개실을 내려놓으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택배일은 그만 둔 거니?”

“다른 일이 있어 잠깐 쉬려고 해요.”

“알았다. 들어가 쉬어라.”

어머니는 다시 뜨개질을 하려고 머리를 숙였다. 등과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가뜩 작은 체구의 어머니가 더 작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도시철도 도우미라고 쓰여진 노란 조끼를 입고 지하철에서 일하셨다. 하루 3시간씩 한 달에 열 번 하면 손에 22만원이 들어왔다. 그 일도 경쟁이 치열해서 매번 하지는 못했다. 여러 번 하지 않는 것이 어떠냐고 말해도 어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번 일이 잘되면 노란 조끼를 수거함에 넣을 거라 다짐했었다.

나는 거제 시청에서 나와서 노자산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영감이 보여준 사진들 중에서 두 남자가 있던 곳이 노자산이었다. 학동 고개에서 시작된 노자산 산행은 이정표에 노자산이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사람들 가는 방향으로 따라 올라갔다. 길이 가팔라서 절로 땀이 흘렀다. 정상에 오르니 표석이 다 왔음을 증명하듯 서 있었다. 사람들이 표석에 딱 붙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안내문에는 노자산 이름의 유래와 팔색조 서식지가 이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찾는 새도 이곳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다도해가 보였다. 바다 위에 꽃처럼 놓여 있는 섬들이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하늘과 바다가 연한 푸른빛을 띠고 있고 자연스럽게 갖가지 모양을 한 섬들이 수놓아 있었다. 이곳의 경치는 내 처지를 망각할 만큼 좋았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감동이 수 만 배 상승했다. 바람, 햇빛, 실물이 주는 생동감이 사진에서는 결여되어 있었다. 해양사 방면으로는 산이 겹겹이 놓여 있었다. 앞쪽산은 녹색, 중간산은 푸른색, 뒤쪽산은 회색으로 보였다. 나는 그 곳을 떠나 전망대 쪽으로 내려 왔다. 정자 모양의 전망대에서 본 경치는 정상에서 본 것과 달랐다. 높이가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미묘한 차이였다. 전망대 계단을 내려오니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수고 하십니다. 지금 무슨 작업을 하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하던 일을 멈추고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케이블카 설치 작업 중입니다.”

“여기 케이블카가 생깁니까? 언제 완공 됩니까?”

그는 장갑을 벗어 바지에 뚝뚝 친 뒤 내 쪽으로 걸어 왔다.

“허리 편 김에 잠시 쉬어야겠어요. 이 곳 케이블카 사업은 2015년에 기공식까지 가졌다가 무산 됐어요. 그러던 것이 최근에 사업자가 나서서 재개 됐지요. 여기서 학동고개까지 거의 2킬로미터 거리가 돼요. 예상은 2년 잡았는데 더 걸리겠지요.”

“이렇게 산을 개발하면 환경 단체가 반대하지는 않았나요?”

나는 반대 여론이 있으리라 생각되어 그에게 물었다.

