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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천하장사 정지원’의 씨름 스토리손영민의 풍물기행(133)

국가대표 유도선수 이어 최단기 장사 타이틀 기록
늘 맹훈련으로 담금질, 시청 씨름단 ‘든든한 지주’

‘전통씨름.’ 씨름만큼 전통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스포츠가 있을까. 씨름은 오랜 시간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그 형태를 찾을 수 있고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가 풍속화로 그릴 정도로 대중적으로 즐겨온 스포츠다. 이후 프로씨름이 생기면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침체기를 겪은 뒤 현재는 부흥을 위해 힘쓰는 중이다. 지금도 명절연휴가 되면 어김없이 TV중계를 통해 씨름을 접할 수 있다.

여자씨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선수를 소개한다. 거제시청씨름단의 정지원이다. 모래판 위에서는 패기와 당당한 체구로 누구한테도 질 것 같지 않은 카리스마를 뿜어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긴장한 듯 수줍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정지원은 경남 진주 태생이지만 곧바로 서울로 이사를 왔다. 그는 고대부속중-위례정보산업고-한국체대-용인대 교육대학원을 거쳐 현재 거제시청 씨름단 선수로 활약 중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를 찾아온 스카우트의 권유로 유도를 시작하게 됐다. 유도를 시작하기 전에는 남들보다 먹는 걸 조금 더 좋아하는 어린아이였다. “제 덩치가 또래들보다 큰 편이었는데 스카우터가 저를 눈여겨보고 저한테 선수생활을 권했는데 고민하다가 결국 선수생활을 하게 됐어요.” 경남대표로 출전했던 전국체전에서 첫 금메달을 차지한 이후 국가대표 시절 세계선수권대회와 국제대회에서 수많은 입상을 해 국위를 선양했다. 정지원 자신도 “슬럼프는 없었다”고 할 만큼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한 그는 유도선수로서의 삶이 인생1막이었다면 2막은 씨름선수다.

2010년대 한국여자씨름에는 송송화, 임수정, 양윤서, 이다현, 조현주가 있었다. 2016년까지는 임수정의 시대였다 그리고 2017년 9월 ‘여자천하장사’ 정지원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여자 이봉걸' ’무궁화급(80kg 이하) 저격수’, ‘거제시청씨름단 에이스’다. 그는 한국여자씨름 사상 최초로 씨름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통합장사 타이틀을 차지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2017 구례여자장사씨름대회 때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박원미(구례군청), 임수정(콜핑)을 차례로 제압하고 제9대 여자천하장사에 등극하며 거제시청대표팀의 구세주가 됐다.

그러나 구례여자씨름대회가 그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해주지지는 않는다. ‘한 선수’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는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여자씨름 각 구단 감독들을 비롯해 숱한 전문가들이 “후배들이 정지원을 멘토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는 이유다.

이제 그는 2014년 유도무대에서 은퇴하고 민속씨름계의 샛별로 다가오고 있다. 9월 24일 전남구례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9회 구례여자장사대회결승전’에서 절대강자 임수정(콜핑)선수를 밀어치기로 2-0 완승을 거두며 통합장사를 차지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으니 실패한 씨름 인생은 아니었다”고 담담히 소회하는 ‘우리 거제의 영웅’ 정지원의 삶을 ‘짧게 쓰는 자서전’ 형식으로 정리해 봤다.

거제시청 씨름선수 ‘정지원’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그가 한창 유도 국가대표 선수로서 세계선수권 신기록을 향해 나아갈 때 유도장에 나타난 90kg이 넘는 거구로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경남도청 선수시절 무릎부상으로 연패의 늪에서 헤매던 초라했던 모습이 스쳐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건 정지원은 스스로 잘나가던 유도 국가대표선수에서 씨름선수를 선택한 길에서 매순간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당당히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경남 거제시 계룡로 125. 거제시청씨름단의 주소다. 여기에는 한 선수가 있다. 정지원.

시작부터 팀의 에이스였다. 이후 그의 씨름 삶을 관통하는 ‘여자 이봉걸’이 됐다. 씨름선수의 이름 앞에 ‘여자 이봉걸’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정지원 앞에 ‘여자 이만기’로 불린 임수정과 ‘여자 강호동’ 이다현이 있었으나 여자 이봉걸의 호칭을 따낸 건 처음이다. 정지원(34․거제시청)은 분명 씨름선수‘의 범주를 넘어선 선수, 그 이상의 선수였다.

