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지역에는 다른 지역과 달리 여전히 ‘어떤 고등학교를 졸업했느냐’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학교 학부모들은 “고등학교 선택이 대학교 선택보다 더 힘이 든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처럼 고등학교 진학 문제는 꽤 오래 전부터 중 가장 중요한 지역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거제 지역 고등학교는 관행적으로 서열화되어 있어서 자녀가 지역의 특정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면 부모의 체면이 서지 않고, 학생들도 친구들을 의식해서 선호하지 않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비평준화로 인한 과도한 입시 경쟁이 아이들의 삶 전체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거제 지역에만 존재하는 과도한 입학 경쟁 때문에 아이들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일찍부터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또한, 그 경쟁에서 낙오된 학생들은 ‘나는 이미 실패자다’라는 인식을 한창 꿈을 키워 나가야 할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가질 수 밖에 없다. 교육은 아이들의 꿈을 실현하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인데, 오히려 우리 지역은 일찍부터 아이들의 꿈과 자존감을 꺾고 시작하는 셈이다.

또한 현행 대입 체제와 관련해서도 고교 비평준화는 문제점이 많다. 현행 대입은 학교 내신과 학교 활동을 중심으로 선발하는 수시 모집으로 70% 이상을 선발하고, 남은 30%는 수능 성적을 활용하는 정시 모집으로 선발한다. 이 중 정시 전형은 재학생이 수능을 오래도록 공부한 재수생, 장수생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고등학교 재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수시 모집으로 대학에 진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시 모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내신과 학교 활동인데, 이 중 학교 내신은 교내 석차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즉, 어느 고등학교에서 1등급을 받든 간에 대학에서는 똑같은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우리 지역은 해마다 관내 중학교 졸업생 중 우수 학생 대부분이 특정 사립고에 진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수 학생들이 특정 학교에 집중되어 그들끼리 불리한 내신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내신 경쟁에서 낙오된 학생들은 실력은 충분하지만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다. 즉, 중학교에서는 충분히 명문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이라 평가받은 학생들이 개인의 역량과 달리 비평준화 정책 때문에 실력에 맞는 대학에 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만약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면 자신의 실력에 맞는 좋은 대학에 충분히 입학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거제 지역 고등학생들은 고교 비평준화 때문에 대부분 학생부 수시모집에 의해 선발되는 현 대입제도의 최대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경남도교육청이 거제지역고교 평준화를 위한 공론화 작업에 이미 착수했으며, ‘고교 평준화 타당성 연구’를 위한 공청회도 개최하였다. 또한 지역 시민단체도 별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역 여론도 고교평준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한국자치경제연구원의 거제시 고교 평준화에 대한 타당성 설문 조사에서 10명 중 6명 이상이 고교평준화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많은 거제시민들이 고교 비평준화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부 또한 “학생부 성적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대입제도 등장 이후 평준화제도 찬성여론에 힘이 실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학 진학에 상대적으로 불리하거나 초·중학교에서의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등이 찬성쪽으로 돌아서게 만든 주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7월 25일 결성된 거제지역 고교평준화 추진위원회 출범 현장

고교 평준화는 고교 서열화에 대한 위화감과 명문고 진학을 위한 과도한 사교육비 문제, 내신 성적 경쟁 등을 지양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하루 빨리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일부 단체에서 평준화가 되면 전체적으로 학력 저하가 예상되고 교통문제, 학교 시설여건 등의 이유로 평준화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자료들은 오히려 평준화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선, 학력저하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교육개발원(2005)의 ‘고교 평준화 정책의 적합성 연구’라는 보고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전국 일반계 고교 126개(전체 일반고의 10%) 8588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평준화 정책 효과를 분석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점수가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보다 높았다. 평준화 지역 학생이 언어 영역의 경우 4.72점, 외국어 4.37점 더 높게 나왔다. 수리 영역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문과가 10.28점, 이과 7.91점 더 높았다. 평준화 학교와 비평준화 학교가 함께 있는 중소도시 지역만을 따로 비교한 연구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평준화가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통문제는 평준화 여부와 관계없는 거제 지역의 특수한 상황이다. 현재 거제지역 고등학생의 통학 방법은 도보(자가용) 34.7%, 시내버스 17.9%, 통학버스 52.5%로 통학버스의 비율이 과반을 넘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분석해 볼 때 교통문제는 평준화, 비평준화의 문제가 아니며, 평준화로 인하여 원거리로 원하지 않는 학교에 배정된 일부 학생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으나 기숙사 활용과 거제시의 등·하교 시간대에 대중교통 확대 배치로 해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고교 평준화를 실시해도 농어촌 전형 지원과 관련된 불이익은 없다. 현재 대학 입시에서 농어촌전형은 ‘6년간 부모·학생 농어촌 실거주자’ 조건에 만족해야 하는데, 이들 학생은 평준화가 되었을 때 자신이 희망하는 농어촌지역 고등학교에 충분히 배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교 평준화는 중등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고교 입학 경쟁 완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즉, 사회적 위화감 해소에도 큰 몫을 담당한 셈이다. 특히 평준화가 시행되면 낡고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해 있는 학교는 도교육청의 예산 지원으로 교육시설을 확충함으로써 교육여건의 전반적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창 꿈이 많고 밝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청소년기에 거제지역 중고등학생들은 교복의 색깔에 의해 인격을 평가받고 중학교부터 과도한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고향을 ‘꿈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꿈을 꺾어버린 곳’으로 기억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중학교 내신 우수 학생들이 일부 학교에만 진학함으로써 내신등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수시 전형으로 명문대 진학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들 학생들이 지역 내 7개 인문계고등학교에 고루 분산되면 불필요한 경쟁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대학에 쉽게 진학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고교 평준화는 학벌위주의 비뚤어진 사회분위기를 해소할 수 있으며 사회생활의 자립적인 태도 형성에도 매우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또한 학연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엘리트집단의 특권의식과 파벌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개선시킬 수 있다. 학생들 또한 고교 평준화를 통해 고향 거제를 ‘내 꿈을 실현하는 발판’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제시의 고교평준화는 꼭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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