“물론 있었어요. 요새 조선업 불황으로 거제시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됐지요. 거제시가 강력하게 밀어 붙었어요. 매년 천만 명씩 관광객이 오면 2천억 대의 경제 효과가 있다고 설득 했어요. 이제 관광 사업으로 발을 돌린 겁니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산을 내려 왔다. 2년 뒤에는 10분이 안 걸리고도 학동고개에 도착하리라 생각되니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무수히 잘려나갈 나무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다음날은 또 다른 사진의 배경이 된 장승포항으로 갔었다. 8시 30분에 지심도로 가는 배를 탈 계획이었다. 장승포 터미널에 도착한 후 근처 매점에서 생수를 샀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배 모양의 거제문화예술회관이 눈에 들어왔다. 이 건물을 설계할 때도 바다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터미널에서 안내 방송을 했다. 심한 안개로 출항이 한 시간 정도 늦어진다는 내용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명랑한 성격의 관광객들은 선착장 맨 끝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선착장에서 바라 본 안개 낀 바다는 다른 모습이었다. 안개는 항구에서 가까운 섬 허리아래 부분을 완전히 감싸고 있어 섬이 바다 위에 떠 있는 착각을 일으켰다. 내 손에 사진기가 있었으면 저 광경을 분명 찍었을 거였다. 예정 시간 보다 한 시간 반이 지나서 나는 승선 할 수 있었다. 배는 물살을 가르며 20분을 달리더니 지심도에 도착했다.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옥색 빛의 인어상이 맨 먼저 보였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좁은 산길을 올라갔다. 새와 동백꽃 사진이 있는 푯말에는 포진지 가는 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심도가 일본의 해군 기지였던 시절에 남아 있는 흔적들이었다. 지심도는 동백섬이라 불릴 만큼 동백나무가 많았다. 지금은 꽃이 피는 시기가 아니라서 동백꽃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지심도를 한 바퀴 도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숲길을 걸을 때 새 소리가 나서 그 곳으로 가보면 연두색을 띤 동박새나 회갈색의 직박구리였다. 아침도 변변히 못 먹은 나는 시장기가 느껴져 음식점으로 갔다.

“혼자 오셨나요?”

주인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가 말을 걸었다.

“네. 이 집은 손님이 많군요.”

나는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며 답했다.

“3월에 국방부가 지심도를 거제에 반환했어요. 그것이 홍보 효과가 있는지 관광객이 늘었어요”

중년 남자는 다른 곳에서 부르자 그 쪽으로 갔다. 나는 천천히 식사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심도 휴게소에서 배를 기다리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름다운 지심도가 사람이라면 할 말이 너무나 많을 거 같았다. 배가 도착해서 나는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거제에 온지 열흘 째 되던 날 나는 회의가 들었다. 이 산 저 산, 이 섬 저 섬으로 뛰어 다니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휴대폰을 꺼내 최씨 영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넨가. 어떻게 됐나?”

영감이 반가워하는 것이 목소리에 묻어 있었다.

“영감님,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못 찾았어요. 이제 그만 돌아가려고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영감이 말을 이었다.

“자네가 정 그러하다면 할 수 없지. 하지만 그만 두지 않겠다면 거액의 돈을 주겠네. 생각해 보고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게.”

전화가 끊어지고 난 후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미련을 버리고 돌아서면 간단한데 눈앞의 금전이 목덜미를 잡고 있는 거 같았다. 영감은 착수금도 기대 이상으로 많이 주었다. 분명 자기 입으로 거액이라는 표현을 썼으니 얼마를 줄지 상상이 안 갔다. 나는 지도를 펼쳤다. 가본 곳에는 동그라미로 표시를 했었다. 동그라미 개수가 스무 개가 넘었다. 예전에 산도라지를 채집하는 남자를 취재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남자는 산도라지가 서식하기 좋은 곳을 귀신같이 알아냈다. 그는 지형을 살피고, 흙을 손으로 부셔보았다. 그가 찍은 곳에는 산도라지가 반드시 있었다. 나는 그 남자와 반대로 지금까지 엉뚱한 곳만 찾아 다녔다. 도대체 새가 살기 좋은 곳, 살만한 곳이 어딜까? 내 눈에 한 곳이 보였다. 나는 영감에게 문자를 보냈다.

