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마문학축제에 다녀와서

청마 묘지 이장 행사에 가보고는 청마문학제엔 처음 갔습니다.

불현듯 그때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이영호 시인의 노력으로 청마의 묘가 양산에서 1990년 초에야 둔덕으로 이장(移葬)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거제시의 협력도 있었겠지요. 그로부터 20여 년. 확연히 달라진 거제시의 문화지수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둔덕면도 이번에 찬찬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거제시 안에서 이런 지형 조건을 갖춘 촌락은 없을 것입니다. 북동서로 산에 둘러싸여 남쪽만 트인 복 받은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환경조건으로 고려 의종이 이곳까지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풍수를 모르는 필자에게도 눈에 띄는 지형 조건입니다. 남쪽만 트여 바다가 보이는 정감이 가는 촌락. 동랑과 청마 두 위대한 예술인(희곡‧문학)이 탄생한 마을.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묘지 이장이 기폭제가 되어 거제시는 문화예술이 한층 도드라지는 계기가 되었지요. 각종 문화예술단체의 태동으로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거제지부도 생겼지요.

이번 행사에서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은 거제시의 관심사였습니다. 서일준 부시장이나 이권우 문화공보과장의 문화행정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 달랐습니다. 시청 공무원이 직접 언급하는 얘기를 필자는 처음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장도 그렇고 시청의 종전 문화공보과 간부들의 문화지수를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생경감(生硬感)까지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문화토양이 변했다는 증좌(證左)이겠지요. 28년 전 거경문학을 창간할 때입니다. 윤병철(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거제하면 정치였는데 이제는 문학에 대한 얘기도 되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처럼 거제시가 외부에 비친 것은 문화외곽지대였습니다. 故김영삼 전 대통령의 강한 정치 영향이었겠지요.

사실 민선시장들의 문화지수가 여러번 논의되었으나 그들에겐 관심 밖의 사안들이었지요. 기초의원들의 문화 청맹과니로 보이는 인식이 더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날도 어느 의원은 내빈 축사만 하고 자리를 뜨더군요. 어느 군에서는 의제를 심의하고 통과시키는데 개인의 이기(利己)를 우선으로 업무를 처리한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거제시 의회라고 다를까요.

‘동랑청마기념사업회’라는 명칭이 눈에 가시가 되어 프로파간다의 기질을 어김 없이 발휘한 모 시의원의 작태는 무엇으로 읽어야 합니까. 얕은 지식으로 한쪽만 쳐다보는 이 행태에 대해 시민들이나 문화계 인사들은 공허함만 느낄 것입니다. 한쪽만 쳐다 볼 수밖에 없는 게 프로파간다들의 심리상태라고 하더군요. 중앙 정치무대에만 이 유형이 있는 줄 알았는데 기초 의회에도 어느새 침투했네요.‘주민을 대표해서 각 기초단체의 중요사항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게 기초의회 아닌가요. 바꾸어 말하면 시의 발전을 위한 기초의회란 것일 겁니다.

이럼에도 이념놀이라 한다면 그 자체가 발전 저해요소가 되겠지요. 스스로를 성찰하고 시민을 위하고 시의 발전을 위한 자세와 품위를 가지는 게 시의원의 올바른 자세 아닌가요. 시청 공무원을 회의 석상에 불러내어 힐난하는 작태도 지양되었으면 합니다. 항간(港間)에 지역의 새로운 권력자란 말이 회자(膾炙)되고 있다고 합니다. 본말이 전도되는 일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거제시의 가장 큰 문화자산인 ‘동랑청마기념사업회’ 명칭이 변색된 것을 보았습니다. 변색의 원인 제공자가 시의원이더군요. 동랑이 친일했다고 야단법석을 떨었기 때문이랍니다. 그의 친일 행적은 그의 희곡작품 ‘북진대’가 그 전거(典據)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동랑의 친일을 외면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는 새거제신문 칼럼(2015년 5월 15일 ‘동랑을 아시는지요’)을 참고 바랍니다.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 한쪽만 보지말자는 것입니다. 절묘한 말이 있습니다. 흑묘백묘(黑猫白猫)론입니다. 친일이란 족쇄에 동랑을 가둔다고 시대의 흐름이 역류하는 것은 아닙니다. E.H.카는 “역사는 오늘”이라고 했습니다.

동랑이 우리나라 희곡사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네요. 유민영 교수는 "동랑은 한류(韓流) 기반을 다져놓은 선각자이자 다빈치 같은 르네상스인이었다"고 했습니다. 극작가, 연출가, 연극 이론가, 연극 교육자, 극장 건축가, 예술대학 설립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가 인생 후반기에 가장 역점을 둔 분야가 교육과 극장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노력으로 동국대학 연극학과가 설립되었습니다.그는 우리 것을 바탕으로 서양의 기술을 들여야 한다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를 주창했습니다. 사랑패, 탈춤, 꼭두각시 같은 우리 전통이 희미해질 무렵에 그것을 재발견하여 근대극에 접목시킨 것입니다. 그가 록펠러재단 원조를 바탕으로 사재를 들여 원형무대를 설치했던 남산드라센터(서울예술대학)는 우리나라 현대극의 성지가 아니었던가요.

서울예술대학 출신들이 우리나라 문화의 중심에 있음도 성찰했는지 묻고 싶네요. 한국 희곡사에서 동랑을 외면할 수 있나요. 우리가 있는 것을 외면한다고 지운다고 지워집니까. 친일이 지워지지 않듯이 그의 업적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깊이 통찰해야 합니다. 한쪽만 쳐다보고 거품 무는 천민적인 행태는 지양돼야 하지 않을까요.

이데올로기 놀음 그만합시다. 신물이 납니다. 중앙정부가 무슨 적폐청산 운운하면서 이데올로기의 블랙홀에 빠지는 것도 안타까운데 기초의회라도 시민을 위한 의회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권력자가 아닙니다. 원래 선량한 시민이 아니던가요.

‘동랑과 청마’ 거제시로서는 거대한 담론이며 전국적인 담론이기도 합니다.

시 행정과 의회가 머리를 맞대어 이 담론을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화가 창궐하는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해방 이전과 이후 흠결의 족적을 뒤로 한 채, 동랑이 없는 희곡사를 논할 수 없는 게 한국희곡사입니다. 우리는 이제 결연하게 그의 공과 사를 구별하여 거제시의 문화 아이콘(像)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합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