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법, 바른인연(46)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오고 난 후부터 수많은 승려들이 이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아낌없이 그들의 소중한 목숨을 초개같이 내어 놓은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 분들의 거룩한 희생 때문에 오늘날 이 불교를 호국불교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분들을 위해 무엇을 해 드리고 있는가? 아무것이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명절이 다가와도 우리 불자는 그처럼 의롭게 사라져 가신 수행 승려들의 영전에 밥 한 그릇 정성스레 떠올리는 이가 없다.

불자뿐만 아니라 불교의 법맥이 이 사바세계에 영원히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목련존자로부터 이제까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수행승들이 순교하였건만 우리 자신은 얼마나 그 분들의 고귀한 넋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름 없이 살다 가신 수많은 수행인들께서 박복한 말세의 우리 중생들을 위해 조석으로 불전에 향을 사르고 정수를 올리면서 얼마나 많은 기도와 축원을 해 주셨는지 우리는 알고 있는가? 정말 조용히 생각해 보면 그 분들 앞에 끝없이 죄스럽고 민망할 따름이다.

화엄경에서 “보살은 은혜를 알고 또 갚을 줄을 안다”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분들의 그 지대한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지 그저 가슴이 답답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교와 시련들을 겪어 오면서 지탱되어 온 이 거룩한 불교가 오늘날 돌이킬 수 없는 세속의 시류에 편승해 이미 정통성을 잃은 지 오래이다.

이렇다보니 우리 불교가 유교도 아니고, 도교도 아니며, 순수 불교도 아니고, 통불교도 아니며, 대승도 아니고, 소승도 아닌 혼합 상태로 뒤섞여 버렸다.

사찰은 고색 찬연하고 법당은 웅장하게 솟아 그 위용을 자랑하는데, 정작 부처님의 진정한 경전의 바른 말씀은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고, 사주, 철학 보고, 산신, 용왕 등을 찾는 기복신앙만이 판을 치고 있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지도 천 육백년이 흘렀는데도 안타깝게도 우리 불교는 아직도 한국에 맞는 불교관을 정립하지 못하고 과거 중국불교의 청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거기다가 계율은 인도 계율을, 경전은 중국불교를, 의식은 한국 발음의 중국 의식으로 혼용해 쓰고 있다 보니 어떤 것이 진정한 부처님의 본원인지 판단할 수 없는 기막힌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이런 어려운 상황과 어지러운 조건 속에서도 불철주야 바른 수행을 묵묵히 하고 있는 참되고 진실된 바른 수행승들이 아주 드물게 계신다는 것이 그저 위안이 될 뿐이다.

정말 그 분들은 존경 받아야할 ‘구도승’들이다. 그러므로 그 분들께 우리는 고개 숙여 깊숙이 정례한다. 그 분들의 올바른 정진이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위를 책임지고 계시다는데 대하여 그 분들의 수행처를 향해 신실한 마음으로 합장하고 계수한다.

그리고 복 없는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그 분들을 끝없이 격려하고 싶다. 또한 박수를 치고 춤을 추면서 그 분들을 찬탄하고 싶다.

부처님 말씀을 수호하고 바른 정법을 실천하는 그 분들 때문에 인간의 목숨 값이 지금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모름지기 그 분들을 향해 엎드려 이마를 조아리며 그 분들의 수행을 축수해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사제(Priest) 제도를 두지 않는다. 사제는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자(Mediator)를 말한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신앙이 되는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을 종교 의식으로 끌어내려 인간에게 접속시킬 필요가 없다. 때문에 인간은 신을 향해 경배하거나 제사를 올려 은총을 구할 이유가 없다.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서는 네 가지 계급이 있었다. 사제들인 바라문과 왕족과 무사들, 그리고 일반인과 노예들이 그것이다. 예전 우리나라 이조시대 때 양반과 중인, 그리고 천민의 계급이 있었던 것과 흡사한 카스트였다.

바라문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들의 절대적인 창조주와 접촉할 수 없었다. 설령 왕들조차도 그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자 할 때에는 바라문이 참석해 그들이 직접 집전하도록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었다.

그들은 신의 후예라 지칭하면서 인도 사회의 전권을 장악하고 임금보다도 더 윗자리에 있으면서 신권을 마음껏 휘둘렀다.

오로지 그들만이 신에게서 인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은혜와 권능을 부여 받았다고 전횡을 행사했다. 그것은 중세 유럽에서 교황이 전권을 행사한 것과 비슷하다.

일반인들이 기도를 하려 해도 언제나 바라문들의 허락과 인도 하에

예식은 거행되었고, 그들의 축원에 의하여 세 가지 계급의 사람들은 각각 제 몫만큼 복을 받는다고 역설하였다.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였을 때도 바라문들이 궁중에 들어와 생일 의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그처럼 그들은 늘 신과 상통하고 있고, 또 사람들은 신에게서 선택된 계급의 특별한 선민이라 믿었었다.

그러다가 불교가 일어났다. 부처님은 이 신관을 일시에 타파해 버렸다. 실로 획기적인 ‘인간 혁명을 제창’하셨던 것이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에 거기에 종속될 필요는 없다고 법음을 토하신 분이 부처님이시다.

그로 인해 첫 번째의 자유는 빔비사라 왕이 절대의 창조신을 위해잡아온 오천 마리나 되는 염소들이 번제로부터 풀려나게 되었다.

부처님이 조금만 더 늦게 대각을 이루셨더라도 그 수많은 염소의 생명들은 인간들의 무지한 신앙에 의해 맥없이 희생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인간은 창조신이라는 사슬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부처님은 사십이장경 (四十二章經)에서 “사람이 가공으로 만들어 낸 천지의 전능한 신을 섬긴다 해도 그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보다 못하다. 부모야말로 최고의 절대신 이다” 라고 하시면서 “신을 모시는 일을 바꾸어 부모를 신처럼 공경하라”고 하셨다.

엄격히 말해서 불교는 바라문 종교에서 일어난 신흥종교였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핍박과 박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고 포악하였다. 그래도 부처님은 창조신의 존재를 완전히 혁파하셨다.

창조주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포효하셨다. 신은 죽은 것이 아니고 아예 태어난 적이 없었다고 만천하에 사자후를 토하셨다.

그때부터 불교 교단에는 사제 제도가 완전히 필요 없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종교는 반드시 그들의 창조신을 위해 사제 제도가 있어야 하겠지만 불교는 애초부터 그런 제도를 분명 두지 않았다.

그것이 불교가 다른 종교와 특이하게 다른 한 가지 분명한 것이다.

그때부터 불교의 교단에서는 사제라는 이름 대신 비구(Bhikkhu) 라는 수행승들이 나타났고, 그들의 단체가 바로 상가(Sangha) 라는 공동체이다.

부처가 이 사바세계에 혜성처럼 등장함으로 해서 신본위주의 기원 신앙이 ‘인간 위주의 수행 사상으로 발전’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한 불교가 오늘날 우상 신앙이니, 미신 신앙이니 하는 소리를 왜 들어야만 하는지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한편으론 깊이 새겨볼 일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