도장포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외길이라서 한 번 정체되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전 9시에 배에 타려고 미리 그 곳으로 갔다. 내가 여길 택한 이유는 해금강이 가장 가까워서였다. 표를 끊고 시간이 남아 바람의 언덕 쪽으로 갔다. 바람의 언덕은 사유지라서 한 때 거제시와 송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잘 해결됐다고 들었다. 해상 산책로 맨 끝부분에 가서 바다를 보았다.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엉클어졌다. 나는 배 시간이 되어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배에 승선하고 난 후 선장이 배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나눠 주었다. 이 배가 외도까지 가는 배라서 다시 승선 할 때 다른 배를 탈까봐 주는 거라고 했다. 배는 해금강 쪽으로 날쌔게 달려 나갔다. 선장의 설명을 들으며 눈앞에 펼쳐진 기암괴석을 감상했다. 절묘한 형상을 한 바위에 그럴듯하게 이름을 붙인 것이 좋았다. 나는 한 곳 한 곳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선장이 십자동굴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오늘 파도가 높아 많이는 안으로 못 들어간다고 말했다. 배가 천천히 동굴로 진입했다. 거친 파도가 치자 어마어마한 바위가 배에 가까이 다가왔다. 선장은 배를 후진시켰다. 사람들은 몹시 아쉬워했다. 그 때 나는 바위틈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그 새를 보았다. 긴 목을 가진 그 새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 눈이 커졌다. ‘그래, 너 여기 있었구나.’ 그 다음에 선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 머리 속은 저 새를 어떻게 잡을 건가로 가득 찼었다.

새의 서식지를 알게 된 나는 이 사실을 영감에게 알릴 것인지 입을 다물 건지 결정을 해야 했다. 한참 생각한 후 나중에 알리기로 했다. 급한 성격의 영감이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와서 무슨 일을 할지 몰라 불안했었다. 나는 해금강으로 갈 배를 구하러 다녔다. 새의 서식지를 말하지 않을 입이 무거운 선장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직접 바위에 올라 갈 수 없어서 드론을 구입했다. 새를 둥지에서 나오게만 하면 금속봉을 쏠 생각이었다. 일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다. 이제 날씨만 도와주면 됐었다. 이틀이 지나자 섭외한 선장으로부터 배가 떠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와 보니 예상대로 파도가 조용했다. 나와 선장은 해금강으로 배를 몰았다. 점점 해금강이 다가 올수록 맥박이 빨라졌다. 배가 조용히 십자동굴로 들어갔다. 대낮인데도 주위가 어두웠다. 나는 가지고 온 드론을 꺼내 조정하기 시작했다. 드론의 날개가 기계음을 내더니 맹렬하게 돌았다. 드론을 공중으로 높이 올려 새의 둥지 쪽으로 이동시켰다. 드론은 원을 그리며 새의 주위를 돌았다. 드론의 위협에 새는 둥지에서 날아올랐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속봉의 버튼을 눌렀다. 빛이 새의 날개에 스치자 빛이 닿은 부분이 까맣게 변했다. 새는 균형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나는 선장에게 배를 빨리 움직이라고 소리쳤다. 거의 손에 들어 온 새를 놓칠까봐 마음이 다급했다. 새가 떨어진 곳에 배가 닿자마자 나는 배에서 뛰어내려 새에게 달려갔다. 새는 쓰러진 채로 날개를 퍼덕였다. 나는 더 이상 금속봉을 쏘지는 않았다. 온전한 상태로 생포해야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한 발짝씩 새에 접근 할수록 새가 자세히 보였다. 옷자락 같은 날개는 은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반짝이고, 두 눈은 올빼미처럼 앞을 보고 있었다. 나는 갖고 간 그물을 새에 덮어씌우려고 팔을 올렸다. 그 때 새가 머리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새의 큰 눈동자 속에 내 모습이 보였다. 돈에 혈안이 된 내 얼굴과 살기 가득한 내 손. 나의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으로는 빨리 새를 포획하고 싶은데 손가락조차 꿈쩍 할 수 없었다. 등에서는 땀이 흐르고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새는 서서히 날개를 펴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었다.

당선소감

김 태 연(대전시 유성구)

지도에서 거제의 모습이 새의 형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가슴에 거제는 살아 있는 새로 다가왔습니다.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거제의 자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생활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개발과 자연보존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부족함을 더 채워가라고 주시는 상으로 알고 진심을 담아 쓰겠습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새처럼 멋지게 도약하는 거제가 되길 기원합니다.