무엇이 그를 ‘여자 이봉걸’로 만들었을까. 민속씨름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정지원의 씨름인생을 풀어봤다. ‘진실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그의 좌우명은 그의 삶에 오롯이 배어있다.

“가방 안에서 종이를 꺼냈다. 부모님이 써보라며 건네준 장래 희망조사서다. 씨.름.선.수 자신 있게 꾹꾹 눌러 적었다. 친구들과 경남하동씨름경기장에 놀러갔다가 호주천하장사(1996년)출신 윤경호 선생님으로부터 거제시청씨름단 입단 제의를 받았다. 씨름선수가 되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다. 반대가 심하시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설 내가 아니다. 난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 결국 내가 이겼다. 난 이제 씨름선수다."(2016년 11월)

“(정)지원이가 씨름선수 되고 싶다 했을 때 반대를 많이 했다. 그때는 나이가 많아 운동을 해도 끝까지 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결혼을 하는 게 낫지 않냐 싶었다. 그런데 자꾸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밥도 안 먹겠다면서 1주일 동안 버텼다. 결국 해보라고 했다. 이왕이면 연습벌레가 되라고.... 지원이는 그때 ‘씨름만 하게 해주면 뭐든지 다 하겠다. 절대 부모님을 실망 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씨름을 시작하니까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지금 딸을 바라보면 장사기록보다는 인성으로, 선수보다는 한 사람으로 신뢰를 받고 있는 게 보여서 참 기특하다.”(정지원 부친 정승국 씨)

“무릎이 계속 아프다. 벌써 2개월째다. 제대로 누울 수조차 없다. 일어날 때도 동료선수가 부축해 줘야 한다. 씨름을 관둘까. 하지만 씨름 외에는 할 게 없다. 어제는 산악훈련을 하는 데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걷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다.

운동을 안 하고 누워 있으니 몸무게는 10kg이나 늘었다. 감독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체육지도자시절에도 7~8kg이 늘었지만 고된 훈련 때문에 지금은 84kg이다. 체중이 감량되고 실력이 늘어가면서 식욕도 늘어 이젠 냉면그릇에 밥을 먹는다. 까칠한 성격도 바뀌었다. 내가 봐도 참 순해졌다. 무릎은 계속 아팠다. 경기 전에는 늘 진통제를 챙겨 먹어야 한다. 입단 때부터 그랬다. 집에 말하면 ‘씨름을 관둬라’ 할까봐 말을 못 꺼내겠다. 나는 씨름이 참 좋다."(2017년 2월)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틈만 나면 숙소 밖으로 나가 혼신의 힘을 다해 개인훈련에 돌입했다. 체중감량과 지구력 그리고 정신력을 보강하기위한 훈련을 더 할 필요가 있으면 여지없이 나갔다. 경기에서 지면 더 연습했다. 새벽에 상문동 숙소 뒷산에 올라 트레이닝튜브를 당기다가 해 뜨는 것을 본적도 있다. 당기고 또 당겼다. 2017년 시즌 두 번째 도전, 시전 초 설날장사씨름대회 성적이 부진했던 점을 생각하면 성적이 꽤 좋다. 초여름에 경기도 용인으로 전지훈련을 간 게 주효했다. 유도 14년간 쌓인 노하우가 나를 지탱해줬다. 최희화(콜핑)와의 경쟁에서 경기규칙에 따라 체중이 더 나가 패한 게 정말 치명적이었다. 경험은 사람을 크게 만든다. 쫓기는 기분은 없다. 스트레스강도는 더 심하지만."(2017년 6월 보은단오장사 씨름대회)

“여자 이봉걸. 스포츠신문을 중심으로 어느 순간 나를 ‘여자 이봉걸’로 부르고 있다. 부담스럽다. 씨름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오전 6시에도 전화가 온다. 자다가 전화를 받고는 한다. 경기에 쏠리는 눈 때문에 동료들에게도 미안하다. 지난 5월, 보은단오대회 무궁화급4강전에서 최희화(콜핑)와 경쟁을 하다가 체중감량실패로 아깝게 무궁화(80kg이하)장사를 놓친 터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시즌 4강진입이 빨리 나왔고 체중감량도 순조로웠다. 결승 진출은 충분하겠다 싶었다. 이후부터는 그저 ‘훈련만이 승리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꿈에도 그리던 통합장사를 차지했다.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이 정도로도 잘했지’ 싶다가도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닌데…….다시 기회가 올까’ 하는 마음도 든다.”(2017년 9월 구례여자통합장사씨름대회)

