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문제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몸을 보호하는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건강보조식품, 건강기능식품 시장도 커져 왔다. 그런 만큼 몸에 좋다고 알려지면 과도하게 소비가 쏠리는 문제도 있고, 실제보다 과장된 광고와 상술에 피해를 입는 소비자도 많아졌으며, 남용 혹은 과용으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건강을 위해 섭취하는 식품들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하는 결과를 유발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곳 칼럼 지면을 통해 두 세 차례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오늘은 한의 의료기관에서 처방되는 ‘보약’에 대해 살펴보자.

보통 시민들 입장에서는 기력이 떨어졌다거나, 질병에 자주 걸린다거나,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입맛도 떨어지고 체중이 줄어들 때 흔히 보약을 떠올리게 된다. 조선소 현장의 무더위 속에 일을 하는 가장의 건강을 위해, 소중한 아이의 튼튼한 성장 발육을 위해, 입시 준비에 지친 수험생 아이의 건강을 위해 보약을 찾는 경우가 많다. 보통 시민들이 구체적인 부분까지 잘 알 수는 없기 때문에, 보약이라 하면 대부분 인삼 녹용이나 십전대보탕 정도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 물론 이들도 보약 중의 일부이기는 하나,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훨씬 많은 종류의 약재와 처방이 사용된다.

얼핏 보약과 건강식품이 비슷한 것이라 여길 수도 있는데, 건강식품은 ‘식품’의 일종이고, 보약은 ‘약’의 일종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건강식품의 원료로 식약공용 한약재 중 일부가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약리 작용이 좀 더 강한 한약재는 식품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보약은 조금 더 전문적인 판단이 개입되고, 복용할 사람에 맞추어 개별적으로 조제된다.

한의 고전에서 아주 유명한 문구로 ‘사기성즉실 정기탈즉허(邪氣盛卽實 正氣脫卽虛 ; 사기가 성한 것을 실이라 하고, 정기가 부족한 것을 허라 한다)’가 있다. “그놈 참 실하게 생겼네”라는 말과 같이, 일상 생활에서 ‘실하다’는 말은 튼튼하다, 꽉 찼다, 건강하다, 좋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한의에서 ‘실하다’는 것은 질병을 일으키는 외부 원인, 요즘 말로 이해하자면 세균과 같은 것이 매우 왕성하게 활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허’라는 것은 질병을 이겨내는 저항력이 약해진 것을 말한다.

보약은 이렇게 정기가 부족한 각종 허증에 사용하는 약물로서, 자양강장의 작용이 있고, 신체허약과 정신피곤, 혈액 허손시에 사용하여 정기를 북돋아 주고 인체의 기능을 회복시켜, 질병에 대한 저항능력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질병의 초기, 질병 증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급성기, 즉 ‘사기가 성’한 때에는 보약을 잘 쓰지 않는다. 다만, 병세가 심하면 정기가 손상되므로, 필요한 경우 병세를 직접 치료하는 약물과 함께 보하는 약재를 적절히 배합하여 사용하기는 한다.

보약은 성능과 응용범위에 따라서 보음약 ·보양약·보기약·보혈약의 네 가지로 크게 분류한다. 보음약은 주로 진액 부족증에 사용하는데, 사삼, 석곡, 맥문동, 숙지황, 건지황 등의 약물이 대표적이다. 보양약은 육종용 파극 부자 육계 등의 약물이 대표적이며, 보기약은 주로 호흡기와 소화기 계통으로 작용하는 인삼 백출 복령 감초 등의 약물이 대표적이다. 혈허는 간과 심장에 주로 작용하는 약물로 당귀 숙지황 아교 등이 대표적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최종 처방을 구성할 때는 복용할 사람의 상태를 살펴 위의 네 가지 큰 분류에 맞는 약재를 선정하는 것 외에, 환경 요인 등도 고려하게 된다.

여름철 무더위에 땀을 많이 흘리면서 일하는 사람과, 겨울철 추위에 노출되어 일하는 사람, 여름이라도 에어컨 밑에서 일하는 사람의 환경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약에 대한 잘못된 속설 중 대표적인 것이 ‘여름철에 보약을 먹으면 땀으로 다 나가 버린다’는 것인데, 여름에는 여름 환경에 맞는 처방을, 가을 겨울엔그 계절과 생활환경을 고려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보약도 여느 약과 마찬가지로 몸 상태에 맞지 않으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항상 정확한 진찰을 거친 후에 투여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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