3.수필 심사평(고동주‧최원현)

본심에 오른 수필은 <바람과 돌과 숲> <노란 수선화가 가득한 바다> <비경의 해금강> <거제도 포로수용소 답사기> <동백꽃 피고 지고> <나는 포로수용소의 포로다> <조탁> <고향의 원형> <청마의 메아리> <몽돌과 공곶이> <해중성을 노래하다> <황홀경 그리고 이별> 등 12편이었다. 여기서 <동백꽃 피고 지고>와 <조탁> 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김두선의 <조탁>은 지나간 신문을 정리하다 생각 난 젊은 날의 한 장소 지심도라고도 하는 동백섬의 기억을 아주 감성적으로 정감 있게 그려내었다. ‘밤하늘이 주먹만 한 별들로 유채밭을 이루었다. 잡힐 듯해서 허공에 두 손을 뻗쳐보다가 어리석은 짓거리에 웃음이 났다. 그 틈을 비집고 섬이 내게 말했다.’ 이순의 나이에도 이런 감성이 살아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런 문장을 건져내는 힘도 대단하다.

박하성의 <동백꽃 피고지고>도 지심도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시작을‘아름다워서 슬픈 낙화’라고 했다. 작자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함일까 처음부터 궁금하게 만든다. 그런데 끌어당기면 다가올 것 같은 작은 섬 지심도, 바다는 거칠었지만 지심도는 가까워 왔다, 그리고 동백 숲 거기서 어머니를 본다.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은 어머니다.

작자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동백꽃처럼 뚝 떨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지심도는 그 어머니가 동백꽃으로 피어있는 섬이었다. 하지만 지심도와 어머니, 동백꽃과 어머니의 가심을 자연스럽게 대비 시키면서 그가 정작 하고자 하는 말은 독자에게 상상의 몫으로 남기고 있다. 그리고 작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사람들은 한 개의 섬이다’라고 해놓고 섬마다 아픈 역사가 있음을 어머니를 통하여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고 보면 그에게 지심도는 바로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정성과 희생이 동백꽃 붉은 마음의 단심으로 그리고 그 마음이 보듬어 키우고 마음을 빗어주는 어머니가 피고 지는 섬이 된다.

수필은 사유(思惟)가 의미화로 결정(結晶)을 이뤄내는 문학이다. 그게 수필의 맛이고 멋이다. 박하성의 <동백꽃 피고 지고> 작품은 이런 사유의 결정(結晶)이 결코 화려하지 않으나 아름답게, 거창하지 않으나 큰 의미로 빛나게 한다. 김두선의 <조탁(彫琢)> 작품 또한 주제의 의미화와 형상화가 돋보여, 전혀 이견 없이 두 작품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본심 심사위원: 고동주‧최원현(글)

고동주:

수필가, 경남신문 신춘문예(수필) 당선, 한국수필 천료. 한국수필가협회 수석부이사장 역임

한국수필문학상, 신아문학대상, 대한문학상, 수필문학상대상, 황의순문학상, 올해의 수필인상

수필집『파도에 실려온 이야기』,『하얀 침묵 푸른 미소』『사랑바라기』외 13권. 시집 2권

문학이론서『수필의 맛과 향기』외 다수

최원현:

수필가 · 문학평론가.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 한국수필작가회장(역임).

한국수필문학상 · 동포문학상대상 · 현대수필문학상 · 월간문학상 ‧ 조연현문학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날마다 좋은 날》《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등 15권.

《창작과 비평의 수필쓰기》등 평론집 2권.

중학교 교과서《국어1》《도덕2》고등학교 《국어1》《문학 상》 등 작품 수록.

수필 당선작(은상)

동백꽃 피고 지고

박 하 성(부산시 해운대구)

아름다워서 슬픈 낙화다. 오체투지, 통째로 툭 떨어지는 화려한 운구運柩, 저 스스로 꽃상여가 되는 마지막 길이다. 아니 마지막이 아니고 다시 태어나는 것일까. 붉은 꽃이 땅 위에 가득 핀다. 차마 밟고 지나갈 수 없는 붉은 융단이 깔린 동백숲 터널 길이다. 이 길에 어머니가 계신다.