“승리의 기쁨도 잠시, 곧 이어 벌어진 추석장사씨름대회 8강전에서 이다현(구례)에게 완패를 당한 뒤 돌아서자 일부 관중석에서 야유가 날아왔다. 그럴 만도 했다. 내 생각에도 정신력도 중요하지만 기술 없이는 안 통한다는 걸 실감했다. 통합장사. 가문의 영광이지만 이럴 때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 ‘내가 왜 왔지’하는 후회까지 든다. 거제시청팀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2017년 10월 추석장사씨름대회))

“정지원은 현재 샅바를 잡은 지 6개월 만에 한국의 최단기 여자천하장사등극 종전기록을 이미 경신했다. 임수정 선수가 세운 통합장사 14회, 체급장사 40회 등 통산 54회 우승기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단 6개월 만에 쟁취한 여자천하장사는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서 영웅을 갈구하는 거제사회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며 정지원은 거제인 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줬다. 스타덤에 오르면 이기적으로 변하는 다른 선수들에 반해 정지원은 깨끗하고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 대견스럽다.”(윤경호 거제시청씨름단 감독)

“씨름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신출내기 거제시청 대표선수가 한국의 국기라는 씨름종목에서 그것도 민속여자씨름의 발상지인 구례라는 전통명가에서 통합장사를 거머쥐었을 때 전율이 일었다. 당시 조선업계 구조조정바람이 불어 현실을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고 진로도 막막했는데 정지원 선수가 꽃가마를 탔을 때 ‘언젠가 나에게도 빛이 오겠지’하면서 응원했던 기억이 있다. 정지원은 씨름선수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40대 조선소 근로자․씨름팬 ㄱ씨)

“선수단 상견례 때 본 정지원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날카로우면서도 또릿또릿 했다. ‘어떤 선수가 되고 싶냐’고 물으니 ‘천하장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때 ‘네가 하기에 달렸다’고 말해 줬다. 어느 날은 씨름훈련장이 있는 진주정보고등학교에 갔는데 정지원이 훈련하고 있었다. 거제 씨름장에서 훈련하고 진주에 와서 경기를 하고 다시 계룡산에서 야간산악훈련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참 대단한 아이구나라고 느꼈다. 오늘은 없겠지 하는 날에도 혼자훈련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해내고야마는 근성이 강한 선수였다.”(신정호 경남씨름협회장)

“한국여자씨름사에서 혜성같이 나타난 정지원은 씨름의 트로이카를 이끌었던 3인방(이만기, 이봉걸, 이준희)을 연상케 했다 가공한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면서 많은 대중에게 씨름의 매력을 느끼게 했다.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등이 수평적 인기를 누릴 때이다. 하지만 정지원이라는 인물을 계기로 다른 종목에 비해 좀 더 씨름이라는 종목이 국민적인 스포츠로 올라오게 됐으면 한다. 남자선수가 많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정지원은 여자선수로 민속씨름발전의 진정한 의미 또한 던져줬다. 정지원은 거제시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넘어 전국구 스타였다.”(황경수 대한씨름협회 여성위원회위원장)

“정지원은 구례대회에서 박원미(구례통합장사 준결승전), 임수정(구례통합장사 결승전) 등 여자씨름 최강자들을 상대로 드라마틱한 경기를 하면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 큰 경기에 잘하는 팀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였다. 거제시청, 나주호빌스, 영암군청등 잇단 신생팀 창단으로 민속씨름 인기가 치솟았는데 현재 민속씨름 붐의 초석을 정지원이 다졌다고도 할 수 있다.”(신명수 KBS N sports해설위원)

한편, 2017년 시즌 중 10월 21일 경북영주에서 거제시청, 양산콜핑, 구례군청, 나주호빌스 등 4개 실업팀이 펼지는 친선경기를 제외하고 제9회 전국생활체육大장사씨름대회(11월2~5일․창녕부곡), 2017천하장사씨름대회(11월20~26일․전남나주), 2017 대통령배전국씨름왕 선발대회(12월23~26일․제주)가 예정돼 있다.

글․사진 손영민/본지 논설위원․거제시청씨름단 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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