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던 태풍 ‘노루’가 우리나라를 비껴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모양새다. 강풍을 동반한 중형급이라고 하니, 휴가를 떠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거제지역은 70여 개의 크고 작은 섬과 함께 하는 도시이므로 기상청 특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순식간에 바닷길이 통제되는가 하면, 출항 중인 배들이 피항하고 닻을 내려야 하는 일이 잦아서다.

그렇듯이 거제는 섬의 속성을 그대로 품은 채 육지화 된 도시이다. ‘도시와 섬’, ‘섬과 도시’ 두 가지 기능을 다 지닌 터라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은 ‘사람’이 주인공이므로 ‘문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로 말미암은 삶 자체가 거제문화이니,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가운데 공존공생의 길을 가고 있다. 거제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거제선상문학예술축제>는 그런 다양성을 지닌 문화의 단면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990년, 장승포항 수협공판장 앞에서 처음 닻을 올린 <선상문학의 밤>은 구조라, 와현 바닷가 등으로 전전하다 한 때는 중단된 적이 있다. 그러다가 2006년에 재개되면서 <선상문학예술축제>로 명명된 가운데 점차 인문학적인 관점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거제의 문학예술을 집대성한 축제라는 점에서 ‘통섭과 융합’이라는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접목시킨 ‘토크콘서트’, ‘시극’, ‘소설극’, ‘무용극’ 등을 선보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함에 따라 다른 축제와의 차별성, 독창성을 갖는다.

한 때는 세계조선해양축제(2012)로 정박한 오페라크루즈나 거제크루즈(미남호)의 선상에서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크루즈가 떠난 지금은 선상(船上)에서 한다는 게 쉽지 않다. 고심 끝에 지난해에는 “지역경제 살리기”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해석의 관점을 달리 했다. ‘선상(船上)’의 의미를 확장시킨 가운데 ‘거제도’를 하나의 큰 선상(船上)으로 보고 행사를 계획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토크콘서트를 열어 김임순원장(애광원), 강명식대표(공곶이), 이경필원장(김치5)을 초대했으며, ‘청마시극’과『거제도』를 각색한 ‘소설극’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때마침 장승포항 수변공원이 개장됨에 따라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바닷가에다 야외무대를 설치하고, 시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를 위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행사준비가 끝날 즈음에 느닷없이 찾아온 불청객은 행사장을 삽시간에 뒤흔들었다. 거제도를 관통해 큰 피해를 준 태풍, ‘차바’가 그것이다. 부득불 야외 무대설치를 중단한 우리는 행사장을 실내(거제문화예술회관)로 옮겨야 했다. 거리마다 홍보물로 내걸린 현수막과 걸개시화는 이미 강풍에 찢겨 날아간 이후였다. 그림 같은 장승포항 수변공원에서의 한마당 대잔치는 깊어가는 가을밤의 단상에 불과했다. 그나마 돛단배 형상을 한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거제발(發), 선상(船上)의 닻’을 올린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현실을 감안하여 올해는 <선상문학예술축제>를 바캉스 시즌인 7월로 일정(1박2일)을 잡고 일찌감치 준비과정을 거쳤다. 이는 81년 만에 거제시로 반환된 ‘지심도’를 주제로 한 행사이다. 그러므로 지심도 땅을 밟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고 보고, 유배문학 및 전쟁문학세미나도 함께 곁들였다. 더불어 경남문인협회대표자대회도 유치했다.

그래서인지 제21회 거제선상문학예술축제는 쨍쨍한 날씨 속에 거제시민은 물론 전국에서 온 많은 문인들과 함께 닻을 올릴 수 있었다. 본 행사에 앞서 전쟁문학세미나가 열렸으며, 선상문학특강(소설가 윤후명), 학춤, 시극, 무용극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그리고 경남문인협회대표자대회에서는 심야특강(김복근 전 거제교육장)과 함께 우수단체로 선정된 거제문인협회 외 2개지부의 사례 발표회가 있었다. 이튿날은 선상체험을 통해 섬 속의 섬, ‘지심도’를 탐방한 데 이어 거제유배문학특강을 곁들였다. 본 행사의 일환으로 제2회 블루시티거제문학상 전국공모전을 실시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거제문인협회에서 주최한 <거제선상문학예술축제>는 단순한 행사만은 아닌 것이다. 거제도의 문화예술발전을 위한 새로운 가치창출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거제지역 특유의 문학세미나를 통해 발표된 논문들은 향후 거제문화관광자원화 및 문화콘텐츠 발굴을 위한 자료로 널리 활용될 것이다. <블루시티거제문학상전국공모전>을 통한 작품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가까스로 마무리한 선상문학예술축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집약해 ‘언어예술’로 표현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문학의 즐거움은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예술로 승화되는 가운데 긴긴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다. 이런 의미에서 선상문학예술행사에 동참한 시민들과 관광객 그리고 전국문인들의 주옥같은 원고를 기다리고 있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돌이켜보건대, 34년 전(1983년)에 소설가 윤후명 선생이 ‘지심도 땅’을 밟고 쓴 단편소설 『팔색조』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이후, 소설이 각색되면서 MBC 베스트셀러극장으로 방영됨에 따라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심도>가 관광명소가 되지 않았던가. 그렇듯이 지금은 한 사람으로 인한 ‘펜(PEN)’의 힘이 슈퍼 태풍보다 더 큰 위력이 있다는 사실을 톡·톡·톡, 키보드를 두드리며 보여줄 때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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