끌어당기면 다가 올 것 같은 작은 섬 지심도只心島다. 섬 모양이 마음 심 자를 닮았다는데 섬의 마음은 무슨 색깔일까. 그곳에 가보면 알 수 있을까. 섬엔 숱한 시간들이, 바다의 증언들이 풍장風葬되어 있을 것이다. 섬으로 가는 배는 섬을 향해 이물을 돌리고 출항을 시작했다.

바다는 거칠었다.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교훈일 터이다. 배는 파도에 저항하거나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 파도에 순응하고 몸을 맡기되 지혜롭게 파도를 타고 넘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지심도가 가까워왔다. 수백 수천만 년을 저렇게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바람이 연출하는 파도에 배도 사람도 흔들리지만 섬은 요지부동으로 바다 한 가운데 결가부좌를 틀고 묵언수행 중이었다. 배에서 내려 잘 가꾸어진 산책로를 걷다가 동백숲 터널을 만난 것이다. 울창한 동백나무 숲이 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붉은 꽃들이 공중과 지상에 흔전만전 가득하다. 떨어져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한 동백꽃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가을로 접어들 무렵 어머니를 뵈었다. 옷장을 정리하다가 다른 사진 액자, 사진첩들과 함께 보관한 어머니 영정 사진을 보았다. 양쪽으로 곱게 가르마를 탄 어머니가 흑백사진 액자에 단아한 모습으로 계셨다.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던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다.

우리가 살던 섬에도 동백나무가 많았다. 늘 배가 고팠던 아이들은 동백꽃이 피면 가까운 산에 올랐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동백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었다. 동백꽃은 벌, 나비가 아닌 동박새가 수정하는 조매화鳥媒花라서 꿀이 많았다.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꽃이 지고 동백이 열리면 열매를 따러 다니기도 했다. 동백이 마르면 두꺼운 겉껍질이 벌어진다. 겉껍질 속에 밤톨 같은 열매가 들어있다. 그 열매의 껍질을 제거한 속알맹이를 대충 갈아 삼베주머니에 싸서 통나무를 깎아 만든 기름틀에 넣는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기름틀의 한쪽 끝에 무거운 맷돌이나 돌을 얹어서 동백기름을 짠다. 이 기름은 주로 머리에 바르거나 요리에 사용한다. 청년들은 동백나무를 잘라 팽이를 만들기도 했다.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동백꽃처럼 툭 떨어지셨다. 시골집에서 혼자 지내시다가 몹시 추운 겨울날 마당에 쓰러지신 것이었다. 동네 사람이 발견했을 땐 이미 숨을 거두신 뒤였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사뭇 동백꽃처럼 지셨을까. 사남매의 작별 인사도 듣지 않고 그 먼 길을 홀로 가뭇없이 떠나셨을까.

육지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아버지만 믿고 섬까지 들어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한 곳이었다. 왜소한 체구로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비탈밭에서 보리와 고구마 농사를 짓는 고된 삶이었다. 처음 접해보는 힘든 일들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 개의 섬이다. 사회라는 것도 섬과 섬이 연결된 것이지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도 하나의 섬이었을 것이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속에서 당신이 섬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속내는 단단한 섬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동백꽃으로 피어 계신다. 섬에서 섬으로 살다가 동백꽃처럼 문득 툭 떨어진 어머니가 섬에 누워 계신다. 신산한 삶을 살다 간 이 땅의 어머니들이 함께 피어 계신다. 매서운 추위와 세찬 바닷바람도 이겨내고 기어이 꽃망울을 터뜨린 아름다운 어머니들이 붉게 피어 계신다. 나는 떨어진 동백꽃을 한 송이라도 밟을까봐 조심조심 걷는다.

섬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포 진지, 탄약고,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 게양대, 탐조등 보관시설, 일제 강점기에 설치한 군사 유적들이다. 지금은 그 게양대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지만 자칫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뻔했던 섬으로선 잊지 못할 기억일 것이다. 아름다운 모습 뒤에 감춰진 아픈 사연, 꽃이 시들어 추해지기 전에 미리 송이째 떨어지는 동백꽃을 닮았다.

‘그대 발길 돌리는 곳’에 이른다.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길이다. 돌아서서 걸어 온 길을 되짚어 가는 것, 우리 삶엔 없는 길이다. 계절은 순환하고 동백꽃은 해마다 피겠지만, 순환하지 않는 인생은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질 뿐이다. 그러기에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어머니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이젠 내가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업어드리고 싶다. 용서를 빌 일도 많고, 기쁘게 해드릴 일도 많이 만들고 싶다.

이제 그만 발길을 되돌리라는 듯 벼랑 끝에 부는 바람이 세차다. 거센 풍파 속에서도 섬은 웅숭깊은 내력을 차곡차곡 간직하고, 무수한 단심丹心을 피우고 있다. 꽃마다 깃든 고운 사연을 구름이 읽는다. 바람은 동박새와 직박구리 노래 소리를 물고 바다를 건넌다.

발길을 돌린다. 울창한 대숲이 바람을 빗고 있다. 마음 심 자를 닮은 섬이 참빗으로 마음을 정성스럽게 빗고 있다. 향기로운 동백기름을 바르고 어머니가 빗던 참빗이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정성과 희생이 바로 섬의 붉은 마음, 단심이 아니겠는가. 제 안에 있는 것들을 보듬어 키우는 섬, 동백꽃 피고 질 때마다 곱게 마음을 빗어주는 아름다운 섬 지심도에서 내 어머니가 피고 지신다.

당선소감

박 하 성(부산시 해운대구)

블루시티 거제문학상이, 시린 삶을 동백꽃처럼 사시다 동백꽃으로 떨어지신 어머니를 추억하며 눈물 흘리게 하고, 내가 만든 포로수용소에 스스로 갇혀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취업도 결혼도, 삶의 과정이 늘 늦깎이였고 아직도 철이 덜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봄·여름·가을 좋은 계절 다 보내고 겨울에야 피는 동백꽃을 닮았다곤 할 수 없겠지요.

나만 먹는 밥이라면 대충 지어도 되겠지만, 타인들도 맛을 보는 ‘글밥’을 짓는 것이 부끄럽고 걱정스러우며 떨립니다.

설익기도 할 것이고, 태울 때도 있을 테지만, 부족한 글 뽑아주심에 힘을 내어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필 당선작(은상)

조탁(彫琢)

김 두 선(부산시 수영구)

먼지 덮인 기억을 물고 그 섬이 내 안에서 일어선다. 잊혀진 임을 마주하듯 전율이 인다. 사십 여 년... 까마득히 잊고 살았건만 셀카 봉으로 막 찍어낸 사진처럼 그날들이 선연해진다.

지나간 신문을 정리 중이었다. 우연히 읽게 된 ‘섬 탐방’ 시리즈. 기억이 나를 그곳으로 소환했다. 궁금함이 꼬리를 문다. 동백나무 고샅길은 그대로일까? 마을을 안내하던 동네 어귀 목비는 여전히 그 곳을 지키고 있을까. 닷새간 머물렀던 그 민박집은, 산 위의 황량한 버덩은... 나는, 나의 젊은 어느 날의 아련함에 젖어 전신이 물긋해졌다.

이십 대의 젊은 날, 내 저항의 방식은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반복되는 일상과 이름도 없는 희망을 거절하며 나름 살아내기 위한 내 삶의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순간 수면 위로 떠올라 입질하는 물고기처럼.

팔월의 어느 하오. 내려쬐는 뙤약볕이 내 목덜미 뒤로 땀을 게워내고 있었다. 발걸음이 제2 연안부두로 향했다. 매표소에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꽉 차 있었고 뱃고동은 세상을 바꿀 기세로 울어댔다.

배가 출항하자, 나는 군데군데 무리지어 있는 캠핑 족들 사이를 비집고 뱃머리 쪽으로 나아갔다. 목을 길게 빼고 내려다본 뱃머리 아래쪽에서 흰 머리채를 두 갈래로 풀어헤친 물살이 성급히 앞서 달리고 있었다. 거가대교가 놓여 빠르고 편리한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엔 파도를 헤치며 두세 시간 남짓 거제도로 가는 바닷길이 낭만과 명상을 누릴 수 있는 실크로드가 아니었을까.

뱃전에서의 긴급정보 입수. ‘장승포에서 내려 동백섬 가는 배를 갈아탄다.’는 이야기를 귀동냥했다.(동백섬이 ‘지심도’라는 것은 훨씬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 무리에 끼어 행동을 함께 했다. 장승포 선착장에서 도선을 타고 이십 여 분. 포구에서 바라본 그 섬은 빽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진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배에서 내렸다. 인가를 찾아가는 고샅길 양쪽에는 동백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몇 차례 오르내리니 송이버섯처럼 지붕 낮은 집 몇 채가 보였다. 방 한 칸을 빌려 짐을 푸는 동안, 일흔이 훨씬 넘어 보이는 민박집 주인장은 혼자 온 객이 못 미더운 듯, 헛기침을 하며 두세 번 둘러보고 갔다. 마당에서 모깃불 태우는 냄새가 매캐하게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머무는 동안, 나는 하릴없이 낚시 구경을 즐기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섬에서 가장 봉긋한 곳에 올라 버덩에서 기타를 치며 지냈다. 풀 섶을 요 삼아 좌우로 몸을 눕히기만 하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끝자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섬은 몸통만 남은 게처럼 엎드려 가슴 속에 외로움을 숨기고 있었다. 이 지루하고 곤고한 삶의 끝은 어디쯤일까.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치유되지 않은 나의 고질병이 그곳까지 끈질기게 따라와 얼굴을 드러냈다.

어릴 때 나는 명분이 없는 서열로 자랐다. 장남도 장녀도 아니고 막내도 아닌, 2남2녀 중 셋째. 거기에다 외모마저 마뜩찮았다. 어머님의 자식 사랑도 내게 올 한 자락이 늘 부족했다. 술과 여자와 노름으로 세월을 낚는 아버지 대신 억척스레 살아내야 하는 어머니에게 셋째는 덤으로 묻어가는 자식이었을까. 아무튼 그 셋째여서 받는 무관심과 결핍된 애정 탓에 나는 언제나 목말라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원한 것도 아니며 내가 해결할 수도 없는 숙환 같은 것이었건만 나는 이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 갖은 힘을 다했다.

튀어야 산다. 결국 이것이 나를 넘어서기 위해 찾은 해결책이었다. 성장기에서부터 이성에 관심을 갖는 나이를 거치는 동안, 나는 이 원칙을 벗어나지 않았고 나름 그 결과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남과는 다른 특이함 이면에 생겨나는 외로움은 자꾸만 커져갔다.

인간이 흙으로 빚은 신의 창조물이라면 그 영혼은 질그릇 속에 담긴 보배와도 같다. 하지만 이 보배에는 관심이 없고 대부분 질그릇에만 집중하는 까닭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형의 변화를 추구하고 겹겹이 광택을 덧칠하곤 한다. 누가 이 두꺼워진 질그릇 속의 보배를 볼 수 있는가.

버덩에서의 나흘 째, 그 섬이 내 인생을 조탁하며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바라본 외연을 감연히 거부했다. 그리고 날마다 어제를 청산하고 분진을 털며 몸통만으로 버텨 수동으로 살아온 그 능숙함으로, 오늘을 위해 단장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오랜 세월 거센 비바람에 숱한 생채기가 났겠지. 하지만 섬은 어떤 경우에도 원망하거나 집착하지 않았고, 조급하여 외면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때마다 생긴 마음속 무덤 하나를 육중한 무게로 불려, 지층을 누르며 끊임없는 화해와 인내 속에서 헛헛한 세월을 버텼으리라. 문명의 시대에 살면서도 문명에 휘둘리지 않고 사는 법을 익혀 기상 더욱 푸르른 섬!

가슴이 먹먹해질 즈음, 나는 이상과 현실과의 간극, 나와 타인과의 관계망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지레 금지선을 긋지 않았는지, 옥죄어 거머쥐지 않았는지... 저 멀리 노을을 이고 있는 저녁바다가 부드럽고도 엄중한 언어로 나를 위무했다.

“네 가슴에 바다를 채워라. 물이 얕으면 암초를 피할 수 없다.”

그날 밤, 떠날 채비를 한 채 가방을 베고 누웠다. 빗살처럼 가지런히 생 속을 드러낸 천장의 통나무대가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킨 적막함이 방안을 채우고, 시끌벅적한 도시의 풍경도, 바쁘게 내달리는 자동차 소리도, 다시는 보고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며 설핏 잠이 들었다.

어둑새벽 이전에 눈이 뜨여 마당에 내려섰다. 빈 평상에 앉아 올려다본 밤하늘이 주먹만 한 별들로 유채 밭을 이루었다. 잡힐 듯해서 허공에 두 손을 뻗쳐보다가 어리석은 짓거리에 웃음이 났다. 그 틈을 비집고 섬이 내게 말했다.

“네 가슴에 바다를 채워라. 물이 얕으면 암초를 피할 수 없다.”

그 섬과의 인연은 습관처럼 도지던 방랑벽을 차츰 가시게 했고, 나는 축축이 젖은 일상을 햇살 아래 펴놓아 말리기를 부지런히 했다. 나를 버티게 하고 여물게 한 곳. 지심도는 나를 혼자 설 수 있게 한 치유의 땅이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 내 집을, 익숙한 도시를 탈출하는 것. 그리하여 돌아올 것을 염려하지 않고 무작정 나서는 것. 이것은 지금도 현대인이 그리며 앓는 열병 같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낯선 땅에 발을 내딛고 그곳이 주는 언어를 들을 수 있는 것. 이것은 행동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보상이다.

다시금 그곳을 찾는다면 이순의 나이까지 건강하게 잘 이른 내게 건네줄, 그 섬의 한 마디가 궁금하다.

당선 소감

김 두 선(부산시 수영구)

‘결과를 기다리는 일은 보이지 않게 등 뒤로 멀리 던져라.’

늘 생각하듯이, 그렇게 등 뒤로 던진 채 잊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예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기댓값은 기쁨이 몇 배나 더했다.

입상 소식을 전해 받았을 때 누구에게 먼저 감사해야 하나?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읊는 멘트가 먼저 떠올랐고, 감정적 미성숙에 노출된 사람처럼 가슴에서는 엔진 소리가 마구 났다.

조충소기를 무기삼아 나는 한평생 잡글을 제법 대필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 이름으로 된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수필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연히 이번 수상은 내 이름으로 도전한 첫 꿈을 이룬 셈이다.

글감이 되어준 ‘거제도’가 고맙다. 만약 기억 속에만 잠자고 있었다면 편협적인 낭만으로 우수수 일어섰다가 그저 스러지고 말았을 날들... 순간을 글로 묶어둔다는 것은 재가 된 기억을 뭉개어 형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며, 미완성된 감정을 완성으로 이끌어내는 ‘생각놀림’이었다. 그리고 이 평범한 날들이 문학이 되는 순간, 스스로 헛되이 살지 않았다 칭찬할 수 있는 소심한 빛줄기로 내게 쏟아졌다.

훌륭한 작가들이 숱하게 있음에도 내게 기회가 온 것은 분명 행운이다. 죄송함과 아울러, 행사를 주최한 기관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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